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박영숙. 1980년대부터 페미니즘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도발적인 인물 초상 사진을 통해 가부장제 사회를 고발하는 한편, 사진을 단순한 기록 이상의 예술로 끌어들이는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2007년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 트렁크갤러리를 열며 카메라를 한동안 내려놨던 그가 오랜만에 신작으로 돌아왔다.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을 통해서다.
박영숙 한국의 1세대 페미니즘 사진작가. 1941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사학과와 동 산업대학원 사진 디자인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 숙명여대 최초 사 진 서클인 ‘숙미회’를 창단했고, 졸업 후에는 사진작가로 서 <또문> 등의 매거진에서 활동하는 한편 UN이 제정한 ‘세계 여성의 해’ 기념사진전 등에 참가했다. 1980년대 들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한 그는 1992년 민중미술 계열인 여성미술연구회에 가입해 페미니즘 운 동에 앞장섰으며, 1999년 여성미술대전 ‘팥쥐들의 행진’ 에서 선보인 작품 ‘미친년들’을 계기로 2006년까지 대표 작이 된 ‘미친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7년에는 국내 최초 사진 전문 갤러리, 트렁크갤러리를 열어 2018년까 지 운영했다.
짙은 초록이 우거진 제주도 곶자왈, 얽히고설킨 고목의 가지 위에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레이스 식탁보가 나부낀다. 이끼 가득한 돌 위에는 아티스트의 초상과 오래된 카메라, 분첩과 립스틱, 색색의 반짇고리가 가지런히 놓였다. 3월 26일부터 6월 6일까지 이어지는 박영숙 작가의 개인전 <그림자의 눈물>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박영숙 작가는 ‘한국 페미니즘 사진의 대모’로 불린다. 주로 여성성을 강하게 부각한 도발적인 인물 사진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성적 권력 구조에 문제를 제기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억압받는 일상 속 여성의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부각한 ‘미친년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온순한 여성성’이라는 한국식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서 일탈한 여성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미친년’에 주목한 작가는 줄곧 “성性은 성 그 자체여야 한다. 그런데 왜곡되어 있다. 여성의 성이 남성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것, 그 끔찍함과 심각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혀왔다.
페미니즘 사진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2007년 종로 삼청동에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트렁크갤러리를 열며 갤러리스트로 변신한다. 순수 예술사진을 대중에게 알려 다큐멘터리 일색인 한국 사진계에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2018년 12월 31일 갤러리 문을 닫기까지 그는 데비 한, 김미루, 백찬효 등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젊은 사진작가 70여 명을 소개했고, 국내 주요 미술관에 소속 작가의 작품이 소장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힘썼다.
2020년 3월, 박영숙 작가가 신작과 함께 돌아왔다. 2017년 봄부터 매달 보름씩 제주 곶자왈을 드나들며 완성한 사진 연작이다. 돌과 자갈, 수풀이 뒤엉켜 있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를 수 없는, 위험하고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져온 곶자왈을 마주한 작가는 본능적으로 중세 유럽에서 종교재판에 의해 화형당한 마녀들을 떠올렸다. 남성 중심의 사회가 만든 다양한 프레임에 의해 희생당한 그들의 혼이 배를 타고 자유롭게 표류하다 버려진 숲에 정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마녀가 살았거나 살고 있는 듯한 흔적은 또렷하다. 반짝이는 구슬, 바르다 만 립스틱, 음식이 담긴 그릇과 와인잔, 하늘하늘한 레이스 천 등 마녀를 상징하는 각종 살림살이가 검푸른 나무와 돌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림자의 눈물 3’
전시가 한창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보랏빛으로 부분 염색한 짧은 커트 머리와 긴 트렌치코트 차림으로 전시장에 등장한 그는 팔순이 가까운 나이가 무색할 만큼 넘치는 에너지로 작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오랜만에 새로운 시리즈를 공개했어요. 박영숙 작가 하면 ‘미친년 프로젝트’ 같은 강렬한 여성의 초상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번 작업에서는 검푸른 곶자왈을 배경으로 다양한 오브제를 포착하셨네요.
2015년 답사차 제주에 들렀다가 곶자왈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수풀이 뒤엉켜 있어 입구도 찾기 어려운 데다 겨우 들어서서 보니 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둡고 음침했는데, 마음이 묘하게 편안하더군요. 마치 태고의 공간에 들어선 것처럼 경이롭고 신비한 기분이 들었어요. 동시에 불현듯 떠오른 게 중세 이후 유럽에서 종교재판으로 희생당한 마녀들이었어요. ‘만약 마녀 중 일부가 화형당하기 전 배를 타고 하멜처럼 표류하다 제주 곶자왈을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했죠. 무척 흡족해하며 이곳에 정착해 어떤 프레임에도 갇히지않은 채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더군요. 마녀들이 있었던 곳이라고 상상하며 그들을 상징할 만한 아이템을 배치하고 촬영했습니다.
1988년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페미니즘 전시 <우리 봇물을 트자-여성 해방 시와 그림의 만남>에서도 마녀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선생님께 마녀는 어떤 의미인가요?
당시 전시를 준비하며 중세 이후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에 대해 처음 접했어요. 가톨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여성에게 마녀라는 프레임을 씌워 화형한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죠. 화형을 당했을 여자를 생각하니 내가 당한 것처럼 분통이 터지더군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억울하고, 무서웠을까요? 그 영혼을 불러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두 장면을 결합해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더블 익스포즈’ 기법으로 코스모스가 있는 풍경과 마녀로 분한 여성의 모습을 조합해 중세의 마녀를 20세기로 소환했지요. 이후 마녀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습니다. 2005년에는 ‘미친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내 안의 마녀’라는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여성들이 ‘마녀성’을 지닌다는 건 지혜롭고, 슬기롭고, 창의적이고, 직관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의 마인드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의 마녀성 덕분이지요.
숲속에 배치한 아이템들이 흥미로워요. 립스틱, 분첩, 반짇고리, 그릇 등 여성성이 도드라지는 것이 대다수인데요. 일반적으로 ‘마녀’ 하면 떠오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마녀의 본질 중 가장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가 섹슈얼리티입니다. 흔히 마녀의 이미지를 ‘섹시하다’고 표현하는데,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제된 경우가 많아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섹시하다’는 것은 지적이거나 숭고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음탕하고 문란한 이미지로 여겨지죠. 이런 왜곡된 프레임을 모두 해체하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욕망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어요. 하지만 오랜 세월 여성들은 섹슈얼리티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오히려 남성들의 대상화가 되어왔죠.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마음껏 활용하고, 가지고 놀고, 다양한 언어로 발화할 수 있길 바랍니다. 사진 속 오브제 역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고른 것들이에요. 마녀가 좋아했을 법한 것들을 나열했지요. 내가 아끼는 걸 마녀도 좋아할 것 같고, 마녀가 즐겼을 법한 것들에 나 역시 흥미를 느낄 거라고 여겼어요. 평소 작은 오브제를 워낙 좋아해 다양한 물건을 모으고 있는데, 그것들을 활용했습니다. 각 사진의 주인공을 설정한 뒤 그 성향에 어울리는 오브제를 분류해 배치하고 촬영했어요.
지금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는데, 스스로 가장 만족스러운 작업을 고른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작업이 의미가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오래 진행했고 책으로 만들 정도로 수많은 사진을 남긴 ‘미친년 프로젝트’가 떠오르네요. 프로젝트가 9가지나 되는데 굉장히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들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작가로서 특별한 경험이었죠. 페미니스트의 대표성을 띠는 여성들은 당대에 예외 없이 ‘미친년’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미친년은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의 눈물 16’
페미니즘 사진뿐 아니라 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다큐멘터리를 넘어선 예술로서의 사진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2007년 트렁크갤러리를 오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죠?
맞아요. 한국에 나와 동년배인 사진작가들이 많은데, 대부분 ‘사진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는 원로들입니다. 한국 현대사진의 1세대로서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니 대학교수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학교에서 30~40년 전과 똑같이 사진은 기록이라고 가르쳐요. 하지만 사진은 결코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사진이 학문으로 체계화되면서 언어학까지 재론되는 시대입니다. 단순히 기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각언어가 생겼고, 조형심리학이 형성됐죠. 이런 개념들을 무시하고 과거에 멈춰있는 사진계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어요. 여성주의 문화 운동을 20년정도 하다 보니 어느 날 호주제가 폐지되더군요. 운동이라는 건 미미하고, 진척이 없는 것 같고, 누구 하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됐지요. 이런 점에 힘입어 사진 전문 갤러리를 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사진이 갖춰야 할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성적인 건 논리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가슴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감성이 중요해요. 심장이 뛰게 만드는 사진, 사람의 심리를 건드릴 수 있는 이미지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현대사진을 대표하는 1세대 작가이자 쉽지 않은 길을 개척해낸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메시지 부탁드릴게요.
머리로만 작업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인화된 프린트를 내어놓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획도, 아이디어도 다 ‘헛것’이에요. 무엇이든 우선 행동해서 쌓으세요. 결과물을 모으다 보면 그 안에서 스스로 논리와 체계가 이뤄지고, 더 나아가 언어가 되며, 메시지도 만들어질 겁니다.
선생님께 럭셔리는 무엇인가요?
동시대보다 조금 앞서 있다는 것. 시대를 어떻게 읽어내고 다루어내는지,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 어우러져서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나 역시 제법 럭셔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