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로 모두 갑작스러운 대전환을 마주했다. 그리고 올해 3월도 지난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어지는 팬데믹 상황에서 5명의 디자인 교육자들이 지난 2020년의 비대면 수업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디자인 교육에 대해 의논했다.
Q1. 코로나19 발생 이후 비대면으로 수업한 지난 한 해는 어땠나?
Q2. 현재 비대면 교육의 일환으로 온라인 교육 콘텐츠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면서 디자인 고등교육의 위기가 더욱 대두됐다. 유튜브는 물론 온라인 콘텐츠는 대학교 수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Q3. 비대면 시대 ‘캠퍼스’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질까?
박경식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시작으로 비대면 수업, 온라인 수업, 대면 수업 그리고 비동석asynchronous 수업을 캐나다와 한국에서 진행했다. 지금은 한국에서 캐나다 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A1. 화상으로 진행하는 수업에 대해 처음에는 반감이 있었지만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비동석 수업은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어서 일반 수업보다 더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거나 작업을 봐주게 되었다. 어찌 됐든 적응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비대면 수업을 시작하고 몇몇 학생은 수업을 철회했고 심한 경우에는 휴학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견디는 쪽을 택했고, 어떻게든 한 학기를 마쳤다.
A2. 이미 진행 중인 듯 하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학위라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있기 때문에 당장 고등교육의 다원화가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해외는 좀 다른 것 같다. 이번 팬데믹으로 북미의 많은 대학이 폐교하고, 입학 지원서가 주요(일류) 대학에 몰리는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트위터나 유튜브가 요즘 뉴스를 대신하는 것처럼 온라인 교육이 고등교육의 대안으로 떠오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A3. 사실 이 점이 제일 우려되는 부분이다. 특히 디자인 같은 실기 중심 학과는 비대면에만 의존할 수 없고 디자인 교육은 강사와 학생 간에 무언으로 교류하는 ‘감’이라는 게 있는데,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강사도 중요하지만 급우 간의 교류가 더없이 중요하다. 원격으로 형성되는 유대 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다. 비대면 교육이 앞으로 디자인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디자인 교육의 핵심이 결여되지 않은 채 그러한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김나무
디자이너 겸 교육자. 국립한경대학교 디자인건축융합학부 전임 교수로 시각 디자인과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친다.
A1. 원해서 맞이한 일은 아니지만 이제야 새로운 세기, 21세기가 시작된 것 같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보면 ‘이기지 못할 바에는 깨끗하게 최후를 장식하겠다’는 타루에게 리외는 이렇게 얘기한다. “아니요. 성자가 되려면 어떻게든 살아야죠. 끝까지 싸우십시오”라고. 작년 2학기 종강 날 수업 에필로그로 학생들에게 들려준 구절이다. 여전히 쉽지 않지만 계속 부딪치며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할 계획이다.
A2. 이 질문이 현재 제도권 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수로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다. 이번 팬데믹이 보여준 것은 미래는 절대 우리의 예상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림을 한번 그려본다면 공존하며 함께 발전하는 구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적어도 교육만큼은 일반 서비스업처럼 인기 영합주의나 고객 최우선을 지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제도권 교육의 장단점을 잘 파악해 점점 다양해지는 온오프라인 교육 환경 및 시스템과 조화를 이루면 구성주의 교육의 등장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고.
A3. 대한민국은 확실히 학령 인구가 드라마틱하게 감소하고 있다. 신생아 출생률도 1명 미만으로 진입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개념의 학교와 이제 이별을 고해야 할 것 같다. 머지않아 캠퍼스 문화는 분명 크게 바뀔 것이다. 이미 미네르바 스쿨이 선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온·오프라인 대면이 효용에 따라 복합적으로 운영될 확률이 높다. 즉 캠퍼스 중심의 공동체 문화에서 개별자 중심의 학습과 커뮤니티 문화로 옮아갈 듯하다. 좋은 현상인지 아닐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으나 지금은 과도기라 생각하고 신중히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강구룡
디자인 교육자. 현재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며 디자인 스튜디오 청춘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 〈디자이너의 비밀〉 〈위트 그리고 디자인〉이 있으며, 유튜브 채널 〈강구룡의 디자인 읽기〉를 운영하고 있다.
A1. 1학기에는 대부분 기술적 문제로 적응이 힘들었는데, 2학기부터는 학생과 교사 모두 익숙해지면서 오프라인 수업과 큰 차이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물론 학생들에게는 대면 수업만큼 만족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생동감과 현장감이 온라인에서는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또 온라인 실기 수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남겼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도 비대면 수업이 수업의 새로운 대안과 교육 방식으로 계속 유지될 것 같다. 학생과 교사 모두 처음이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A2. 앞으로 코로나19 상황이 끝난다고 해도 유튜브, 온라인 콘텐츠 등을 활용한 비대면 수업은 계속 유지될 것 같다. 지난 1년간 대면 수업을 대체할 가능성을 많이 발견했다. 다만 디자인은 실기 위주 수업이라 참여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만히 듣고만 수업을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소통이 중요한데, 교사가 사용하는 용어를 학생이 다른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디자인에는 추상적 스타일을 묘사하거나 형용하는 언어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디자인 용어를 디자이너만의 시각으로 명쾌하게 정의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A3. 비대면 수업은 이동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시간을 줄여 개인 실습이나 수업 준비에 할애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학교라는 유대감이 사라지고 개인의 능력만으로 모두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 커졌다. 과거에 다 같이 실기실에서 밤을 보내며 과제를 하던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함께 무엇을 만든다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은 컸다. 비대면 시대에는 혼자서 공부하고 성취하고자 하는 동기가 더 필요하다. 학생들은 학교에 모여 소속감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 앞에서 ‘내가 뭘 해야하지?’라는 멍한 순간을 많이 만나게 된다. 스스로 재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수업도 재미와 열의를 갖기 힘들다. 진지하게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질문해야 한다.
제임스 채
미국 교포 디자이너 겸 교육자. 홍익대학교 디자인컨버전스전공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품 활동과 커머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A1. 작년에는 모든 수업을 줌으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고 학생들 반응도 좋지 않았다. 특히 공동 작업 시간에는 서로 낯설어하며 어색하게 수업을 진행했다. 2학기에는 전략을 바꿨다. 과제를 늘리는 방향이었는데, 서로 교류를 못 하는 상황이니 각자의 작업에 더 몰두하면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한번은 화상으로 몸을 이용하는 워크숍도 진행했다. 카메라 앞에서 다른 방법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시도한 것이다.
A2. 비대면 강의에서 가장 힘든 것은 학생들에게 제대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에 대한 확신이 없고 모니터를 통해서만 볼 수 있어서 서로 오해하거나 피드백이 부족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로의 생각을 느끼고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고, 몸짓이나 기타 비언어적 표현을 포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자기 발전에 더 책임감을 갖고 공부하는 모습을 봤다. 사실 반대 결과를 예상했지만 의외였다. 앞으로 비대면 시대에 학생들이 어떻게 성장할지 미리 엿볼 수 있어 희망을 갖게 됐다.
A3. 나는 매일 학부 스튜디오에서 살았다. 거기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래픽 디자인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친구들이랑 작업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성장했다. 그런 공간이 없었다면 그래픽 디자인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그런 교류마저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크다. 물론 다른 채널로 교류가 이루어지겠지만 이에 따른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대마다 만들어지는 사회적 반응과 스타일을 찾아가는 게 디자인 학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조예진
1인 디자인 스튜디오 키트Kit를 운영하며 동양미래대학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린이 및 청소년을 위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A1. 이론 강의, 소프트웨어(인디자인) 튜토리얼, 실기 과제물에 대한 1:1 피드백은 모두 녹화 수업으로 준비함으로써 한 학기 내내 반복 재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들로부터 매우 효과적이라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학생들의 질문과 요청 등의 피드백을 전달받고자 카카오톡 오픈 채팅 창을 마련했지만 실시간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할 때만큼이나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1학기에는 지난 3학기 내내 담당했던 학생들과 수업했기 때문에 이미 돈독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있었으므로 비대면 수업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2학기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해야 했고, 모두가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실시간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기는 특히 어려웠다. 또 첫 비대면 수업은 모두 줌을 통한 화상 수업으로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카메라가 준비되지 않은 학생이 많아서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컴퓨터와 핸드폰으로 동시 접속하는 등 학생 개개인마다 처한 학습 환경이 너무 달랐다.
A2. ‘유동적인 시간 활용’과 ‘알맞은 플랫폼의 활용’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 한 해였다. 매 학기 공통으로 짜인 시간표 안에서 할당된 시간에 맞게 교수와 학생이 모두 ‘출근(?)’해야 했던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교수자가 수업을 구성하거나 진행하는 방식을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의 시기로 봐도 좋을 것 같다.
A3. 나의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돌이켜보면 함께 공부했던 동료들, 그리고 동료들과 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날로 성장하는 온라인 학습 시장과 학교의 역할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학교라는 공간적 특성이 제공하는 무한한 역할 때문이 아닐까. 학습 내용 자체보다 좋은 학습 분위기가 수업 참여율과 학습 능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는 비대면 수업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대면 수업의 강점을 지켜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