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 강 《겨울계단(Gyeoulgyedan)》
갤러리 지우헌은 대상을 지각하는 새로운 접근법에 주목하며 캐스퍼 강의 전시 〈겨울계단〉으로 새해 첫 문을 연다. 한국계 캐나다 출생인 그는 2004년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직시 되는 형상을 독자적인 언어로 구축 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무의미로 말미암은 생경함에 대한 작가적 시선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는 작가 초기에 민화를 건축학적으로 재해석하면서 한지를 알게 되었고, 이후 한지를 여러 방식으로 해체하면서 그 물성을 실험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점차 추상으로 전개되었다.
한지를 불에 그을리거나 태우고, 닥죽에 대리석 가루와 아크릴 물감을 넣어 반죽해 덩어리를 만들기도 하면서, 연약해 보이지만 단단한 물성의 작품을 보여준다. 타고 남은 한지를 한데 모아 완전히 연소된 상태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고, 여러 장으로 중첩한 한지의 일부를 긁어내서 밑에 가려진 한지를 노출하는 반전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한지를 해체만 하는 것은 아니다. 투박한 벽돌 위에 섬세하게 반투명으로 덧대거나 그 위에 얇은 자개를 붙여 한지의 색을 언뜻 비춰지게 표현한 작품은 빛에 따라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이중적인 물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 사이로 무심히 세워진 조명기구는 작품을 가리거나 강한 빛으로 관람을 방해하며 전시 공간에까지 무의미함을 가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별 256’과 ‘사물 (14)’와 같이 숫자를 매긴 제목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란 기대는 그다지 필요치 않다. 작가 노트도 비슷한 맥락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단락 없이 웅얼거리는 듯한 말들은 부분적으로 구글에 검색하면 따라붙는 연관 검색어들을 섞어 늘어놓은 것이다. 무의미로부터 출발한 작품은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불특정 인과관계로 작용되는 사유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무의미한 대상은 오히려 그 주체가 강화되어 객체로 현현할 수 있다. 넓게 보면 그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대상의 정의가 합리성을 갖고 매몰되는 딜레마에 맞서고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이 아닌, 아주 오래전에 함께 품어질 수 있었던 의미들을 삶의 자장권으로 다시금 불러오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시 개요
캐스퍼 강 《겨울계단(Gyeoulgyedan)》
기간: : 2023. 2. 1(수)~3. 11(토), 월요일, 공휴일 휴관
시간: 10:30~18:30 (종료 30분 전 입장 마감)
장소: 갤러리 지우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문의: 02-765-7694 (전시/작품구매 문의)
작가 소개
캐스퍼강은 캐나다 토론토 출생으로 한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 칼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여 건축 디자이너 경력을 갖고 있다. 최근 프롬프트 프로젝트(2022), 대구 021갤러리(2022), 디 언타이틀 보이드(2021)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갤러리구조(2022), 라흰갤러리(2022), 분더샵 청담(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커미션 작업으로 강남 인터콘티넨탈호텔 아트워크(2022)와 탬버린즈 하우스/플래그십 스토어(2021) 등에서 활동 한 바 있다.
갤러리 지우헌은 ㈜디자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전시공간으로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을 개조한 독특한 구조로 전통적인 미감과 현대적인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2016서울우수한옥으로 선정되었을 만큼 뛰어난 건축미를 갖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에서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시공간적 특징을 가진 갤러리로서 동시대 미술의 흐름에 동참하며 국내·외 괄목할 만한 신진 작가 발굴을 도모한다.
- 큐레이터 김아름 Areum Kim, Curator | areum.kim@design.co.kr
- Instagram : @jiwooheon_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