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은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에겐 매우 긴 하루였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모종의 협의’를 위해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일본 국민 83%가 올림픽 연기 혹은 취소를 원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나루히토 일왕마저 “국민적 우려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스가 내각은 귀를 닫은 채 ‘정상 개최’라는 희망가만 틀어대고 있었다. IOC 위원장의 긴급한 방문은 스가 총리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 와 같은 일이었다. 그날 밤 일본 정부, 대회 조직위원회, 도쿄도, IOC, IPC 관계자가 머리를 맞댄 결과가 긴급 타전됐다.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총 여덟 개 지역 중 수도권 네 곳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를 것. “무관중 선언은 코로나19에 굴복하는 일”이라던 스가 총리도 최악으로 치닫는 도쿄의 코로나19 확산 앞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으로 기록될 도쿄 올림픽에 움찔한 건 슈퍼스타들이었다. 르브론 제임스가 미국 국가 대표 농구팀 불참을 선언했고, 골프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 테니스 여제 세리나 윌리엄스, 라파엘 나달이 도쿄행을 접었다. 슈퍼스타들의 참가가 올림픽 흥행의 주요 척도라는 걸 감안하면 뚜껑 열린 압력솥이 떠오를만한 상황이다. 당장 3백63만 장이 팔려나간 입장권부터 환불해야 하는데, 무려 1조 원 가까운 금액을 돌려줘야 한다. 개회식 매뉴얼도 손대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각국 선수들의 입국 일정부터 분산한 터라, 개회식 참가 선수는 최소한으로 정해질 전망이다. 환호와 박수가 금지될 테니, 국적과 종목을 가리지 않고 어울리는 개회식의 축제 분위기는 물 건너간 셈이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참가 선수들에게 나눠준 지침서는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지, 바이러스에 집중해야 하는지 혼동하게 할 정도다. 나라별 국가 대표 선수는 올림픽 선수촌 이외 지역에서 머물 수 없다. 선수촌 입촌은 경기 5일 전, 지정된 훈련 장소를 사용하는 건 4일 전부터 가능하다. 예를 들어 7월 23일 도쿄 신국립경기장에서 열리는 개회식에는, 7월 28일 이후 첫 경기를 시작하는 종목의 선수는 참석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경기를 끝낸 후 관광에 나설 수도 없다. 자신이 출전하는 마지막 경기를 끝낸 선수는 48시간 안 에 일본을 떠나야 한다. 첫 시합에서 패배한 선수는 대회 사흘 만에 짐을 쌀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 선수단 일정을 적용하면, 대회 4일째 일정이 끝나는 태권도, 7월 31일 금메달이 결정되는 양궁 등 효자 종목 선수들은 폐회식 구경도 못 하고 돌아와야 한다. 선수들은 최대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피해야’ 한다. 그 결과로 이번 올림픽에서는 선수촌에 배포하던 콘돔이 무용지물이 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무료 콘돔을 배포해 2백여 개국 선수의 안전한 성생활을 가능하게 했던 ‘올림픽 전통’ 하나가 이번엔 특별한 기념품이 될 거라는 것. 그뿐 아니다. 모든 선수는 혼자 식사하고,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에서는 대화를 삼가야 하며, 언론과 지원 요원, 공식 차량 운전자와도 말을 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벌금, 실격, 심지어 메달을 박탈하 거나 추방할 수 있다는 강력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려나, 천문학적 손실을 떠안기 싫은 IOC와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핑퐁 게임 결과로 전대미문의 무관중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다. 올림픽 헌장에 적힌 고상한 이념과는 거리가 먼, ‘정치’와 ‘자본’으로 덧칠한 전지구적 묵언 이벤트를 지켜보는 마음이 가벼울 리 없다.
문일완은 <바자> <루엘> <엘라서울> 등 독자층이 제각각인 패션 잡지, 남성 잡지,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넘나드는 바람에 무규칙한 문법이 몸에 밴 전직 잡지쟁이다. 그래픽 노블을 모으고 읽는 것, 아무 골목길이나 들어가 기웃거리는 게 요즘 취미 생활. 칼럼니스트로 여러 지면에 글을 쓰느라 끙끙대고, 사춘기 코스프레 중인 딸과 아웅다웅하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