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스타일리스트로, 전시 기획자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서영희에게 기억은 재료이고, 해석은 도구다. 스스로 설계한 적 없는 30년의 확장, 그 안에 담긴 기억과 용기, 호기심에 대하여. 그리고 그걸 모두 관통하는 ‘막’다른 정신에 대하여.

서영희 디렉터는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1백 세 기념 헌정 전시 <노라노: 퍼스트&포에버>의 감독을 맡았다. 사진은 전시 장소인 경운박물관 한쪽에서 서영희 디렉터의 즉흥적 감에 의해 연출된 것. 서영희 디렉터는 이 전시에서 노라노의 철학, 옷, 방대한 자료 등을 어떻게 한정된 공간에 담을지 고심했다.
나는 기억이다. 나는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다. 내가 보낸 모든 계절이며, 내가 본 모든 풍경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이며, 내가 부른 모든 노래다. 나는 기억이 만든 사람이다. “국립무용단 공연<미인>의 의상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고서는요, 어릴 때 만들고 놀던 부채가 생각났어요. 시험지를 지그재그로 접었다가 엄마한테 혼난 그 부채. 천을 부채처럼 지그재그로 접어서 목에 걸면 무용수의 옷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뭔가 고갱이가 잡히면 내 일이 시작돼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서영희에게 기억은 ‘나는 누구인가’를 구성하는 재료이자, ‘내 일은 무엇인가’로 이끄는 테마다. 하긴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나. 기억 없이는 자기 서사가 없고, 자기 서사 없이는 나라는 존재도 없으니까. 우리를 ‘서영희 화보를 보고 자란 세대’로 만든 그 유명한 <보그 코리아> 화보들, 특히 한복과 현대 의복을, 글로벌 명품 브랜드 제품을 조합한 화보도 그의 기억과 맞닿는다. “양산 화보는 여름방학을 앞두고 엄마가 모시 한복에 양산 들고 학교에 온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프랑스 우양산 장인 미셸 외르토Michel Heurtault의 컬렉션과 우리 삼베·모시옷을 결합했다. “우리 시대에만 해도 한복은 그냥 엄마가 입는 옷이었어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학교에 방문하고, 결혼식 갈 때 입는 일상복. 내 유전자 안에 그 한복이 있는 거예요.”

의상, 오브제 디자인을 담당한 국립무용단의 <미인>. 그는 우리 춤의 에너지를 정교함과 강렬함이 공존하는 하이엔드 미장센으로 구현했다. 이 의상의 아이디어는 어릴 적 지그재그로 접어 만들던 종이 부채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는 기억을 꺼내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늘 ‘서영희식 번역’을 더한다. 오골계 목에 주얼리를 걸고, 모델의 염색 머리에 족두리를 씌우고, 황학동 시장의 검은콩 더미 위에 백을 올리는 등의 파격이 그러한 예다. 일가친척처럼 비슷한 톤과 무드의 화보들 사이에서 ‘서영희표 화보’의 각별함을 만든 것은 바로 이런 ‘번역’ 덕분이었다. 작년 프리즈 서울에서 SK인텔릭스의 웰니스 로봇 ‘나무엑스’ 전시를 총괄한 작업에서도 그만의 기억과 해석이 맞닿아 있다. “열두 살 차이 나는 큰언니 시집갈 때 엄마가 몇 달을 마루에서 이불을 만드는 거예요. 목화솜 이불. 그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솜을 좀 꺼내서 인형 이불도, 요도 만들었어요. 천이며 솜이며 만지던 느낌…. SK에서 나한테 웬 웰니스 로봇을 전시하는 공간 기획을 해달라는데, 처음엔 의아했죠. 난 공간 기획 전문가도 아닌데? 근데 얘가 공기를 정화하고, 스트레스 지수·맥박·체온 같은 바이털사인을 체크해준대요. 귀엽더라고요. 눈도 깜빡이고, 대답도 열심히 해주고. 이런 애가 집에 돌아다니면 되게 포근하겠다, 그러면서 그 목화솜 이불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순간 그 로봇의 이야기가 내 손에 쥐어진 거죠.”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과 목화솜 이불, 그리고 웰니스 로보틱스가 공존하는 이 공간에 “기술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진다”는 관람객 평이 쏟아졌다(프리즈 서울 인기 부스 중 하나였다). 이처럼 그에게 기억은 재료이며, 해석은 도구다. 기억을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 그래서 서영희의 손을 거친 결과물은 늘 남다르다.
스스로 설계한 적 없는 확장
그와 일면식도 없는 이라면, 이 이야기를 바늘로 듬성듬성 호는 서사라 생각할 것이다. 매거진의 패션 스타일링, 공연 의상 디자인, 전시 기획…. 그의 정체를 파악하려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이력 정리가 필요하다. 의상디자인과를 나와 대기업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다 육아로 경력이 끊겼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갈 무렵 잡지 화보를 보고 ‘이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 싶어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그게 1991년, 잡지 〈멋〉의 스타일리스트 일이었다. 2001년부터 〈보그 코리아〉 전속 스타일리스트로 일했다. 패션, 아트, 전통문화의 영역을 넘나드는 비주얼 작업을 구축했다. 전시 기획으로 발을 들인 건 2005년 진태옥 디자이너 아트 북 작업이 계기였다. 그것이 2015년 파리 장식미술관 〈코리아 나우〉로, 루이 비통 함 트렁크 프로젝트로, 국립오페라단 〈동백 아가씨〉 패션 디렉팅, 국립무용단 <미인>의 의상·오브제 디자인 등으로 이어졌다. 이후 반클리프 아펠, 스와로브스키, SK 등 기업들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아, 중요한 것 하나. 2001년 <행복이 가득한 집>과 故 이어령 선생이 기획하고, 오뚜기함태호재단이 제작 지원한 책 의 비주얼 디렉팅 작업을 했다.

2015년 파리장식미술관 한국특별전 <코리아 나우!-2015 한국 복식전>에서 예술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는 이 방대한 전시에 우리 옷의 미감을 계승한 현대 패션 디자이너들을 포함하고, 우리 삶의 문화가 깃든 공예를 곁들이는 방법으로 ‘확장’을 꾀했다.
간추린 약력만으로도 한 사람의 30년으로는 심히 확장판, 종합판이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확장을 “스스로 설계한 적 없다”고 말한다. “패션에 대한 책임감, 전통에 대한 책임감 그런 건 없었어요. 일단 그달에 벌어야 할 돈이 있었거든요. 두 아이 유학비요. 좋고 싫고를 떠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다 보니 뭐가 쌓이더라고요. 잡지 편집장들과 일한 게 잔뼈와 근육을 만들어줬고요. 늘 머물러 있지 않게 해주는 게 잡지니까요.” 쉼 없이 걷는 삶, 배고픈 날도 걸어가는 삶이 만든 이야기. 거룩한 일상이 만든 이야기. 그래서 더 마음에 직구로 꽂힌다. 나는 예전 인터뷰(5년 전 디자인하우스가 발행하던 네이버 디자인판의 ‘오! 크리에이터’ 칼럼)의 한 구절도 오래 기억한다. “30대는 치열하게 일했고, 40대는 불확실성에 흔들렸고, 50대에 비로소 내 것이 조금 생겼다. 60대에 접어든 지금은 배짱이 좀 생겼다.” 이 말에서 위로와 응원을 얻은 이, 비단 나만은 아니리.
“제가 이번에 노라노 선생님 백수白壽 기념 전시 디렉팅을 했는데, 선생님 말씀 중에 그런 게 있어요. ‘혼자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여도 내 노력을 지켜보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은 있거든. 그런 사람들이 아주 중요한 순간에 길을 내주면 한 단계씩 올라갈 수 있는 거예요.’ 그게 가슴에 절절하게 와닿았어요. 먹고살려고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까 어느새 나만의 나이테가 쌓인 거예요.” 그 나이테는 ‘서영희 스타일’로 바꿔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겸양이다. 그는 남다른 작업을 하고 싶어 화보 일정이 잡히면 시장부터 누비는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했다. 미시사를 구현하기 위해 거시사를 들여다보는 일도 꾸준히 해왔다. <통영 송촌송병문가 복식 기증전> 전시 감독을 할 때는 통영의 사회문화사를, <덕수궁 덕흥전 혼례전> 전시 감독 때는 우리 혼례 문화의 변화를 석 달 넘게 들이팠다. 오방색을 이용한 파리 장식미술관 콘셉트를 잡기 위해 외규장각 의궤를 공부했다. “대상을 사랑해야 하니까요. 주얼리를 찍는다고 하면 그 브랜드의 히스토리, 주얼리 하나가 지금 이곳에 오게 되기까지 과정을 일부러 찾아보는 이유가 다 내가 걔를 사랑하고 싶어서예요.” 스스로 설계한 적 없다지만, 쉼 없이 사랑한 것이 쌓여 그만의 지도가 됐다. 한 시대의 습속을 조망하게 하는 지도.

2025년 프리즈 서울에서 그는 SK 나무엑스 전시를 총괄했다. 웰니스 로봇과 목화솜 이불을 연결해 ‘기술의 온기’를 구현한 공간.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좀 더 심도가 있어야 했다. 너무 서툴고 투박했다. 하지만 좌충우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이후에도 ‘막’ 정신은 계속되어 푸드 스타일링도 하게 되고, 명품 브랜드와 우리 전통 함을 적용한 트렁크도 만들고, 고가의 주얼리 브랜드와 광고 비주얼도 만들면서 내 안에 막 정신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나의 막 정신이 먹힌다는 거다. 전통을 막 섞었는데 주변에서 그게 괜찮다는 거다. 정말 남다른 예술이 된 게 맞는 것 같다.” _디자인하우스 50주년 ‘막’ 기고문 중
“‘막’ 정신은 시도 때도 없이 ‘막’ 찾아와요”
그 지도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막’. “한 달이 멀다 하고 새 유행이 쏟아지는 패션 판에서 몇백 년 전, 몇십 년 전 우리 전통을 어떻게든 같은 선상에 놓고 싶어 한 마음. 그걸 가능하게 한 게 ‘막’ 아닐까요? 저는 생전 처음 해보는 분야의 일이라도 정말 ‘막’ 해봐요. 그렇게 좌충우돌 축적한 경험과 순간적 직감이 ‘막’ 만나요. 내 안에 있다가 그냥 쿡 찌르면 툭 나오는 것, 그거 굉장히 동물적이거든요. 선비가 혼자 있을 때 가장 무섭다고 하잖아요. ‘막’이라는 게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 성품, 성향을 다 보여주는 거니까. 꾸미지 않은 나니까. 굉장히 무서운 거지. 그렇게 나만의 ‘막’ 정신은 시도 때도 없이 ‘막’ 찾아와요.” 시냇물처럼 졸졸졸 흐르는 그의 입담 안에 중요한 것이 다 들어 있다. ‘좌충우돌 쌓은 경험’과 ‘타고난 직감’의 파열음. 그런데 그게 가능하려면 더 깊이 뜸 들이면서 들여다본 시간이 디폴트값이다. 그리고 어떤 삶의 장르도 받아들일 고감도 안테나다.
감추어둔 보물 찾기
나는 그에게 “왜 이름을 건 디자이너가, 저자가, 브랜드가 되지 않았나? 왜 연출하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 매개자가 되었나?”라고 청맹과니처럼 물었다. “스타일링의 재료는 옷이잖아요. 그 옷을 알려면 디자이너들을 꿰뚫고 있어야 하거든. 이 디자이너는 형태가 좋고, 저 디자이너는 소재를 잘 다뤄, 이런 걸 분류해놓고 그들을 섞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애초에 워너비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이고 싶은 거지. 전시도, 공간도 마찬가지고요. 드러나지 않는 게 분한 사람과 편한 사람이 있는데, 나는 편한 사람이에요. 누군가가 만든 세계의 안을 들여다보고, 사랑스러운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전시 감독을 맡은 <노라노: 퍼스트&포에버>. 그는 노라노가 보유한 아카이브 박스 14개를 정리하고 선별해, 시대와 테마별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패션 화보든, 푸드 화보든(꽤 오래 <행복이 가득한 집>의 푸드 칼럼 스타일링도 진행), 전시 기획이든 ‘서영희의 손’을 거치면 2초 텐트에 들어간 것처럼 금세 따뜻해진다. 그 이유는 바로 저 ‘사랑스러운 부분을 찾으려는’ 노력 때문일 것이다. 인구에 오래 회자되는 그 ‘할머니 화보’(<보그 코리아>)도 마침 떠오른다. “90세부터 1백6세 할머니 모델들에게 명품 백을 들게 하는 것조차 무례해 보이더라고요.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온 분들에게 예의를 다하고 싶었어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커지나 봐요. <미인> 할 때 국립무용단원들을 보면서 매일 눈물을 흘렸어요. 그냥 숨만 쉬어도 이미 춤을 추고 있는 듯한 그 정도의 경지가 놀라웠어요. 누구나, 모두에게 그런 어빌리티ability가 있다는 걸 이젠 알 것 같아요.”

전시 감독을 맡은 <노라노: 퍼스트&포에버>. 그는 노라노가 보유한 아카이브 박스 14개를 정리하고 선별해, 시대와 테마별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그 알아챔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성정 때문이리라. 거기에 비로소 세상을 ‘관람’할 수 있는 나이가 더해준 덤. 그리고 자기를 위해 시간을 쓰는 ‘시간 사치’가 준 덤. 아, 현대미술에 대한 오랜 관심도 ‘넓게 보는 눈’을 키워주었다. “찾아가 물어볼 선배가 없던 시절에 내가 기댄 대상이 현대미술이었어요. 20년 전에도 런던·뉴욕 패션 위크에 가면 꼭 이틀씩 더 묵으면서 미술관에 갔어요. 테이트모던에서 연대표 사다가 내가 본 작가에 동그라미 쳐가며 독학하는 식으로. 그들처럼 나도 이렇게 좀 자유롭게 해내도 되지 않을까, 용기를 주었어요. 이 세계를 굴러가게 하는 거대한 상상력도 엿보았고요. 카셀 도큐멘타, 뮌스터 조각 페스티벌, 베니스비엔날레 같은 데 갔다 오면 몇 달은 좀 든든해요. 정신적 깊이를 파고드는 공부를 좀 하고 온 것 같아서.”

국립무용단의 <미인>.
그가 인생의 모토라는 ‘감추어둔 보물 찾기’, 그것 중 하나가 현대미술 공부이리라. “언제 행복하냐고요? 말 그대로 감추어둔 보물을 찾을 때! 요즘엔 보물이 더 잘 보여요. 노라노 선생님 전시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시대사와 섬유사가 왜 보이냐고? 글쎄, 하하. 요즘엔 쟤도 좀 알고 싶고, 얘도 좀 알고 싶고 그래요. 음… 내가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생각해보면 밝아. 어둡지 않아. 북향인 내 방 침대로 아침 햇빛이 들어올 때 같은 밝음? 일하면서 더 낙천적으로 된 거 같아요. 어떤 대상도 비평하지 못하고 좋은 점만 자꾸 보려는 걸 보면.” 살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순 없다. 순간순간이 아주 가끔 아름다울 뿐이다. 그 순간을 이어서 자신의 별자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 사람에겐 기억, 용기, 호기심이 그 순간순간이다.

〈행복이 가득한 집〉과 이어령 선생이 기획하고, 오뚜기함태호재단이 제작 지원한 단행본 〈K FOOD: 한식의 비밀〉에서 비주얼 디렉팅을 맡았다. 명목상 역할은 5권 전권에 걸친 크리에이티브 디렉팅이지만, 기획부터 촬영용 식재료와 소품을 구하고 촬영 장소를 수소문하는 일까지 2년여 동안 편집진과 한 몸처럼 일했다.
막사발, 막걸리, 막국수, 막춤…
접두사 ‘막’에는 서툴고 투박하지만 일단 해보는 한국인의 기질과 태도, 정신, 용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질이 어떤 감각과 만날 때, 남다른 디자인과 예술로 확장되고 벤처 정신이 돋아납니다. ‘막, 크리에이티브!’를 디자인하우스의 50주년 기념 문화 캠페인으로 삼은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