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하면 떠오르는 가수를 생각해보자. 혹시 그 가수가 아이돌 그룹이라면 그룹의 로고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가? 한 해에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만 수십 팀에 달하고 아이돌의 콘셉트에 따라 브랜딩 디자인도 전략적으로 이루어진다. 과열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아이돌에게 노래와 춤만큼 중요한 것이 비주얼이고, 이는 비단 패션이나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로고 디자인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업의 브랜딩과 마찬가지로 아이돌 그룹의 로고에도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담겨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의 로고와 함께 주목할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오늘날 케이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도록 견인해온 적극적인 소비자, 바로 팬클럽의 로고다. 팬클럽 이름과 로고는 소비자에게 소속감을 줘 더 적극적인 소비, 일명 ‘덕질’을 하도록 유도한다. 팬클럽 로고를 해당 아이돌 그룹이 연상되도록 디자인하는 이유다. 따라서 아이돌과 팬클럽 로고의 상관관계를 짚어보는 것은 케이팝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꽤 의미 있는 작업이다.
엑소의 서브그룹 EXO-K, EXO-M 로고. 엑소의 팬클럽 EXO-L 로고. 이미지 제공 SM엔터테인먼트
1 디자인 시스템을 공유한 엑소의 팬클럽
아이돌 그룹의 브랜딩에 관한 이야기는 엑소에서 시작해야 할 듯싶다. 대중에게 ‘세계관’이란 단어를 각인시키고 아이돌 그룹 로고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킨 대표 그룹이니까. 엑소 플래닛이라는 외행성에서 온, 초능력을 가진 존재가 바로 엑소 멤버라는 게 기본 설정이다. 데뷔 앨범 속 육각형 로고는 데뷔 당시 한 유닛 그룹당 6명으로 구성된 멤버 수와 외계 행성이라는 콘셉트에서 착안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로고를 구성하는 ‘EXO’라는 글자와 특이한 타이포그래피다. 마치 SF 영화 속 외계인이 쓸 법한 타이포그래피에서 그룹이 지향하는 세계관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은 구분이 사라졌지만 엑소는 원래 2개의 서브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즉 한국어로 된 음반을 발매하는 EXO-K, 중국어로 된 음반을 발매하는 EXO-M이다. 원그룹 이름 뒤에 코드처럼 알파벳을 붙이는 방식으로 서브그룹 이름을 구분했기에 로고 역시 마찬가지로 원그룹의 로고 오른쪽 위에 이를 나타내는 알파벳이 작게 들어가 있다. 한편 엑소의 팬클럽명은 ‘EXO-L’이다. L을 택한 이유는 알파벳 순서상 K와 M 사이에 L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착안해 두 서브그룹 가운데에서 이들을 연결하는 알파벳이 엑소의 팬클럽명이 되었다. 이는 K, L, M이 합쳐져 엑소의 공식 구호인 ‘We are ONE’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L은 ‘Love’의 앞 글자이기에 ‘엑소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중적 의미도 있다. 팬클럽 로고도 서브그룹 로고의 디자인 시스템을 그대로 따랐다. 이후 소속사의 브랜딩 기조에 따라 EXO-L 역시 로고가 바뀌었지만 팬클럽은 아이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 사례다.
방탄소년단과 팬클럽 아미의 로고. 이미지 제공 빅히트뮤직(4, 5)
2 리뉴얼한 로고에 조응하다
방탄소년단은 글로벌한 인기를 얻게 되면서 2017년 영문 그룹명 BTS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와 동시에 소속사는 브랜딩을 새롭게 진행해 BTS 그룹명에 ‘Beyond The Scene’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또 국내 유수의 디자인 회사와 손잡고 BTS 팬클럽 아미ARMY의 로고까지 일관성 있는 디자인으로 브랜딩해 화제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부터 청춘을 대변하는 노래를 하겠다는 기조를 줄곧 유지해왔다. 그 청춘은 점점 성장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서사를 갖게 되는데, 이 서사는 새로 발표한 로고에서 문의 형상으로 표현했다. ‘새로운 세상은 문 너머에 있고, 여기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내가 아는 문 안의 현실이 아니라 이 문을 밀어 열고 미지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성장이다’라는 스토리텔링을 표현하기 위한 시각적 메타포로 문을 선택한 것이다. 문 사이로 보이는 라인은 백스테이지에서 무대로 나아가는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대로 나아가는 문을 열면 무엇이 있을까? 바로 그들을 기다리는 팬, 아미다. 팬들은 앞으로 BTS가 펼쳐나갈 장면을 늘 기대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BTS가 여는 문의 반대편을 형상화한 그래픽 이미지가 아미의 로고가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븐틴과 팬클럽 캐럿의 로고. 이미지 제공 폼앤펑션
2015년 데뷔한 세븐틴 역시 한 차례 로고를 리뉴얼해 눈길을 끌었다. 이 그룹의 로고를 이해하려면 다인원 그룹의 특이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룹명을 봐서는 인원수가 17명일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세븐틴 멤버 수는 13명이다. 다만 그룹 내에 3개의 유닛이 있다. 힙합, 보컬, 퍼포먼스 유닛. 그리고 3개의 유닛이 합쳐져 하나의 그룹, 세븐틴이 된다. 13(멤버 수)+3(유닛 수)+1(그룹 수)=17, 이것이 세븐틴만의 공식이다. 이 구조를 알고 지난해 폼앤펑션이 디자인 리뉴얼한 세븐틴 로고를 보면 재미있다. 날카롭게 전진하는 3개의 선이 모여 하나의 로고가 된다. 숫자 17로 보이기도 하는 역삼각형 로고는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킨다. ‘캐럿Carat’이라는 세븐틴의 팬클럽 이름은 데뷔 앨범 수록곡 ‘Shining Diamond’ 가사 중 ’17캐럿’에서 유래했다. 숫자가 커질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다이아몬드처럼 세븐틴을 빛내주는 팬이 많아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캐럿의 로고 또한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키는 역삼각형으로 디자인했다. 로고 가운데 부분을 잘 보면 알파벳 C 형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세븐틴과 팬클럽 로고의 공통점은 둘 다 역삼각형에 숫자 또는 알파벳을 로고로 형상화했고, 작은 역삼각형 유닛이 모여 하나의 로고를 이룬다는 점이다.
에스파와 팬클럽 마이의 로고. 이미지 제공 SM엔터테인먼트
3 시각적 조형성에서 찾는 동질감
걸 그룹 에스파는 같은 소속사의 엑소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그룹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8인조 그룹 에스파에서 4명은 가상 세계에 존재하는 ‘아이ae’ 멤버로 현실 속 멤버들과 닮아 있다. 이런 세계관이 네이밍과 로고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룹명의 영문 철자에서 ‘ae’는 ‘Avatar×Experience’라는 뜻이며 여기에 ‘양면’이라는 뜻의 ‘aspect’가 합쳐져 ‘에스파aespa’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실제 세계의 멤버들과 가상 세계의 멤버들은 연결과 단절로 만나거나 헤어진다. 모든 철자가 이어져 있는 에스파의 로고에서 ‘연결’이라는 세계관의 키워드를 찾을 수 있다. 로고에서 곡선으로 이루어진 라인 사이에 끼워진 듯한 이질적인 직선은 가상 세계를 세계관으로 포섭한 그룹의 콘셉트를 명확히 보여준다. 픽셀처럼 디지털로 이루어진 세계는 직선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팬클럽 ‘마이my’의 로고 역시 비슷한 시각적 문법을 따랐다. 알파벳끼리 연결된 철자 방식과 세리프의 한쪽 끝을 곡선 처리한 지점에서 바로 에스파의 로고가 떠오른다. ‘my’는 에스파의 아바타 ‘아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다. 에스파 로고에 보이는 굴곡을 마이 로고에 그대로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브와 팬클럽 다이브의 로고. 이미지 제공 아이브 공식 유튜브 채널(youtu.be/AcGAyCO1CfI), 공식 페이스북 계정(facebook.com/IVEstarship/photos/239843328344458/)
걸 그룹 아이브IVE 역시 곡선과 직선의 조합을 중심으로 두 로고가 조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룹명은 ‘I Have’의 축약형인 ‘I’ve’를 차용해 가진 것을 당당히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로고의 어퍼스트로피 기호(’)가 ‘dive’에서 i 상단의 점을 대체했는데 그룹명을 소문자로 썼기에 가능한 디자인이다. 전체적으로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 차이가 큰 서체로, 〈보그〉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디돈Didone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서체 선택에서부터 고급스러운 느낌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아이브 로고 역시 모든 글자가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i와 v 하단에 e를 배치하고, v를 의도적으로 구부려 곡선을 만들고 e를 살짝 기울여 하트 기호가 떠오르게 디자인했다. 아이브가 인사할 때 외치는 구호 ‘Dive into IVE’에서 비롯됐다는 아이브의 팬클럽 다이브DIVE 로고에서도 하트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도드라지는 v의 곡선이 다이빙을 하기 직전 일렁이는 물결처럼 보이기도 한다.
뉴진스와 팬클럽 버니즈의 로고. 이미지 출처 뉴진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newjeans_official), news.nate.com/view/20221030n05490?mid=e0608
4 해체주의를 보여준 뉴진스와 버니즈
지금까지 살펴본 아이돌 그룹은 로고를 하나만 가지고 있거나 앨범별로 변화시키더라도 기존 로고의 핵심 구조는 그대로 두었다. 하지만 2022년에 데뷔한 뉴진스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뉴진스를 레터링한 수많은 로고가 데뷔 당시 공개되었는데 공통점이 전혀 없다. 다만 데뷔 앨범의 스타일링을 2000년대(Y2K)에 초점을 맞췄기에 로고에도 전반적으로 2000년대 무드를 투사했다. 대부분의 로고는 웹상에서 움직이도록 구현했는데, 이는 2000년대 그래픽 스타일을 차용했지만 쇼트폼과 영상이 대세인 2022년의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 결과다. 한편 로고 부자인 뉴진스의 팬클럽 버니즈(애칭으로 ‘토끼’도 함께 사용된다)도 다양한 로고가 있는데 뉴진스 로고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미국 클래식 애니메이션이 떠오른다. 미래의 버니즈 로고도 뉴진스처럼 다양하게 변화해가며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아이돌 그룹과 팬클럽의 로고를 함께 분석해봤더니 전자에서 후자가 파생되는 경향이 보였다. 또한 아이돌 산업이 시류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다 보니 기업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리브랜딩을 하는데, 아예 처음부터 정형화되지 않은 로고 만들기가 새롭게 시도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돌은 노래뿐만 아니라 춤과 뮤직비디오, 브랜딩 등이 모여 하나의 결과물이 되는 종합적인 대중 예술이기에 디자인도 소홀히 할 수없다. 따라서 아이돌 그룹의 로고는 중요하며, 팬클럽 또한 자신들의 로고를 통해 소속감을 갖기에 아이돌 그룹의 로고와 필수 불가결한 관계다.
* 이 기사는 2021년 FDSC.txt 블로그에 게재한 ‘아이돌 그룹 로고 분류해보기’를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김한희 그래픽 디자이너
주로 화면에 구현되는 이미지를 만든다. 여성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더 즐겁게 살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인스타그램 hanheek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