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는 언제나 완벽했다. ‘삼순이’로 동시대 여성들을 대변할 때도, ‘품위 있는 여자’의 대척점에서 일그러진 욕망을 보여줄 때도. 도전하는 역할마다 새로웠으나, 매번 관객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올가을 JTBC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으로 돌아온다. 법복이라는 호화로운 갑옷을 두르고.
실크 슬립 드레스와 테일러드 재킷, 뱅글과 스트랩 샌들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슬립 원피스와 메탈 장식의 퍼 코트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어링은 에디터 소장품.
오랜만이네요. 1996년 화장품 광고로 데뷔한 이래, 거의 매년 꾸준하게 활동해왔는데요. 이번엔 햇수로 3년 만의 작품이에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제작이 미뤄지거나 촬영 환경이 바뀌면서 의도치 않게 여유가 생겼어요. 집에 머물면서 정말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죠. 예전에는 어떻게 해서라도 시간 내어 바쁘게 돌아다니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성향이 바뀐 것 같아요. 과거에 알던 사람들은 변한 모습에 놀라곤 해요.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이 곧 방영을 앞두고 있어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예전에는 내가 꽂히면 무조건 한다는 주의였는데, 요즘은 무언가 결정을 할 때 가능한 한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해요. 보는 시각이 좁아지거나 혼자서 작품에 너무 몰입하는 걸 피하려고요. 이번 작품도 소속사와 함께 검토했는데, 다들 반응이 좋아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슬리브리스 톱과 스커트, 깃털 장식의 울 코트 모두 프라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봐요.
진중한 작품을 연달아 하다 보니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촬영이 끝나도 현실로 돌아와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죠. 촬영이 겹치거나 할 때는 2개의 캐릭터 사이에서 자아의 혼란이 오기도 했고요. 작품마다 너무 깊이 빠져들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게 정말 최근의 일이에요. 이번 작품도 촬영이 끝난 뒤에는 최대한 거리를 두고 머릿속을 비워내려고 했어요. 아마 과거의 나 같으면 방송이 끝나는 날까지도 대본을 붙잡고 있었을걸요.
덕분에 여유 있고 건강해 보여서 좋아요. 작품 촬영은 4월에 이미 마쳤다고 들었는데,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같이 출연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안재욱·이미숙·오현경·송영창 선배님 그리고 신구 선생님까지, 모두 어렸을 때 TV에서 보던 분들이에요. 쟁쟁한 선배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웠죠. 스태프들에게 대신 사인 받아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요. 그분들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준비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최고의 자리를 수십 년간 지키는 이유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특히 이문식 선생님은, 정말이지 배우 지망생들이 보고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대사를 한시도 입에서 떼지 않고 무서운 집중력으로 임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감명받았어요.
블랙 컬러 톱과 스커트, 메탈 주얼리 모두 스포트막스. 스틸레토 힐은 주세페 자노티.
이번에 중앙지검 특수부 부장인 한혜률 역할을 맡았어요. 그간 다양한 직업을 연기했지만 검사는 처음이죠?
법조계 자체가 생소한 데다 사용하는 단어도 낯설어서 대사가 어려웠어요.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매사에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하는 법조인들에게 존경심이 들었고요. 세상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각자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매번 깨닫게 됩니다.
그간 맡은 역할에 따라 말하는 방식부터 사소한 몸짓, 옷차림까지 완벽한 변신을 선보여왔죠. 이번 역할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검사라는 직업, 많은 사람 사이에서 살아온 환경, 집안의 장녀라는 점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어떤 말투나 특징을 가지고 있을지 고민했어요. 또한 감정을 일차원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말투나 태도의 미묘한 차이로 이를 드러내고자 했죠. 예를 들어, 극 초반의 한혜률은 남편을 ‘자기’라고 부르는데 시간이 갈수록 ‘여보’라는 호칭이 더 많이 등장해요. 원래 대본에는 같은 단어였는데 감독님께 제안해 조금 다르게 표현해봤어요.
한혜률은 겉으로 보기에 모든 것을 갖춘 ‘럭셔리’한 사람이죠. 그럼에도 채우지 못하는 자신만의 욕망이 있고요. 진정으로 ‘럭셔리’한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삶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죠. 가진 것이 많다는 건 지켜야 할 것도 많다는 의미이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괴로움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지키는 과정이 즐거운 사람도 있어요. 반대로 아무것도 없어서 더 여유로운 사람도 있고요. 누구나 각자 행복의 기준이 있는데 그걸 채우는 삶이 곧 ‘럭셔리’한 삶 아닐까요?
트위드 소재 슬리브리스 톱은 루이 비통. 테일러드 재킷과 팬츠 모두 렉토. 골드 이어링은 루이 비통.
배우 김선아의 ‘럭셔리’는 무엇인가요?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나요?
오래전부터 ‘심장이 뛰는 일’을 좇아서 살자고 다짐해왔어요. 작품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나만의 ‘럭셔리’라 할 수 있겠죠.
장르가 다양해지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배우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도 넓어진 것 같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아직은 작품이 우선이에요. 장르나 플랫폼을 가리기 보다는 좋은 작품을 꾸준히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서요. 다만 최근에 어두운 작품을 많이 해서 새로운 작품은 조금 밝은 분위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더 늦기 전에, 액션이 필요한 역할도 욕심나긴 해요. 와이어도 꽤 타보고 액션 스쿨도 오래 다녀서 몸 쓰는 일에 자신이 있거든요. 몇 차례 부상당한 경험 때문에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요.
글리터 드레스는 에트로.
시한부 주인공으로 나온 <여인의 향기> 이후, 세간에 버킷 리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도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얼마나 채웠나요?
한 3~4개? 물론 목록 자체는 훨씬 긴데, 생각보다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꾸준히 들여다보며, 언젠가는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요. 드라마 촬영 당시에 주인공이 쓰던 낡은 가죽 수첩을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어요.
HAIR 정지우(차홍) MAKEUP 공하영(차홍) ASSISTANT 차세연 COOPERATION 렉토(790-0797), 루이 비통(3432-1854), 보테가 베네타(3438-7682), 생 로랑(549-5741), 스포트막스(511-3935), 에트로(511-2573), 주세페 자노티(543-1937), 프라다(3218-5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