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는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전은 부산의 민속 문화를 2년 동안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획한 전시다. 유물과 함께 다양한 기록 사진과 영상, 사물을 총망라해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서울 다음으로 대도시이지만 바다를 끼고 있어 색다른 매력이 느껴지는 부산을 전시를 통해 들여다봤다.
주최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 부산광역시
기간 6월 2일~8월 30일
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1
전시 기획 김유선, 이광일, 임슬기, 정수희
전시 디자인 유민지, 최상명
그래픽 디자인 이승은, 성정은
홍보물 디자인 스튜디오 닷츠(대표 윤성준·박현준), dots.co.kr
전시 영상 김민현, 슈가솔트페퍼(대표 구인회· 박우건·윤지원), sugarsaltpepper.com
웹사이트 nfm.go.kr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파도를 닮은 ‘부산’ 타이포그래피다. 입체적인 문자 위로 넘실대는 바다 물결 영상을 투사해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킨다.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면 부산의 옛 모습을 담은 지도와 조선통신사의 모습을 담은 행렬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조선통신사 행렬은 구경하기 쉽지 않은 국가적 이벤트였기 때문에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해 후세에 알리고자 했다. 사절단의 얼굴을 그려 관상을 분석한 니야마 다이호의 ‘한객인상 필화’, 통신사가 타고 온 배와 수행 행렬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조선인 대행렬기’, 사절단을 접시 위에 그려 넣은 ‘채색 통신사문 접시’ 등이 전시되어 시선을 끈다.
사진이 없었던 시절, 그림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기록하는 행위는 정보 디자인 관점에서 사건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우호적이었던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부산역을 개통한 일본은 전국에서 강제 수탈한 물자를 모두 집결시킨 다음 부산항에서 배에 실어 본국으로 날랐다. 부산역의 완공 시기가 용산역(1914)이나 서울역(1925)보다 빠른 1910년이었다니 일본이 식민지 수탈을 위해 부산을 얼마나 중요한 거점으로 취급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시품 중 하나인 ‘부산항 시가 및 부근 지도’는 일본이 부산항 일대 개발을 위해 부산항 매축 계획을 점선으로 표기한 일종의 도시 계획 도면이다. 그 외 1953년 화재로 소실된 구 부산역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사진 엽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해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한국전쟁으로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의 집결소가 되었다. 부산의 관광 명소인 감천문화마을 일대는 산비탈을 따라 판잣집을 지었던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된 동네다. 종군 사진기자가 남긴 기록 사진과 피난 시절의 애환을 노래한 음반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느껴볼 수 있다. 부산 영도에 기반을 둔 대한도기 주식회사는 부산에 모여든 화가들을 고용해 풍속화를 그려 넣은 장식용 도자 접시를 판매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기념품으로 무척 인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화가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접시에 그림을 그리면서 본인만 알아볼 수 있게 작은 글씨로 서명을 하곤 했는데 전시된 대한도기 접시 중 끄트머리에 작게 ‘환’이라고 적혀 있는 ‘연날리기 그림 백자 접시’는 1950년대 김환기 화백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이 끝나자 부산에는 LG화학(구 락희화학공업사), LG전자(구 금성사), CJ(구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 공장이 차례로 들어섰다. 부산을 입지로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이 컨테이너를 통해 원료 수입과 공산품 수출에 용이한 항만도시였기 때문이다. 특히 LG화학은 합성수지 성형 제품 공장에서 자체 기술로 국내 최초의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해 우리나라 치약 시장의 80%를 점유했다. 그와 함께 칫솔, 빗, 비눗갑 등 플라스틱 제품을 판매하면서 벌어들인 자본을 기반으로 1958년 부산 연지동에 LG전자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인하우스 산업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박용귀가 일하게 된다.
그는 엔지니어 김해수와 함께 국산 1호 라디오 ‘A-501’을 개발했다. 전시장에 진열된 A-501 라디오는 최초의 국산 텔레비전인 ‘VD-191’과 함께 국립민속박물관의 대표적 디자인 소장품이다. 한편 대량생산 디자인의 반대편에는 자생적이고 토속적인 버내큘러 디자인이 존재한다. 전시는 버내큘러 디자인도 포용하면서 부산의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담아내고자 시도했다. 일명 ‘부산 아지매’ 전시 코너다. 억센 환경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성들을 조명한 마지막 코너에서는 재첩국을 팔았던 리어카를 비롯해 생활 속 디자인을 보여준다.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전은 8월 30일까지 열리며, 이후 부산박물관에서 9월 14일부터 12월 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부산, 바다와 뭍의 나들목〉전에서 선보인 오브제
1 금성사 텔레비전(모델명 VD-191).
2 해녀 잠수복.
3 밀면 제면기와 도구.
4 잠수복 제작 도구.
5 잠수복 주문서.
6 금성사 라디오(모델명 A-501).
7 재첩국 판매 리어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