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연인에게, 혹은 존경하는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담아 보내는 편지를 통해 아티스트의 풍부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간단하지만 개성이 담긴 그림으로 보는 재미를 더한 예술가의 편지를 모았다.
윤희순과 정현웅이 조풍연에게
(위) 정현웅, (아래) 윤희순, ‘조풍연 결혼 축하 화첩’, 종이에 채색, 각 23×34cm, 1941,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많은 시와 소설을 등단시킨 문예지 <문장>. 1941년 봄, <문장>이 폐간되던 무렵, 발행의 실질적인 실무자로서 활약하던 조풍연의 결혼식이 열렸다. 가난한 화가들은 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각자의 개성을 담은 화첩을 엮어 선물했다. 윤희순은 금슬이 좋은 청둥오리 그림으로, 정현웅은 부부와 자녀의 다복한 모습이 담긴 그림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기원했다.
폴 시냐크가 클로드 모네에게
Paul Signac, ‘Letter to Claude Monet’ © Christie’s Images Ltd
1920년 노년의 클로드 모네는 정기적으로 예술가, 수집가, 정치인들을 지베르니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하곤 했다. 이 무렵 병을 앓던 폴 시냐크는 모네의 초대에 응하지 못해 애석한 마음을 편지에 옮겼다. “선생님의 친절한 초대에 도저히 응할 수 없었습니다. 대 장식화를 직접 보고 지베르니에서 근사한 하루를 보냈다면 기뻤을 터인데요. 부디 용서하세요.”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 라로셸에서 요양 중이던 그는 이 곳의 랜드마크인 중세 탑과 항구에 정박한 배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헤다 스턴에게
Antoine de Saint-Exupéry, ‘Antoine de Saint-Exupéry letter to Hedda Sterne’, ©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1943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친구 헤다 스턴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 위해 쓴 편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완성한 직후에 쓴 이 편지는 책의 완결에 대한 언급과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어 더 특별하다. 동시대 여성 화가 헤다 스턴은 생텍쥐페리에게 글과 그림을 함께 넣은 책을 만들어 보라고 제안한 친구로 유명하다.
조지 그로스가 에리히 S. 헤르만에게
George Grosz, ‘George Grosz letter to Erich S. Herrmann’, ©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이번엔 나도 진탕 마실 거야” 독일 사회를 풍자하는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조지 그로스. 1945년 7월, 그는 자신의 52번째 생일 파티에 친구 헤르만을 초대한다. 금주 기간이 끝났음을 알리며 함께 술을 잔뜩 마시자는 내용을 담은 편지에 헤네시Hennessy의 코냑을 따른 귀여운 술잔 그림을 덧붙였다.
김환기가 김향안에게
Ⓒ 국립한글박물관
“1955년 멀리 파리에서 처음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을 나의 향안에게. 행복과 기쁨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진눈깨비 날리는 성북동 산 아래에서 으스러지도록 안아준다 너를.” 김환기는 시인 이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부인이었던 김향안과 결혼했다. 그가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김향안에게 부친 편지에는 타지 생활 중인 아내를 향한 그리운 마음과 사랑이 가득 묻어 있다. 결국 1956년, 김환기는 교수직 제안을 포기하고 아내가 있는 파리로 향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폴 고갱에게
Vincent van Gogh, ‘Autograph letter : to Paul Gauguin, with a sketch of “Bedroom at Arles” ’, ©The Morgan Library & Museum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를의 침실Bedroom in Arles’이 편지에 그려져 있다. “자네가 잘 알고 있는 하얀 나무 가구가 있는 내 침실을 그렸네. 아무것도 없는 내 방 안을 그리면서 정말 즐거웠네.” 1888년 2월 남프랑스로 향한 고흐는 아를에 노란 집을 얻고 고갱을 이곳으로 불렀다. 고갱이 도착한 후 둘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자신의 방을 그리고 고갱을 초대하는 이 편지에는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앙리 마티스가 앙드레 루베이레에게
© Succession H. Matisse
편지의 주인공인 앙드레 루베이레는 프랑스 풍자 화가이자 작가로 파리의 에콜드 보자르에서 앙리 마티스와 처음 만났다. 1941년에 마티스가 십이지장 암과 폐색전증을 동시에 앓으며 대수술을 하게 되는데, 이 무렵부터 오고 가기 시작한 둘 사이의 편지는 마티스가 사망한 1954년까지 13년 동안 이어진다. 1948년 12월에 작성한 “나는 영감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당신과 함께합니다.”라고 쓰여진 편지를 보면 두 사람의 우정을 엿볼 수 있다. 그림은 루베이레에게 보낸 편지 봉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