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한 국물에 질깃한 쇠심줄을 가득 넣은 스지오뎅 탕. 여기에 혀를 델 듯한 뜨거운 청주 한 잔이 추운 겨울 몸을 데워준다.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진 박찬일 씨는 ‘로칸다 몽로’와 ‘광화문 국밥’의 주방장이자 해박한 지식과 단정한 문장으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식 칼럼니스트다. 그 치열한 기록이 <노포의 장사법> <백년식당>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등의 책으로 나왔다. 최근엔 계절 식재료 이야기를 다룬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를 펴냈다.
왕년에 서울 시내에서 술 좀 마신 사람들은 기억하는 게 있다. 한겨울 광화문과 무교동, 피맛골에서 장사 끝내주게 하던 정종 대폿집이다. 청주라고 해야 하나, 당시엔 그냥 ‘정종正宗’이라고 불렀다. 정종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청주 브랜드고, 다른 하나는 뜻밖에도 ‘정통’이라는 뜻의 중국어다. 그렇다는 얘기다. 연탄난로 위에 정종을 가득 채운 주전자가 올라 있었다. 본디 데우는 술은 중탕해야 하는 법이지만 선술집에서 뭘 따지나. 어떤 때는 너무 뜨거워서 혀를 데기도 했다. 그 뜨거운 청주에 참새구이나 오뎅을 먹었다. 오뎅이라고 불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묵꼬치라는 말은 사실 정확한 교정은 아니다. 어묵은 대략 맞지만 죄다 꼬치에 꿰어 있는 게 아니니까. 포장마차든 선술집이든 날이 추워지면 오뎅이라는 이름의 어묵탕을 팔았다. 서비스로 주기도 했다. 헛헛하고 추운 겨울, 이 어묵탕 국물 한 그릇에 몸을 데우곤 했다. 그때 가장들은, 남정네들은 그랬다.
어묵탕 말고 스지탕이라는 게 있었다. 국물 자작하게 하면 스지찜, 넉넉하게 잡으면 스지탕. 우리말로 하면 쇠심줄탕이다. 스지란 일본어인데 쇠심줄과 약간의 살코기 부위가 엉켜 있는 걸 말한다. 질기지만 오래 삶으면 쫄깃하고 맛있다. 쇠심줄탕은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겨울 안주로 많이 팔렸는데, 그 문화가 한국화된 걸로 보인다. 여기에 어묵을 같이 넣고 끓이기도 했다. 부산 남포동에 갔다. 수복센타다. 센터, 아니고 센타다. 바로 쇠심줄어묵탕을 먹으러. 물론 이 집에서 공식 이름은 스지오뎅탕이다. 아무려나. 해방이 되고, 6·25전쟁이 터졌다. 부산은 피란 수도였다. 궁핍했지만 그래도 술은 마셨다. 그때 남포동의 선술집 중 하나가 바로 수복센타다. 대략 70년이 된 집이다. 주인이 한두 번 바뀌었고, 현재 주인 집안이 오래 경영했다. 붙임성 좋은 중년 여인이 현재 운영한다. “부모님이 오래 하셨고, 물려받아 하는 깁니더. 날도 칩은데 스지오뎅탕 하이소.”
안 그래도 그걸 먹으러 왔다. 이 집의 탁자는 오리지널 기름통인 드럼통으로, 묵직하고 두툼하다. 그 위에 둥근 나무를 올려 술상을 차린다. 유부주머니에 어묵 조각, ‘한펜’이라고 부르는 일본 어묵의 일종인 가마보코도 곁들였다. 삶은 달걀과 쇠심줄이 수북하다. 힘줄은 씹기 알맞게 오랫동안 삶았다. 부산 주당들이 이 집에서 이 안주를 씹었다. 나도 그들처럼 힘줄을 씹는다. 질기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다. 부산 남포동의 밤은 길다. 주당들이 속속 들이닥치고 이 골목은 밤과 싸운다. 겨울 파도처럼 높낮이가 심한 사투리가 가게를 흔든다. 오늘 밤은 취하기 좋은 날이다. 수복센타를 비롯해 남포동은 노포 천국이다. 백광이라는 가게도 잊지 말자. 수복센타처럼 근대식 주점, 피란 수도의 주점, 부산의 세월을 지킨 주점. 수복센타가 어묵과 힘줄을 섞은 탕을 낸다면, 이 집은 따로따로 판다. 힘줄탕과 어묵탕(스지도 아니고 ‘수지탕’, 오뎅탕이라 쓰여 있다)이 각기 안주다. 자작한 국물에 오래 삶아 야들야들 쫀득 질깃한 힘줄이 가득 들어 있다. 어느 집이나 한우 힘줄을 쓴다. 한우 힘줄은 비싸다. 양지머리와 값이 거의 같다. 허드레 부위인데, 양이 적고 먹자는 사람은 많아 그 인기 때문에 비싼 거다. 어린 소를 잡는 요즘 육식 문화 때문에 힘줄의 양이 절대적으로 적어졌으리라. 혀를 델 듯한 뜨거운 청주 한 잔에 그리고 힘줄어묵탕 한 입을 먹는 건 이 겨울에 슬쩍 센티멘털한 일이 될 것 같다. 사 먹을 데가 없으면 직접 끓여야지.
쇠심줄어묵탕
재료(4인분) 쇠심줄(한우나 육우) 500g, 종합 어묵 1봉지(500g 내외), 다시마 2~3장, 시판 국물팩 6인분, 국간장 1큰술, 청양고추 ½개, 다진 마늘 1큰술, 대파 1대, 겨자·식초·양조간장·후춧가루·두부 약간씩
* 어묵을 사면 들어 있는 수프를 쓸 경우 국물팩과 국간장을 빼면 된다.
만들기
1 쇠심줄은 찬물에 1시간 담갔다가 끓는 물에 5분 정도 삶아 건진 뒤 깨끗하게 씻는다. 다시 물을 넉넉히 붓고 중약불에서 3시간 삶거나 압력솥에 40분간 삶는다.
2 삶은 쇠심줄은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삶은 국물을 버리지 말고 육수로 쓴다.
3 큰 냄비에 육수를 부어 끓이고 다시마와 국간장, 국물팩으로 맛을 낸다(어묵에 첨부된 수프를 넣어도 좋다). 힘줄과 어묵, 두부를 넣어 10분 정도 끓인다.
4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어 더 끓이고, 어슷하게 썬 대파와 후춧가루를 넣고 조금 더 끓인다.
5 겨자를 곁들인 초간장을 만들어 찍어 먹는다.
6 청주를 마실 때는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게 간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