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야말로 ‘기후 악당’.
매년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온실 기체 5백억 톤.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구는 약 1℃ 열이 오름.
계속 화석연료에 집착하면 지구 온도 3℃ 상승.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2백 년 만에 인류는 “인류세(Anthropocene, 인간이 지구를 바꾸어버린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에 살고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화석연료인 석탄과 석유를 조금이라도 더 뽑아내기 위해 암반을 파쇄하고 산을 폭파했으며, 바닷속 산호초를 비롯한 수많은 종을 무분별하게 멸종시키는 한편, 유전공학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기까지 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억 마리 가축을 먹어치우며 인간 이외 생명체의 개체 수를 제멋대로 조절해왔다. 지질학자 얼 엘리스Erle Ellis와 나빈라만쿠티Navin Ramankutty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자연 생태계들이 묻어 들어가 있는 인공 체계들”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에 대항하지 않는 대신 자연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하고 있다. 바로 우리 스스로 말이다.
늘 그러하듯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문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온실 기체를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으로 주입하고 있으며, 이는 지구를 점점 뜨거운 행성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류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빌 게이츠는 얼마 전 그의 저서에서 인류가 꼭 기억하면서 살아야 하는 숫자로 5백억을 제시했다. 그가 주목한 숫자는 바로 우리가 매년 공기 중으로 뿜어내는 5백억 톤의 온실 기체 양이었다. 이 중 대부분은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로 사용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다. 지구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 팬데믹 상황에서도 인류의 화석연료 중독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구 입장에서는 다소 황망하고 기괴할 수 있는 일을 인류가 매해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산업혁명 초창기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온실 기체의 축적은 이제 인류의 삶을 옥죄고 있다.
‘기후 위기!’ 얼마 전까지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등으로 표현하던 것을 이제 좀 더 강렬한 메시지인 ‘기후 위기’로 표현하고 있다. 소리 없이 수백 년 동안 진행돼온 지구의 온도 상승은 2000년대 들어 드디어 모든 사람이 인지할 정도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약 1°C 정도 열이 오른 지구의 현 상황은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나빠지면 곧장 응급실로 달려가야 할 만큼 위중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는 이상 기후 소식은 인류가 기후 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구가 보내는 시그널인 것이다.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중독된 삶을 지속하다가는 세기말 지구 온도가 3°C 이상 상승할 것은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인류 문명은 과연 이렇게 위중한 기후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은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새로운 청정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에너지 전환 시대는 이미 빠른 속도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미 태양광이 화석 연료의 에너지 효율을 넘어서고 있고, 인류는 자연의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탄소 감축, 플라스틱 의존증 극복만이 살 길?
2050년 1백억 명의 지구인이 먹고 살 자원이 남아 있을까?
지금부터 더 넓고 긴 시각으로 봐야 할 때!
역사를 돌이켜보자.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다. 더 효율적인 청동기가 나오는 순간 삽시간에 시대가 바뀐 것이다. 집집마다 한 대씩 있던 전화기 역시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삽시간에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화석연료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빨리 끝날지도 모른다. 내연기관차는 이미 퇴출 수순을 밟고 있고 그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태양광·풍력뿐 아니라 다양하고 창의적인 에너지 전환 아이디어를 세계 곳곳의 연구실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 중 일부는 세상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위해 인류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에너지 대전환뿐만 아니다. 두 번째 미션은 모든 현대인의 삶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플라스틱 의존성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석유화학 공정을 통해 탄생하는 값싸고 대량생산 가능한 플라스틱 제품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 더미는 거대한 쓰레기 산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썩지 않고 유독 물질을 뿜어댄다. 미생물을 이용한 분해,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용 등 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기초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지만, 인류의 플라스틱 의존증을 극복하는 일은 에너지 전환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인류에게 어려운 숙제가 될 전망이다.
인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른 방식의 삶을 지향하는 인류 보편의 마음가짐’이다. 현재 80억 명을 목전에 둔 세계 인구는 2050년 경 1백억 명을 돌파할 것이다. 1백억 명의 인간이 만약 현재와 같은 생활 방식을 이어간다면 지구에 있는 자원은 금세 바닥날 것이 자명하다. 기후 위기가 문제가 아니라 자원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절대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유한한 지구 자원의 재사용과 재생이 일상화된 삶, 덜 물질적인 삶이 미덕이 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인류 전체가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화석연료 중독을 인류 공통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정의롭지 못한 생각이다. 사실 국가건 개인이건 예외 없이 부유해질수록 훨씬 더 화석연료를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부자 10%가 쓰는 화석연료는 하위 50%가 쓰는 화석연료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부유할수록 탄소세와 에너지 사용료에 해당하는 세금을 더 많이 떳떳하게 내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문명의 대전환기에 대한 대비를 기후 위기 극복이라는 좁은 시각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의 공포에 질려 조급하게 탄소를 줄이기 위해 혈안이 되기보다는 차분하게 좀 더 큰 틀에서 국가와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합리적인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세워야 할 시기다. 이렇게 할 때 효율적인 탄소 감축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기후 위기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화석연료의 종말을 눈앞에 둔 지금, 어떻게 새로운 시기를 준비해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자.
Good bye 화석연료.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가 북극과 관련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한 극지 전문가이자 기후 과학자 김백민. 극지연구소 북극해빙예측사업단 책임연구원으로 남극과 북극의 기후변화를 재현하고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대기과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경대학교 환경해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지구인도 모르는 지구>(공저)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