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커피가 없다면 좋은 여행도 없고, 어쩌면 좋은 도시도 없을지 모른다. 특히 커피 애호가에게는 타지의 문화를 즐기며 중간중간 자리 잡고 맛보는 커피는 이내 기분 좋은 쉼표이자 느낌표가 된다. 부산이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2026년 1분기에만 1백 2만 3천 명이 다녀갔다. 2014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빠른 증가세다. 물론 내국인에게도 인기가 많다.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모모스커피는 이미 부산의 아이콘이자 스타로, 도시를 대표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유는 명쾌하다. 가구부터 정원, 그리고 커피까지 특별한 경쟁력을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편애하는 부분은 모모스의 성장 서사와 진심이다. 부산 여행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모모스 이야기 속으로.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 직원들과 함께. 커피 내리고 빵 굽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이날 역시 평소처럼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었다.
모모스커피 공동대표 이현기&전주연
우리의 꿈은 '긴 행복'을 이루는 것
모모스 활동을 보며 내가 내내 궁금했던 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와 도전을 써 내려가는 ‘성실한 열정’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주연처럼 일하는 조직의 결속력, 창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늘 참신한 브랜드의 기운. 월세 50만 원짜리 네 평 창고에서 시작해 한 해 매출 3백23억 원을 달성한 모모스커피의 높은 기준과 성장 비결에 관하여.

모모스커피 전성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는 이현기 창립자와 전주연 공동대표.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다시 하자.”
2020년, 부산 영도점 오픈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봉래동 물양장의 오래된 선박 부품 창고를 개조해 만든 로스터리&커피 바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은 생두 창고와 로스팅실, 포장실과 랩실이 오픈 키친처럼 투명하게 보이는 곡면 유리창이었다. 커피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과 물류 흐름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정직한 무대가 되길 바랐다. 설레는 마음으로 파도처럼 구불구불한 유리를 설치했는데, 하…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 철분 함량이 많은지 투명도가 높지 않았고 완성도도 아쉬웠다. 눈 딱 감고 그냥 쓸 수도 있고 1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다시 제작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두 대표의 결정은 “다시”였다. 당시 이현기 대표가 동료들을 설득하며 한 말이 있다. “이대로 사용하면 부끄러울 것 같다.”

모모스커피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온천장 본점 2층 공간.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모모스커피는 영도로, 해운대로 쭉쭉 뻗어나간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는 내가 생각하는 모모스커피의 기준이고 성장 비결이다. 모모스커피의 캐치프레이즈는 ‘특별함을 모두에게’. 마디마디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선택을 한다. 온천장 본점과 영도점, 해운대 마린시티점과 도모헌점 네 개 지점을 운영하는데 모든 공간에 루이스 폴센·아르떼미데·칼한센앤선·카시나에서 공수한 최고의 조명과 가구가 있고, 온천장 본점과 해운대 마린시티점은 조경 디자인 스튜디오 ‘뜰과 숲’ 권춘희 대표와 함께 만든 정원으로 특히 아름답다. 지난해부터는 문화 예술계 스타플레이어를 모셔 강연을 듣는 ‘안목학교’를 운영하는데, 회차별로 다양한 케이터링 브랜드와 협업하고 메뉴 설명 안내장까지 별도로 만든다. 지난 회 수업을 요약한 팸플릿도 제작하는데 커버에는 금박까지!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멋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더 멋있는 지점은 이런 노력이 비하인드 신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백스테이지인 셈인데,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도 전면의 공간만큼이나 아름답다.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 전경. 네 평 창고에서 시작한 회사는 옆 필지가 나올 때마다 차근차근 매입, 약 4백 평에 이르는 ‘모두의 정원’이 되었다. 조경은 뜰과숲 권춘희 대표와 함께 했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체스카Cesca 체어가 있고, 빵빵한 볼륨감이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소리아나Soriana 소파가 있다. 벽에는 모모스 온천장 본점을 찍은 김희원 작가의 사진이 걸려 있고, 직원 식당도 구비돼 있다. ‘특별함을 모두에게’라는 구호에서 ‘모두’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아우른다. 함께 만든 특별함은 각별하다. 어떤 시간에 커피는 그저 그런 시간 때우기 수단일 수 있지만, 모모스커피가 제공하는 시간은 아름다운 거실에서 누리는 소중한 평화에 가깝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이현기·전주연 대표의 이야기를 해볼까. 창업자인 이현기 대표 이야기부터. 은근히 재미있고, 은근히 스토리텔러인 그에게 창업은 오랜 꿈이었다. “스물한 살 때였나? 서울에 올라갈 일이 있었어요. 그때는 저도 여자 친구가 있지 않았겠습니까?(웃음) 여자 친구가 서울에 놀러 가자고 해서 밤 열차를 타고 갔는데, 그때 간 곳이 동대문시장이었어요. 새벽에 도착했는데 온 세상이 환했어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양손에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있는 사람들이 한가득이고, 사람들이 계속 뛰어다니는 거예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나도 ‘뜨겁게’ 내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사업가가 될 거야’ 하고 마음먹은 겁니다. 첫 직장이 철도 궤도를 제작하는 건설 회사였는데, 그때 쓴 이메일 아이디가 ‘owner2010’이었어요. 2010년까지 오너가 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경영과 관련한 이런저런 공부를 했습니다. 일도 재미있게 했습니다. 아침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만 하던 때도 있었어요. 소파에서 자고 양말만 갈아 신고 다시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커피로 아이템을 잡은 건 지속되는 산업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커피를 마시겠구나 싶었지요.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 전경. 네 평 창고에서 시작한 회사는 옆 필지가 나올 때마다 차근차근 매입, 약 4백 평에 이르는 ‘모두의 정원’이 되었다. 조경은 뜰과숲 권춘희 대표와 함께 했다.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대한 마인드는 있었고, 열심히 기술을 익혀 맛있게 만들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시작은 커피 배달 사업이었습니다. 누군가 예약을 하면 뜨거운 커피를 들고 가 바로 앞에서 휘핑크림을 얹어주면 재미도 있고, 맛도 있을 것 같았지요. 50cc 오토바이도 사고요. 그런데 실패였습니다. 종일 동동거렸는데 10만 원도 못 버는 때가 허다했지요. 돈은 바닥나고 카드 세 개로 돌려막기를 하는 것도 끝이 보였습니다. 그해 12월에 친구들이랑 대패삼겹살을 먹는데 한 친구가 ‘네가 자리를 잘못 구해서 망한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어찌나 서운하던지 ‘나 집에 갈란다’ 하고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눈물이 쏟아지는데 멈추지 않더라고요. 울면서 잠들었지요. 더 이상 직원들 월급도 줄 수 없는 상황이라 폐업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때, 직원들이 개발한 와플이 슬슬 입소문이 나는 겁니다. 다시 힘을 냈고, 창고 본점 2층을 얻어 증축을 했습니다. 우리의 우주를 만들어보고 싶었지요.”
결정적 ‘비약’의 순간은 2009년 미국에서 참관한 스페셜티커피협회(SCAA) 박람회. 커피는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 이렇게 향긋하고 새콤달콤한 원두가 많구나 하는 깨달음을 번개처럼 ‘맞은’ 그는 이후 귀국해 모모스의 방향을 스페셜티 전문 브랜드로 완전히 틀기 시작했다. 커피 원두를 감별하는 커피 감정사 및 큐그레이더Q-Grader(생두 감별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또 한 번의 비약은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전주연 대표(당시에는 사원)가 2019년 4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시작됐다. 월드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모모스는 일약 ‘스페셜티 커피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영도 로스터리&커피 바. 봉래동 물양장의 폐창고를 생두 창고와 로스팅실까지 구비한 거대한 ‘커피 하우스’로 바꾸었다.
시계를 거슬러 2006년. 당시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던 학생 전주연은 이현기 대표를 만나 면접을 본다. 졸업 후 먹고살 궁리를 하며 간호 공부까지 병행하던 때였다. 사촌 동생을 통해 전주연 학생을 소개받은 이현기 대표 왈 “(사촌) 동생이 인물도 좋고 김희선을 닮았다고 해서… 그라믄 보지 뭐 했는데, 인상도 좋고 성격도 좋고 같이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다음은 전주연 대표의 말. “일단 사장님의 꿈이 되게 웅장했어요. 그때 저는 물욕이 있었거든요. 돈도 많이 벌고 싶었고요. 그런데 그 꿈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생생한 거예요.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꿈이 생기니 설레기 시작하더라고요, 하하. 부모님은 느닷없이 무슨 다방이고? 하면서 반대를 했고 전공 교수님도 황당해하셨지만, 일단 파트 타이머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평일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엔 매장을 맡았지요. 제가 사주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스무 살에 나의 은인을 만난다고 했는데, 사장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뿌듯한 미소)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을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인정 욕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부모님도 반대하고 교수님도 반대하고 친구들도 온전한 직업으로 봐주지 않는 이 일의 가치를, 그 일을 선택한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대회 영상이 큰 자극이 됐습니다. 바리스타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고, 그 주변으로 몇천 명이 빙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금 응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계 무대에 꼭 서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는 공간을 고치고, 생두를 수매하고, 빵을 만들고, 인테리어를 하는 모든 활동의 암묵적 기준이자 원칙이다.

모두와 특별한 시간을 위해 모모스커피에서는 러닝, 요가, 안목학교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그렇게 전주연 대표는 챔피언이 됐고, 모모스의 ‘얼굴’이 되었다. 앞단에 인테리어며 시각적인 부분을 이야기했지만 이 둘이 끝까지 잘 해내고 싶은 것은 다름 아닌 커피. 그 핵심을 지키고 발전시키고 싶어 에콰도르로 인도로 파나마로 산지 출장을 떠나고, 고품질의 원두를 집착하듯이 찾아 나선다. 에티오피아 원두는 그 자체로 풍미가 뛰어나고 값도 비싼 데다 최근 가격이 급등해 블렌딩 커피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데, 모모스에서는 예외. 더 좋은 맛을 위해 되레 더 공격적으로 실험한다. 블렌딩에 사용할 수 있도록 파운드당 6달러가 넘는 최고급 에티오피아 생두도 대량 구매해놓은 상태다. “더 특별해지기 위해” 브루잉과 관련한 모든 수치를 DB로 축적하고, 각 부서별로 AI 에이전트와 공조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스페셜티 믹스 커피도 출시했다. 이런 노력과 열정이 바탕이 돼 최근에는 글로벌 커피 랭킹 플랫폼 ‘The World’s 100 Best Coffee Shops’에서 세계 22위에 이름을 올렸다. “우리를 있게 한 네 가지가 있습니다. 커피와 빵, 환대와 공간. 다 소중하지만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은 역시 커피입니다!”

마린시티점 내부 전경. 모두의 풍경을 위해 너른 초록 정원을 조성했다. 커피를 마시는 환경과 정서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이 모모스커피의 힘!

옛 부산시장 관사였던 도모헌에서도 모모스커피를 만날 수 있다.
딱 10년 전, 이현기 대표는 유튜브 채널 ‘메이드 인 부산Made in Busan’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커피를 위해서 커피를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을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커피를 합니다. 저와 우리 동료 모두가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행복을 위한 매개체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생각을 빌리자면 행복은 자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키우는 것, 그래서 누군가의 시간과 하루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서로 행복한 도시와 사회를 만드는 것. 내년이면 창립 20주년이 되는 모모스는 두 번째 공장 설립과 함께 해외 진출까지 계획하고 있다. 달려라 모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