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을 들여 감각적인 공간을 찾아가는 일은 단조로운 일상을 산뜻하게 환기시켜준다. 부산의 디자인 문화를 선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 7곳을 소개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메인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관전 <리플렉션즈 인 모션>.
기존 건물의 형태와 골조를 유지한 채 레노베이션했다.
뮤직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주 중인 금난새 감독.
F1963
부산의 대표적 복합 문화 공간 ‘F1963’은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몇 해 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으더니 최근 현대모터스튜디오가 들어선 뒤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F1963은 부산에 뿌리를 둔 글로벌 기업 고려제강이 와이어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간 공장으로 쓰임을 다한 뒤 2016년 9월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이 된 것을 계기로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부산역과 해운대 사이, 어디든 접근성이 좋은 망미동의 지리적 이점 덕분에 국제갤러리, 카페 ‘테라로사’, 국내 최대 규모의 중고 서점 등 흥미로운 공간으로 하나둘 채워졌고, 연간 방문객이 약 60만 명에 달하는 부산의 명소로 떠올랐다. 국내 재생 건축이 화두이던 2016년, F1963은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를 맡은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공장의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살린 채 약 1000㎡에 가까운 부지를 탈바꿈했기 때문. 오랜 세월을 버틴 목재 트러스, 철골 와이어 등을 오브제로 활용하고, 선을 간결하게 정리해 살려두는 식으로 공간을 꾸렸다. 본래 막혀 있던 공간 가운데에 중정을 두어 환기와 채광을 높였고, 푸른 익스팬디드 메탈을 외관에 부착해 모던한 분위기로 공간을 확장했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현대모터스튜디오가 자리한 신관 공간은 원오원건축사사무소 최욱 소장이 총괄했다. 기존 F1963 건물과의 연속성을 위해 와이어와 철골을 활용했고, 2~3층 전시장 천장에는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알루미늄 루버를, 4층 천장에는 F1963의 외관 소재와 같은 익스팬디드 메탈을 사용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사용했던 플라스틱, 유리 등 폐자재를 가공해 만든 테록시를 마감재로 쓴 것 역시 옛것과 새것의 연속성을 꾀한 시도다.
크리에이티브 월에서 상영되는 디지털 아트 그룹 유니버설 에브리싱의 작품.
F1963 도서관은 미술, 사진, 음악, 건축 4가지 테마의 책을 볼 수 있는 예술 전문 도서관이다.
공장의 철판을 활용한 카페 테라로사의 커피 바와 테이블.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이 ‘Design to Live by’라는 콘셉트를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디자인을 주요한 가치로 내걸면서 F1963은 한층 문화적 다양성을 갖춘 공간이 될 듯하다. 아트와 테크를 융합한 전시장을 마련한 데다 건물 외부에도 크리에이티브 월을 배치해 디지털 아트 그룹 유니버설 에브리싱의 작품 등 디지털 아트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 기존 국제갤러리의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와 뉴 미디어 전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신관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에는 음악을 위한 공간인 GMC(Gum Nanse Music Center)가 더해졌다. 부산 출신의 지휘자 금난새 음악감독과 고려제강이 3년간 준비해 탄생한 곳으로 지역의 음악 예술가들과 협업하고, 청소년을 위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및 페스티벌 등 음악 관련 프로젝트와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GMC의 뮤직 홀은 사면을 통유리로 꾸며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이 공연 및 리허설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클래식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열린 문화로 만들기 위한 금난새 감독의 의도다. 예술 전문 도서관, F1963 도서관도 눈여겨봐야 한다. 미술, 사진, 음악, 건축 등 예술 전문 서적과 유명 작가의 작품집 1만3000권을 보유한 곳으로 절판되어 희귀 서적으로 분류된 책을 비롯해 클래식 음악 악보와 DVD까지 두루 갖췄다. 연회비가 필요한 멤버십제로 운영되지만 1일권으로도 이용할 수 있다. 1960년대를 풍미한 서적의 아카이빙을 보여주는 전시도 함께 열리는 중이다.
주소 수영구 구락로 123번길 20
운영 시간 매일 오전 9시~ 오후 9시
문의 051-756-1963
WEK BUSAN
언덕에 올라 바다와 숲의 풍경을 눈에 담기 좋은 달맞이고개에 또 하나의 매력적인 공간이 탄생했다. 지난 12월 문을 연 비아인키노 부산점 ‘WEK BUSAN’은 부산 주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명소가 됐다. 6층으로 구성된 건물에서 비아인키노 제작 가구와 루이스 폴센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조명, 미드센추리 모던 시대의 빈티지 가구를 만날 수 있는 리빙 쇼룸, 카페, 큐레이션 서점, 패션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 각 공간은 곳곳에 숲과 바다가 보이는 창을 다양한 크기로 내 탁 트인 느낌을 선사한다. 특히 모든 좌석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카페와 루프톱 공간은 부산 어느 곳에서도 이런 풍경을 보기 어렵다는 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독일어로 ‘영화처럼’이라는 뜻을 지닌 비아인키노는 일반 가구는 물론 어린이 가구나 반려동물을 위한 가구 등 색감이 돋보이는 다양한 가구 컬렉션을 선보이는 브랜드다. 가구로 시작해 2017년부터는 서점 ‘라이프북스앤아트’, 카페 ‘라이프커피 & 티’를 운영하며 안정적인 브랜딩을 선보여왔다. 공간과 공간을 안락하게 구성하는 요소인 책과 커피 등을 즐기며 풍요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브랜드를 표방한다. 서점에서는 전시와 북 토크가 열리기도 하고, 작가를 포함한 북 큐레이션 팀이 아트·건축 전문 서적, 사진집과 소설 등을 엄선해 소개한다. 장미셸 바스키아, 사이 톰블리 등 유명 작가의 아트 포스터도 이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 카페는 ‘브루Brew’를 콘셉트로 운영해 커피를 에스프레소 머신 대신 브루잉 머신으로 내려준다. 티는 과일, 허브를 기반으로 한 2가지 맛의 자체 블렌딩 티를 포함해 티 하우스와 제휴해 다양한 종류의 차를 낸다. 또한 층마다 패브릭 브랜드 키티버니포니나 주기적으로 바뀌는 패션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도 만나볼 수 있어 재미를 더한다.
주소 해운대구 달맞이길65번길 167
운영 시간 매일 오전 11시~오후 7시 (카페 오후 9시)
문의 1899-6190
베르크
개성 강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가 많은 부산에서 확실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로스터리 커피 브랜드 ‘베르크Werk’. 다채로운 바bar와 식당, 카페가 많은 거리인 전포동에 문을 연 뒤 4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사상구에 자체 로스터리 공장을 마련해 전국 100곳이 넘는 카페에 원두를 제공할 만큼 맛있고 질 좋은 커피로 유명하다. 르완다, 과테말라 등 다양한 산지의 농장에서 공수한 싱글 오리진 원두를 선보이고, 브라운 슈거와 캐러멜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내는 자체 블렌딩 원두 ‘베이비’를 맛볼 수 있다. 머지 않아 새로운 블렌딩 원두를 선보일 예정이니 시도해보길 추천한다. 감각적인 공간 디자인 또한 이곳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버려진 교회 의자를 활용해 고요한 예배당을 연상시키는 2층 공간과 어두운 조명에 스탠딩 테이블이 놓여 클럽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지하 1층의 대조가 흥미롭다. 지하 1층에서 바리스타와 상담을 통해 커피를 주문한 뒤 앰비언트 뮤직이 흘러나오는 2층에서 커피를 즐기는 이색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주소 부산진구 서전로58번길 115
운영 시간 평일 오후 1시~8시, 주말 및 공휴일 낮 12시~오후 8시 30분
문의 051-817-2111
대림맨션
휴양지의 들뜬 공기가 가득한 해운대 거리, 오션 뷰 호텔과 대조되는 건물 대림맨션은 1975년에 지은 아파트로 여전히 거주민이 사는 공간이다. 지난해부터 편집숍, 갤러리, 카페 등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주거 공간과 상업 공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 동으로 이뤄진 건물에 들어서면 타르트 숍 ‘훌리건 타르트’가 반겨주고 이어서 2, 3층에 띄엄띄엄 숨어 있는 작은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골조를 살려두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특히 둘러보기 좋은 공간은 305호에 자리한 갤러리ERD 부산지점. 이태원의 갤러리와 같은 전시를 동시에 개최하기도 하고, 다른 전시를 열어 변주를 줄 때도 있다. 6월 26일까지는 최운형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젠더, 자본주의 등의 주제를 블랙 코미디처럼 비틀어 보여주는 도발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전시다. 고유한 조향 방식과 감각적인 패키지로 인기를 얻은 뷰티 브랜드 논픽션의 쇼룸도 방문해봐야 한다. 207호는 쇼룸이고, 302호는 언택트 룸으로 방해 없이 제품을 시향할 수 있다. 가구들이 배치된 공간에서 카드를 써볼 수 있도록 꾸며놓아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주소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302
운영 시간 매장 별도 문의
문의 갤러리ERD 070-4115-0419, 논픽션 051-747-4096
프리젠트
햇볕을 쬘 수 있는 가든, 책과 커피, 가벼운 허기를 달래주는 베이커리. 휴식에 이 이상의 것이 필요할까? 부산 전경을 조망할 수 있어 드라이빙 코스로 유명한 황령산 초입에 자리한 ‘프리젠트’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인 곳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리젠트를 이끄는 강범규 대표가 꾸린 공간으로 인문학과 디자인 서적으로 이루어진 작은 서점 겸 카페다. 독서 토론회를 할 수 있는 세미나실과 테라스 및 루프톱 공간을 갖추고 있어 매달 음악 연주회를 열기도 하고, 이따금 무용 공연이나 전시 등의 문화 활동을 펼치기도 한다. 특히 이곳에서는 강 대표가 고성호 건축가와 함께 완성한 건축물을 통해 공간을 창의적으로 해석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자연녹지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건물을 지어 공간 활용에 제약이 많았는데, 녹지와 어우러지게 건물을 설계하고 일부 천장을 개방해 하늘을 향해 열린 것 같은 자연 친화적 공간을 만들었다. 주변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빨간 벽돌과 식물이 가득한 테라스 공간이 유럽 어느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소 수영구 황령산로 31
운영 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10시
문의 070-7863-5066
스크랩
작년 부산비엔날레가 개최된 지역인 영도에 문을 연 ‘스크랩SCRAB’은 카페 겸 아트 숍, 전시장으로 구성된 복합 문화 공간이다. 아트 라운지를 표방하며 부산의 젊은 세대에게 전시를 통해 다양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올해 2월에는 오픈 첫 전시로 을 열기도 했다. 부산과 서울 간의 문화적 교류를 늘리기 위한 취지로 연희동에 위치한 아트 스페이스 ‘캐비닛 클럽’과 협업해 기획한 전시다. 일러스트, 그래픽, 영상, 타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80명의 크리에이터에게 아트워크를 받아 포스터로 전시하고 이를 굿즈로 제작, 판매해 이목을 끌었다. 스텔컬러 등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도 함께 참여했다. 해운대, 기장에서 볼 수 없던 색다른 부산의 바다 풍경을 볼 수 있는 것도 장점. 조선소가 많아 어선과 화물선 같은 선박들을 품고 있는 바다를 통창으로 바라보다 보면 항구도시의 멋이 살아 있는 부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주소 영도구 해양로 247번길 35
운영 시간 매일 오전 10시~오후 8시
문의 인스타그램 @scrab_busan
아레아6
영도 봉래시장 근처 골목, 본래 오래된 주택 6채가 있던 땅에 새로운 복합 문화 공간이 문을 열었다. 올해 2월 오픈한 ‘아레아6’는 부산의 대표적 로컬 브랜드 삼진어묵의 비영리 법인 삼진이음이 완성한 곳이다. 삼진이음의 홍순연 이사는 지역민을 위한 도시 재생 사업과 창업 지원을 해온 이력을 살려, 근대화의 모습을 잘 간직한 영도 지역을 활성화하고 스몰 브랜드를 지지하는 목적으로 공간을 기획했다. 건축을 전공한 홍 이사는 방문객들이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방에서 출입이 가능한 중정을 두고 이와 이어지는 3층 건물을 구성했다.
아레아6는 ‘아르티장 골목’을 콘셉트로 장인 정신을 지향하는 브랜드를 위한 플랫폼을 표방한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숍과 공유 오피스, 세미나 룸 등이 마련돼 있는데, 1층에서는 로컬을 주제로 작업하며 장인 정신을 이어가는 9개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전국의 공예 장인들과 협업해 새롭게 재해석한 공예품을 선보이는 ‘취프로젝트’의 쇼룸, 부산을 대표하는 타월 제조 브랜드 ‘송월타월’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 부산의 로컬 술을 만날 수 있는 주류 전문점 ‘부산주당’ 등이 대표적이다. 2층에는 가죽 전문 브랜드 WSL의 카페와 숍이 자리하는데, 가죽공예를 위한 다양한 재료를 구입할 수 있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공간을 구성하는 브랜드들은 모두 지역의 가치를 지키거나 수공예로 창작품을 선보이는 브랜드로 엄선한 것. 또한 공유 오피스 공간을 구성해 젊은 창업가를 위한 세미나를 열거나 3층 루프톱 공간을 활용해 지역민을 위한 파티를 기획하기도 한다. 영도 지역뿐만 아니라 부산 로컬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가 궁금하다면 방문해볼 만하다.
주소 영도구 태종로105번길 37-3
운영 시간 매장 별도 문의
문의 인스타그램 @area6.yeongdo
#오늘의숍 #디자인스팟
디자인 스팟은 <럭셔리>, <럭셔리M>, <디자인>, <행복이 가득한 집>, <스타일 H> 등을 발행하는 디자인하우스의 에디터와 마케터가 선별한, 지금 가장 주목할 만한 상업 공간입니다. 카페와 레스토랑, 플래그십 스토어, 편집매장 등 콘셉트와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모아 각 매체의 지면과 SNS를 통해 소개합니다. 디자인 스팟에 대한 다양한 정보는 공식 인스타그램(@designspot.dh)과 네이버 포스트(c11.kr/designspot)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