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오헤어에 가면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볼 수 있다. “Hair is everything.” 집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비결도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Home is everything’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아름답게 집을 가꾸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릇을 중심으로 한 테이블웨어 브랜드 폴라앳홈의 이승민 대표 역시 그런 사람. 많은 시간과 돈, 노력과 생각을 집에 투자하고 덕분에 건강하고 지혜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다.

한지 창으로 마감한 다이닝 테이블에서 포즈를 취한 이승민 대표. 퇴사 후 예쁜 그릇에 잘 차려 먹으며 왠지 기쁨을 느낀 하루가 오늘의 사업과 라이프스타일로 이어졌다.
“미국 LA에 있는 FIDM(Fashion Institute of Design and Merchandising)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 무역 회사에 들어갔어요. 직장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어요. 너무 열심히 한 거죠. 스스로 책임감 있는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매사에 필요 이상으로 열심인 사람이더라고요.(웃음) 회사 동료가 성실하지 않은 꼴도 못 봤어요. ‘프리 라이더도 아니고 저게 뭐지?’ 싶은 거예요. 그러니 저만 괴롭지요. 자기 일을 남한테 떠넘기는 사람한테도 화가 나고, 때로는 굽실거리기도 해야 하는데 못 했어요. 일을 맡게 되면 ‘이걸 왜 하는 거지?’ 자꾸 전체를 보려고 하고요.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걸 조금씩 알게 됐고, 이럴 거면 내 일을 찾는 게 낫겠구나 싶어 ‘그냥’ 나왔어요.”
빈손은 아니었다. 남편을 그 회사에서 만났으니까. 인터뷰 현장에는 남편도 있었는데 반려견을 챙기느라 쭉 함께하지 못했다. 잠시 문밖으로 얼굴을 내민 그에게 그 시절 아내가 어때 보였는지 물었다. “(잠시 얼굴을 붉히고) 귀여웠어요. 저랑은 여덟 살 차이가 나지요. 회사에서 저는 차갑고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다들 어려워하는데, 와서 장난을 걸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왜 저럴까 싶고, 대범하네, ‘어디서 감히?’ 하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한 엄마가 그려준 반려견 ‘흰둥이’ 그림과 그 옆으로 보이는 주방. 바깥으로 난 창문을 들창으로 디자인한 것이 특히 돋보였다.
그 말을 듣던 이승민 대표가 말을 이었다. “들어간 회사가 중견기업이었는데, 남성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남초’ 회사였어요. 우리 팀에도 남자가 많았고요. 남편이 직속 상사이다 보니 부딪칠 때가 많았어요. 파티션에 눈이 애매하게 걸치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외향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경직되면 먼저 푸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다 정이 들었는데, 남편도 이럴 거면 네 사업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회사를 그만두자 자립을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퇴사를 하고 결혼을 하기 전에 혼자 사는 시간이 좀 있었어요. 가만있는 성격은 아니니까 ‘뭘 하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 어떤 사이트에서 그릇을 하나 샀어요. 밥해 먹는 시간이 많아지니 주문까지 하게 됐는데, 신문지에 싸서 예쁘게 배송이 되더라고요. 흡족했고 그 그릇에 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먹는 건 신경도 안 쓰고 살다가 변화가 시작된 거예요. 이후 자연스럽게 블로그를 하기 시작했어요. 일기 같은 거였지요. 그런데 댓글이 달리고 그릇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묻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릇을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작정 남대문시장으로 갔어요. 그곳에 일본에서 들여온 예쁜 그릇이 많았거든요. 마음에 드는 그릇을 조금씩 사입하고 퇴직금으로 컴퓨터랑 카메라도 샀어요. 차도 없을 때라 아침이면 지하철을 타고 남대문시장으로 가 그릇을 사고, 오후에는 촬영하고, 밤에는 포장하고 블로그를 하는 생활이 시작됐어요.

커피 머신을 둔 공간 한쪽에 선물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그릇장.
그릇을 돋보이게 하려니 음식도 만들기 시작했고요. 정성껏 만들어 정성껏 찍고 맛있게 먹었지요. 촬영만 하고 버리듯 하는 음식을 먹으면 허무하잖아요. 잘 살고 있다는 느낌도 안 들고. 그렇게 만든 폴라앳홈은 매년 꾸준히 성장했고, 그사이 저는 결혼을 했네요. 신혼집은 남양주였는데 성수로 갔다가 자양동에 있는 이 아파트까지 오게 됐죠. 일을 하다 보니 집이 좋았고, 집에 더 있고 싶었어요. 브랜드명에 앳홈athome을 붙인 이유입니다. 사업을 하느라 집을 집답게 못 썼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요.”
성장 드라마는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집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데, 집의 재미와 가치, 그리고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그 시작. 집에서 ‘살아가는(living)’ 시간이 많아지면 풍요로운 삶을 향한 좋은 생각이 계속 고이고, 조명과 그림에도 관심을 갖게 되며, 더 좋은 쪽으로 인생이 조금씩 방향을 틀게 된다. 김 부장이나 박 이사가 아닌 나 자신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베란다에도 진열장을 짜 넣어 좋아하는 그릇을 원 없이 진열할 수 있도록 했다. 베란다까지 즐거운 살림의 공간이 된 듯한 풍경.
집에서 시작된 인생 재설계
사업을 제 궤도에 올리는 것과 동시에 이승민 대표가 함께 신경 쓴 것이 ‘집’이었다. 성수동에 살 때부터 호흡을 맞추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라이크라이크홈 likelikehome을 이끄는 손명희 대표에게 다시 러브 콜을 보냈고, ‘드림 홈dream home’을 위한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로 집에서 제품을 촬영하다 보니 일과 생활을 분리하고 모든 공간을 원하는 대로 꾸미지 못하는 갈증이 있었어요. 더 넓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기고, 집다운 분위기도 만들고 싶었어요. 손명희 대표가 가장 잘하는 부분이 삶이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거예요. 단지 예쁘기만 한 집이 아니라 여행 가방을 넣고, 다림질을 하고,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작업실에서 사진을 찍는 모든 순간의 감각과 동선까지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지요. 세월의 흔적을 열심히 지켜내는 것도 저랑 맞는 부분이고요.”

이승민 대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 겸 다이닝룸. 벽에는 안개처럼 보드라운 분위기를 풍기는 손한별 작가의 작품을 걸었다.
그렇게 고치고 바꾼 집은 아늑하고 포근한 모습이다. 우선 공간 구성이 눈에 띈다. 거실은 제르바소니의 화이트 소파와 유럽 빈티지 원목 가구로 중심을 잡았는데, 거실과 면한 베란다에 파란색 타일을 깔고 샤를로트 페리앙이 1968년 프랑스 동부 사부아의 레 자크 스키 리조트의 건축과 인테리어를 총괄하며 디자인한 레 자크 테이블을 두었다. 테이블 너머 창밖으로는 한강이 보이는 풍경. 촬영을 한 날은 봄의 초입이고 날씨도 좋아 한강에 요트 몇 척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거실에서 직진하면 좌측의 주방을 지나 이승민 대표가 촬영도 하고 책도 읽는 서재와 드레스룸이 이어진다.

직장 상사로 만나 결혼한 남편 김성수 씨와 반려견 흰둥이도 함께. 벽면에 걸린 그림은 ‘흰둥이’를 쏙 빼닮아 기쁜 마음으로 소장한 고경애 작가의 유화 작품이다.
베란다에 한지 문을 달아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고 커다란 빈티지 수납장에는 즐겨 보는 잡지를 가지런히 꽂아두었다. 드레스룸은 생활감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공간이지만, 흰색 도장을 한 나무문으로 확실하게 공간을 구획하고 옷장까지 합판으로 제작해 짜 넣으니 이질감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본인의 방 창가에 폭이 좁은, 가로로 긴 쪽테이블을 만들어 넣고 밖으로 면한 주방 창문을 들창 형태로 디자인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그림. 꽃가지 아래 화이트 포메라니안이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오른쪽으로 시 같은 글귀까지 올라가 있어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별처럼 쏙 박히던 작품이다. “엄마가 저희 반려견 ‘흰둥이’를 그려주신 거예요. 동양화를 전공하셨거든요.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엄마가 서예를 하던 모습이 떠올라요. 제 방 베란다도 붓글씨를 쓰는 장소여서 그게 늘 불만이었어요.(웃음)

인테리어를 하기 전, 오래된 구옥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린 이승민 대표의 방. 동그란 무늬가 들어간 접이식 창문, 폭이 좁은 긴 테이블이 낭만적이다. 인테리어는 라이크라이크홈의 손명희 대표와 함께 했다.
내 방까지 빼앗아 붓글씨를 쓰는구나 싶어서요.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골동품 수집을 하셨어요. 가끔 생각해봐요. 아름다운 집을 좋아하고 그림과 가구를 좋아하는 내 성향은 어디서 온 걸까? 아빠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엄마와 할아버지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저의 취향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정제도 안 되고 울퉁불퉁했지요. 그저 예뻐서 무언가를 사는 시절도 있었지만 시행착오를 겪고, 잡지를 보고, 전시장을 다니면서 조금씩 개안이 된 듯해요. 저는 주얼리나 가방에는 관심이 없어요. 대신 아름다운 가구를 삽니다.

제르바소니의 소파, 샤를로트 페리랑의 작은 테이블과 사이드보드, 플로스의 조명이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에 풍성한 기품을 더한다.
미적 감각, 조형적 아름다움, 기술과 시대에 대한 심미안과 비전이 다 들어간 물건을 매일매일 쓰면서 눈과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샤를로트 페리앙도 그래서 좋아하게 됐는데, 가구가 아름답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철학이었지요. 생활 예술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폴라앳홈에서 선보이는 작품을 그들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저처럼 영차영차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싶은 창작자는 많아지는데, 손 기술이 있는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저라도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입니다.”

욕실은 한껏 과감하게! 왠지 지중해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컬러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비전에 훅 빠져들어 반하는 순간이 있다. 감화와 공감, 이해와 자극이 뒤섞여 대화가 더 큰 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순간. 그녀의 이 말도 지금껏 여운처럼 남아 있다. “코로나19 때였어요. 구조 조정 바람이 불면서 남편도 일자리를 잃은 때가 있었지요(지금은 다시 취업을 했답니다). 화가 치밀어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리고 카페를 차렸지요. 결과만 보면 실패지만 ‘인생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살다 보니 돈 말고도 중요한 게 많더라고요. 그때부터 ‘더 많은 인생 경험을 하자’는 쪽으로 삶을 리셋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긴 여행’이에요.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다녀왔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핀란드 라플란드도 갔다 왔어요. 최근에는 12일간 호주 태즈메이니아를 여행했지요.
‘지금은 때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대신 ‘이런 걸 볼 때가 됐어’ 하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이다 보니 남편은 어쩔 수 없이 회사 눈치를 보는데, 중요한 일이라고, 값진 경험이 될 테니 회사를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한다고 세뇌를 시키지요. (웃음)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버킷 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 거창하게 실행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하고 싶을 뿐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금 생각했다. ‘집에서 잘 살면 인생도 더 잘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