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3월은 1년 중 최고의 기획 전시를 만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라카미 다카시, 미구엘 슈발리에, 페터 바이벨까지 미술계의 여러 영역에서 스스로 ‘아이콘’이 된 아티스트들의 대규모 개인전을 소개한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화려한 블랙 유머
전시장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전시장 전경,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국내 최초 개인전 에는 그가 지난 20여 년간 선보였던 가장 논쟁적인 작품들이 한자리에 집결했다. 각 작품이 뿜어내는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마주하는 순간, 눈 돌리는 곳마다 오밀조밀하게 작품들이 집결한 이번 전시가 어마어마한 예술적 에너지를 분출하는 하나의 ‘장관’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상징적 인물들을 밀랍 인형같이 재현한 일련의 조각 작업 ‘아홉 번째 시간’(1999)과 ‘그’(2001), 이미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바닥에 누웠던 그의 대표작 ‘모두’(2007), 자신과 주변 인물들을 희화화한 ‘무제’(2001)와 ‘찰리’(2003), ‘우리’(2010) 등은 웬만한 충격에는 미동도 않는 어른들의 시선을 단숨에 낚아챈다. 의인화된 동물을 통해 죽음과 부조리를 사유하는 ‘비디비도비디부’(1996), ‘유령’(2021), ‘노베첸토’(1997) 등은 통쾌한 블랙 유머를 던지는 카텔란의 전매특허. 이 밖에도 작가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애도를 담아낸 근작 ‘그림자’(2023)와 ‘아버지’(2021)를 통해서는 변화하고 있는 작가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아홉 번째 시간’, 1999,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코미디언’, 2019,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전시 오픈 이후, 인스타그램을 도배하다시피 한 카텔란의 위력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포토제닉한 동시에 쉽고, 직설적인 예술에 목말라 있는지를 증명한다. 작가는 한자리에 오래 멈춰 세우며 깊은 사유를 이끌기보다는,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직설적 농담으로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이보다 간명할 수 없는 전시 제목 처럼, 그의 시선은 늘 우리 자신, 세계, 그 사이에 끼어 있는 모순과 부조리를 향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전화 2014-6901
홈페이지 leeum.org
무라카미 다카시 30년사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Ⅳ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 전경,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무라카미 다카시라는 이름은 예술계에 굳건히 자리 잡은 하나의 ‘아이콘’이다. 루이 비통의 모노그램에 '망가'의 유전자를 이식해 패션계에 ‘아트 컬래버레이션’ 열풍을 일으킨 ‘루이 비통 멀티컬러 모노그램’ 프로젝트를 비롯해, 자기 자신을 망가의 주인공처럼 캐릭터화하며 화폭과 실재를 넘나드는 그 발군의 이미지 메이킹 실력까지 모두 그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무라카미 다카시’ 그리고 그가 만든 예술 제국 ‘카이카이 키키’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수많은 판화 작품처럼, 그가 팝아트의 특성 안에 머무르는 ‘쉬운’ 작가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자신의 뿌리인 일본 문화의 근저에 토착적으로 자리한 온갖 미신과 주술의 신화, 그리고 일본의 가장 현대적인 신화라 할 수 있는 망가의 세계를 집요하게 ‘예술’의 영역 안으로 끌어올린다. 이를 통해 일본 문화가 가진 서사와 의미, 팝아트의 여전한 매력이 재발견되는 것이다.
‘727 드래곤’(2018) Kwon JiYong collection © 2018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Ⅳ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전시 전경 ©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그런 의미에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한국 개인전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는 오히려 다소 늦은 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그간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160여 점의 작품이 4개의 섹션에 나뉘어 전시된다. 눈여겨볼 점이 있다면, 그의 작품이 기존에 표현해온 일본 대중문화의 귀여움과 기괴함을 넘어, 그 주제가 현대인의 불안을 상징하는 ‘좀비’로 좀 더 구체화되었다는 점이다. ‘덧없음(pathos)’ 섹션에서 만날 수 있는 ‘무라카미좀비와 폼좀비’(2022), 동양의 미학을 담은 ‘원상(ens )’ 섹션에서 그 진화를 엿볼 수 있다.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APEC로 58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전화 051-744-2602
홈페이지 art.busan.go.kr
테크놀로지로 구현한 환상 세계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이 변화하는 작품 ‘그물망 복합체’, 2023.
‘AI’와 ‘인터랙티브 아트’로 설명되는 미디어 아트의 근원을 좇다 보면 만나게 되는 몇 개의 이름이 있다. 획기적 기술 개발로 애니메이션의 표현 경계를 넓힌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 재활용 TV로 비디오 아트의 기원을 연 백남준 등이 그 예다. 뒤이어, 1980년대 컴퓨터의 탄생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디어 아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있으니 바로 미구엘 슈발리에다. ‘디지털 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는 20대 중반의 나이에 컴퓨터를 접한 이후, 줄곧 예술적 표현 수단으로 컴퓨터와 미디어만을 이용해왔다. 그는 젊은 시절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 국립광학센터의 엔지니어를 통해 과학자용 컴퓨터를 접한 이래, 자유롭게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알고리즘 조합 시스템’을 직접 개발해 이를 무한한 예술적 표현 도구로 사용해오고 있다.
‘머신 비전’을 체험하고 있는 관람객들.
전시장의 층고를 십분 활용한 ‘디지털 무아레’와 ‘매직 카페트’
아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미구엘 슈발리에의 개인전 <디지털 뷰티>는 그의 연대별 대표작을 나열하기보다는 최근 그가 해온 연구 성취를 하이라이트로 선보인다. 얼굴 인식 기능이 있는 감시 카메라를 통해 방문객의 초상화를 그려내는 ‘기계의 눈’과 ‘머신 비전’ 등 VR을 이용한 제너러티브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을 비롯해, 1950~1960년대 옵아트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한 14m 높이의 ‘디지털 무아레’, 2021년 제주 전시에서 선보여 폭발적 반응을 얻은 ‘복잡한 그물망’ 등은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처럼 순식간에 관객을 다른 차원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밖에 로봇 전문가와 협업해 만든 로봇 드로잉 퍼포먼스 작품 ‘어트랙터 댄스’(2023), VR 그물망을 평면으로 표현한 ‘그물망 드로잉’, 영구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는 3D 프린팅 조각 작품 등은 ‘디지털 뷰티’의 진정한 의미를 체감하게 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9길 26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매월 셋째 주 월요일 휴관
전화 733-1981
홈페이지 araart.co.kr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에 서다
<페터 바이벨-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전시 전경.
선동 연설’, 1968, © 페터 바이벨 아카이브
전 세계 미디어 아트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의 관장이자 미디어 개념 미술가, 큐레이터이기도 한 페터 바이벨의 회고전이 서울에서 열린다. 1944년생인 그는 1960년대, 당시로서는 세상을 뒤바꾸는 혁명의 물길과도 같았던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예술 안에 편입시키며, 미디어 아트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우리는 문화와 자연, 기술과 자연이 대립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측면이 결국은 ‘인류의 문명 보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자신이 관장으로 재직하는 ZKM의 역할을 설명하며 그가 남긴 이 말은 아티스트 페터 바이벨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기도 하다.
‘관찰을 관찰하기_불확실성’, 1973, © 페터 바이벨 아카이브
<페터 바이벨-인지 행위로서의 예술>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페터 바이벨: 인지 행위로서의 예술>은 미디어 개념 미술 작가이자 큐레이터이기도 한 그의 평생 연구를 집대성한 전시로써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환기인 20세기와 21세기를 온몸으로 겪어온 한 예술가의 ‘반응’과 ‘도발’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다원공간에 설치된 ‘다원성의 선율’이다. 1986년부터 2년에 걸쳐 완성된 이 작품은 산업혁명기부터 데이터 기반의 정보혁명에 이르기까지의 200년 인류사를 11개의 영상으로 시각화한 대형 영상 설치 작품이다. 이 밖에 관객의 직접적 참여를 통해 ‘인식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구현한 ‘관찰을 관찰하기’(1973), 베른트 린터만과 협업한 인터랙티브 작품 ‘YOU:R:CODE’(2017)도 만나볼 수 있다. 증강현실, 몰입형 설치미술, 인공지능 같은 키워드가 예술의 일상 용어가 된 지금, 그 출발점에서 분투했던 예술가의 선구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30
운영 시간 월, 화, 목, 금,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수,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9시
전화 3701-9500
홈페이지 mmc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