01. 비즈니스 전략이 브랜드 전략이다.
바야흐로 스몰 브랜드 전성시대다. 작지만 강한, 매력 넘치는 브랜드가 속속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근에는 큰 브랜드조차 대중에게 스몰 브랜드로 어필하려는 경향마저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그저 작다고 능사는 아니라는 것. 성장하려면 작아져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시대에 진짜 성공하는 스몰 브랜드 전략은 무엇일까? 더워터멜론 우승우 공동 대표와 총 10회에 걸쳐 알아보기로 한다.
레어로우의 제품들.
브랜드가 이렇게 주목받는 시기가 또 있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브랜드가 이제 비즈니스 규모에 상관없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 요소가 됐다. 개성 있고 감각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은 스튜디오를 만들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 자기 브랜드에 시각적인 매력을 더한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심지어 어디서 배웠나 싶을 정도로 잘한다. ‘브랜드 민주화(Brand Initiative)’라는 비전을 가진 더워터멜론에서 스몰 브랜드 개발 플랫폼 ‘아보카도’를 운영한 지 어느덧 5년째다. 그동안 1000여 개의 스몰 브랜드를 만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누구보다 매력적인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스몰 브랜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면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충분히 매력적이지 못한 브랜드도 분명 존재하는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의 존재 여부’라고 감히 답해본다.
얼마 전 충주의 한 매력적인 카페를 방문했다. 옛 여인숙을 개조해 형제가 운영하는 카페 ‘평정’과 게스트 하우스 ‘대림여인숙’. 여인숙 주인이 숙박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벽에 붙였던 것처럼 형제가 손으로 쓴 글귀로 카페 안을 빼곡히 채웠다. “늘 그렇듯, 우리 주변은 아무렇지 않은 일들로 가득합니다. 여러분께서 겪어온 행복하고 힘들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감히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겠습니다. 다만 잠시 기대어 쉴 수 있는 어깨를 내어드리니, 행복하고 슬펐던 시간에 대해 그 중간에서 마음의 평정을 그리셨으면 해요. 적당함, 그 중간 어딘가에 평정과 대림여인숙이 함께 머물겠습니다.” 〈평정〉 화려한 기교 없이 담담하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와 왜 남이 아닌 ‘우리’인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화룡점정은 카페를 나가면서 발견한 숙박 요금표였다.
필자가 직접 촬영한 카페 평정벽면에 붙어 있는 메모와 대림여인숙의숙박 요금표.
의도적으로 옛 여인숙의 흔적을 살린 모습에서 멋진 브랜드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찾았을 때 이곳은 아마 더 큰 브랜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브랜드일 때부터 우리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왜 고객이 우리에게 와야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그것이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역설적이지만 큰 브랜드로 거듭나고 싶다면 작게 시작해야 한다.
스몰 브랜드는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당장의 매출과 고객, 직원 관리만도 급급한 마당에 브랜딩은 매출이 나온 뒤에나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브랜드가 없는 비즈니스는 지속 불가능하다. 브랜드는 제품 이름이나 로고, 상표 이상을 의미한다. 볼펜을 사러 갔다고 생각해보자. 볼펜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지 않아도 상표, 제품, 패키지 디자인만 봐도 어떤 볼펜인지 구분할 수 있다. 이렇듯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것과 분명하게 구분 짓는 모든 요소를 브랜드라고 부른다. 디자인, 슬로건, 제품, 색상, 공간, 문화 등 상품·서비스의 모든 것이 브랜드의 구성 요소다. 다시 말해 브랜드란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다. 브랜딩은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와 ‘사람들에게 어떤 가게로 보이고 싶은지’의 차이를 줄여가는 일종의 관계 맺기 과정이다.
이때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바로 자기다움이다. 자기다움은 브랜드 이미지와 연결되는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 취향 등으로 구성된 정체성이다. 요즘에는 큰 브랜드가 되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스몰 브랜드가 소위 ‘힙’한 브랜드로 어필하려고 한다. 그런데 힙이 과연 정답일까? 대답은 ‘노’다. 평소 ‘여백의 미’의 이미지로 인식된 티 브랜드가 Y2K 트렌드에 맞춰 팝업 스토어도 Y2K 콘셉트로 오픈했다고 가정해보자. 화제는 되겠지만 브랜딩이 잘됐다고 보기 어렵다. 자기다움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되고 싶고 브랜딩이 잘됐다는 말을 듣고 싶다면 남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하게 자기다움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 브랜드를 인식하게 된다. 브랜드 전략을 수립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나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브랜드 전략은 바로 이 질문의 답으로부터 시작한다.
‘rare(드문)’와 ‘raw(날 것, 본질)’라는 단어를 조합해 브랜드 이름을 지은 철제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Rareraw). 날 것의 소재를 가지고 특별한 제품을 만든다는 비즈니스 목표를 담은 이름이다. 가구에 철 소재를 쓴다는 생각조차 낯설었던 2014년, 양윤선 대표는 날 것의 소재가 가진 매력을 대중에게 어필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구 브랜드로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로 레어로우를 론칭했다. 철제 가구를 섬세히 설계하는 것처럼 이들의 비즈니스 전략은 촘촘히 구성되어 있다. 낯선 날 것이 대중에게 익숙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쉬운 제품으로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레어로우는 첫 제품으로 선반, 의자 등 어느 공간에나 꼭 필요한 제품을 선보였다. 분체 도장으로 철 표면을 철과 상반되는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으로 코팅해 접근성을 높였다. 이후 장한평에 복합 문화 공간 ‘스틸 얼라이브’를 오픈했는데, 레어로우 쇼룸 역할과 철을 경험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참여자들은 디자인랩 프로그램을 통해 레이저, 절곡, 용접, 각인 등 철재를 다루는 전 공정을 체험하고, 소품을 직접 만들면서 철에 친숙해진다. 철의 아름다움을 말하던 레어로우는 이제 그 영역을 ‘모든 날 것’으로 확장해 특별한 결과물을 만드는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다. 새로운 목표에 맞게 철이 아닌 소재, 디자인 스튜디오 등과 컬래버레이션하며 날 것의 가치를 일상에 널리 알리고 있다.
한강주조가 일민미술관과 협업해 만든약주. 텀블벅을 통해 공개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레어로우를 날 것의 매력을 보여주는 특별한 가구 브랜드로 인식한다. 결국 비즈니스 목표를 향한 모든 활동이 모여 브랜드 이미지를 만든 셈이다. 작년 말 나루 생 막걸리로 유명한 전통주 브랜드 한강주조가 일민미술관과 협업해 약주를 출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패키지에는 ‘무려’ 겸재 정선의 그림을 프린트해 넣었다. 한강주조의 시작은 2019년 나루 생 막걸리 출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주의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는 목표를 가진 이 브랜드는 원래 막걸리와 약주를 함께 출시하고 싶었다. 하지만 약주는 막걸리보다 시장이 작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이템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판단을 했다. 신생 전통주 브랜드로서 약주 대신 막걸리를 먼저 출시해 매출과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초기에는 대한제분의 곰표와 협업한 표문 막걸리로 매출과 인지도 모두 확보했고 이후에도 목표를 잊지 않고 꾸준히 제품 개발에 매진해 브랜드 론칭 3년 만에 당초 목표인 약주 출시를 이루었다. 그런데 만약 한강주조가 현실적인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처음부터 약주를 출시했다면 어땠을까?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낮았던 초창기에 컬래버레이션 없이 패키지 디자인에 겸재 정선의 그림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관에는 부합했을지 몰라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브랜드 역시 지속 가능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즉 한강주조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은 섬세하게 조율한 고객과의 관계 맺기에 있다. 이처럼 브랜드와 비즈니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내 비즈니스에 맞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비즈니스와 브랜드를 점차 확장하며 큰 브랜드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스몰 브랜드에 맞는 전략이다. 이것만 기억하자.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당신이 시작한 브랜드의 목표에 맞게, 현재 상황에 맞게, 하루하루 조금씩 키워나가는 일이다.
우승우
더워터멜론 공동 대표. 브랜드 컨설팅, 캠페인, 커뮤니티, 플랫폼 등 브랜드의 비즈니스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반 기업은 물론 스타트업, NGO, 공공 기관, 학교, 축제, 개인에 대한 브랜딩에 관심이 많으며, 주류 속의 비주류를 꿈꾼다. 〈창업가의 브랜딩〉 〈디지털 시대와 노는 법〉 〈린브랜드〉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작지만 큰 브랜드〉 등을 쓰고 번역했다. thewatermel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