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혁신적 점자 기기를 개발해 주목받은 소셜 벤처 기업 ‘닷’.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완성해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세상을 접하는 방식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기술을 활용하는 데 불편을 겪는 문제를 해소한 이 키오스크는 부산시 모든 지하철 역사 안에 설치될 예정이다.
촉각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닷 패드. 시각장애인도 점자로 그래픽 작업이 가능해 게임, 엑셀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스티비 원더, 안드레아 보첼리가 출시 전 선주문한 점자 시계 ‘닷 워치’, 미국 교육부 지정 시각장애인 교구로 채택된 점자 스마트 패드 ‘닷 패드’. 2015년 창업 이후 소셜 벤처 기업 ‘닷’이 일궈낸 성과다. 닷은 112개가 넘는 원천 특허 기술을 개발해 시각장애인이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림, 지도, 수식 등 그래픽 영역까지 촉각 패드로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전 세계 IT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미국 워싱턴 대학과 유타 대학에서 각각 유학을 하며 창업의 꿈을 키워온 김주윤·성기광 대표. 김 대표는 유학 시절 시각장애를 겪는 룸메이트를 통해 무겁고 큰 점자 기기의 불편을 목격했고, 귀국 후 오랜 친구인 성 대표와 함께 이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전했다. 점자 기기의 원리를 익히고, 3년여의 제품 개발과 1년여의 시험 판매 기간을 거친 그들은 촉각 패드의 크기와 무게를 20분의 1로 줄였고 가격도 5분의 1 수준으로 낮춘 스마트 점자 시계 닷 워치를 출시했다. 점자를 몰라도 점자판의 돌기인 ‘촉각 셀’을 통해 시간을 볼 수 있고, 스마트폰과 연동해 정보를 점자로 변환해주는 기능까지 갖춘 기기다.
언어 또한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러시아어, 아랍어까지 13개 언어를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장애에 낯선 시선을 보내지 않고 차별을 금지하는, 미국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이 확립된 환경을 경험한 뒤 제 가치관이 온전히 바뀌었죠. 세상에는 많은 불편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예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건 또 다른 영역일 테고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불편한 기술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 아니라 생각했고, 이를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김 대표의 말이다. 초소형화, 경량화 기술을 구현하는 데 성공한 닷은 촉각 터치 기술을 스마트 패드 형태로 만든 닷 패드를 연이어 양산 중이다. 패드에 점자로 그래픽을 구현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스템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현재 20개국에 진출한 닷은 파타고니아, 탐스 등이 받은 글로벌 사회적 기업 확인증 ‘비콥B-corp 인증’을 받기도 했다.
20개국에서 판매 중인 닷 워치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모두를 포용하는 기술
20대를 점자 기술 개발에 몰두해온 두 대표는 새로운 전환점에 섰다. 퍼스널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데서 나아가 ‘닷 키오스크’를 선보인 것이다. 닷이 개발한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 패드 지도와 음성 안내,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영상과 자막, 지체 장애인을 위한 자동 높이 조절 기능 등을 갖췄다. “시각장애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문제를 조사하다 보니 점점 문제가 광범위해지는 걸 깨달았어요. 기술과 정보는 발전하지만 ‘디지털 불평등’ 문제는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죠.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능숙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 많다는 걸 간과한 시스템을 반드시 고쳐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성기광 대표의 말이다.
도시의 많은 서비스가 디지털화되면서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 및 결제를 하거나 정보를 얻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휠체어에 앉으면 높이가 맞지않고, 검색어를 입력할 수 없거나 음성이 들리지 않아서 이용이 어려운 이들 또한 분명 존재한다. 닷의 기술은 비단 장애인의 영역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어린이, 노약자 등 기술에 접근하기 불편한 이들을 포용하는 역할도 한다. 닷 키오스크는 강남구청, 인천 서구 등 민원 서비스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박물관, 공항 등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모두 호응을 받고 있다.
부산시 스마트시티 챌린지사업으로선정되어 부산역에 3대가 설치된 닷 키오스크. 올해 부산시 114개 역에 설치될 예정이다.
배리어프리, 스마트 시티의 요건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내거는 스마트 시티(디지털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수집, 관리해 활용하는 도시)의 개념에 ‘배리어프리Barrier-free’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십수 년 전부터 대두되어온 배리어프리는 모든 시민이 자연스럽게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데 물리적, 심리적 장애물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닷의 지향점과 맞닿아 있다. “단 1명이라도 불편을 느낀다면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사회와 그저 생색 내듯 약자를 위한 보여주기식 정책을 펴내는 사회는 다른 차원의 사회일 겁니다”라고 김 대표는 말한다. 닷은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부산시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의 컨소시엄으로 선정돼 부산역, 서면역에 키오스크를 설치했고 올해 부산시 114개 모든 역사에 키오스크 설치를 앞두고 있다.
키오스크를 통해 교통 약자들을 위한 전용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는 방법을 검색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피드백을 보완하며 진화 중이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성 대표가 덧붙였다. “장애의 유무, 국적, 계층에 관계없이 누구든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접근하는 데 힘쓰고 싶습니다. 파편화된 제도와 서비스를 통합해 닷이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묵묵히 끌고 나가야죠. 닷의 키오스크를 루브르박물관 같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만날 날이 머지 않을 겁니다.”
성기광 & 김주윤 1990년생 친구 사이인 두 대표는 미국에서 함께 트럭 공유 경제 서비스 앱회사를 차렸다가 실패를 경험한 뒤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창업을 하고자 2015년 닷을 세웠다. 닷 워치를 선보인 뒤 iF 디자인 어워드 수상, 칸 국제광고제 혁신부문 금상 등을 수상했고, 이어서 닷 패드와 키오스크를 출시했다. 닷은 총 누적 투자 금액 120억 원을 달성하며 끊임없이 R&D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닷 홈페이지(dotincorp.com)를 통해 닷 워치를 구입할 수 있고, 캠페인에 참여하면 밀알복지재단에 기부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