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민성진은 SKM Architects를 시작한 이후 꾸준히 한국적 호스피탤리티의 언어를 정립해왔다. 아난티와는 20년 넘게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서울, 부산, 남해, 제주, 금강산까지 상징적 작업을 남겼다. 그가 정의하는 호스피탤리티는 이제 시니어 레지던스와 그 너머까지 뻗어나가며 새로운 주거 유형을 다시 한번 만들어가고 있다.

SKM Architects 사무실에서 만난 민성진 소장. SKM에서 설계한 이 사옥은 직원들이 좀 더 쾌적하게 일하는 환경을 고민하며 자연과 가까운 중정, 채광, 높은 층고 등 그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건축가 민성진은 미국에서 건축을 배우고 프랭크 게리, 앨버트 마틴, 손학식 소장의 사무실에서 여러 경험을 쌓은 뒤 1995년 한국에 돌아와 SKM Architects(이하 SKM)를 설립했다. 하이엔드 주거를 비롯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성장했고, 마스터플랜, 건축 기획부터 설계와 인테리어까지 아우르며 건축을 하나의 일관된 언어로 완성하는 스튜디오로 자리 잡았다. 아난티 리조트 프로젝트를 통해 더욱 존재감을 드러낸 SKM은 이제는 건축가라면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작업을 하는 국내 대표 건축 스튜디오 중 하나가 되었다.
그가 30년 넘게 한결같이 추구해온 목표는 ‘전에 없던 건축’이다. “저희가 어떤 프로젝트를 할 때는 그 영역에서 새로운 유형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정표가 되는 작업을 목표로 삼고 설계해요.”
한국에 국내 호스피탤리티 브랜드가 전무하던 25년 전, SKM은 아난티와 함께 공유 별장이라는 새로운 유형을 제안했다. 당시 콘도 중심이던 리조트 시장에서 벗어나 레스토랑의 구성부터 사우나와 수영장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며 한국적 호스피탤리티를 처음 탄생시켰다. 2017년 문을 연 아난티 앳 부산 코브는 부산을 대표하는 장소가 되는 것을 목표로 도시와 리조트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했다. 투숙객만이 아니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마을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계획한 이곳은 오픈과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되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완공한 아난티 앳 강남은 전 객실을 기존의 플랫한 유형 대신 1층은 거실, 2층은 침실로 분리된 복층 공간으로 설계했다. 프라이버시의 밀도를 더 촘촘히 구분한 구성은 투숙객에게 공간을 이용하는 더 많은 선택지를 제안한다. 현재 설계 중인 제주 리조트는 로비를 실내가 아닌 야외에 배치했다. 투숙객은 캐노피가 있는 야외 공간을 통해 연결된 네다섯 동의 건물로 진입하며, 제주의 자연을 더 가까이에서 만끽할 수 있다.
늘 새로운 유형에 도전하는 태도는 결과물이 쌓이면서 이제 사무소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것은 단순히 형태나 프로그램, 디자인의 차별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어떻게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건축이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 가깝다. 인간의 삶이 변화함에 따라 그 답도 함께 진화한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독립된 결과물이지만, 동시에 그 질문을 향해 축적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게 쌓인 시간 위에서 SKM은 지금도 ‘전에 없던’ 건축을 향해 더욱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Architect Ken Sungjin Min trained in the United States and gained early experience at the offices of Frank Gehry and Albert C. Martin before returning to Korea in 1995 to establish SKM Architects. Since then, the practice has developed a wide-ranging portfolio—from high-end residences to large-scale hospitality—while maintaining a consistent approach that brings planning, architecture, and interiors into a unified design language.
A defining moment came through its collaboration with Ananti, where SKM helped move beyond the conventional condominium model and introduced a new concept of shared villas, reshaping Korean resort living. Projects such as Ananti at Busan Cove and Ananti at Gangnam exemplify this approach, while ongoing work in Jeju continues to draw the experience closer to the surrounding landscape.
At the core of Min’s practice is a sustained pursuit of ‘architecture without precedent’, grounded in a deeper understanding of how architecture can engage with the rhythms of everyday life and redefine the possibilities of living.
빌라쥬 드 아난티


자연의 원초성과 도시적 에너지가 교차하는 리조트. 바다를 향해 열린 대지의 서사를 정교하게 읽어내고 그에 순응하는 건축을 더해 유기적으로 직조된 마을의 풍경을 형성한다. 한국적 공간 구조의 위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고요한 사유의 시간과 다층적 도시 경험을 동시에 담아냈다.
제주 포도뮤지엄 레노베이션

기존 수평적 매스를 존중하며, 제주의 풍경 속에 낮게 자리하도록 계획한 프로젝트. 트래버틴 마감은 현무암의 질감과 대비를 이루면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입구는 브라운 스테인리스 스틸로 마감해 깊이감과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절제된 개입을 통해 기존 건축과 장소성을 섬세하게 이어간다.
세이지우드 홍천


원시적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건축이 숲의 생태적 질서에 은밀하게 개입하는 방식을 취한 리조트. 산세를 따라 안착한 테라스형 매스는 캐노피 지붕과 글루램glulam 목조 구조 덕분에 따뜻한 물성을 드러내며 숲의 대기와 호흡한다. 인위적 조형을 최소화하고, 재료와 형태가 주변 풍경에 스며들도록 함으로써 머무는 이에게 평안한 쉼의 시간을 선사한다.
아난티 앳 강남


복잡한 도심의 맥락을 섬세하게 해석하고 긍정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도시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제시하는 프로젝트. 저층부의 붉은 벽돌은 주변 환경과의 서사를 잇고, 상층부의 밝은 석재와 금속 루버는 도시의 미래적 시간을 투영한다. 중정과 후정으로 이어지는 전이 공간은 도시의 속도를 늦추고, 소음을 거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높은 층고의 복층 객실은 도심에서 비일상적 체류의 볼륨이자 내밀한 은신처가 된다.
오데마 피게 플래그십 스토어


브랜드가 축적해온 시간의 궤적과 철학을 건축적 볼륨으로 치환한 프로젝트. 도심 속에서 아이코닉한 상징성을 발현하면서도 내외부 공간의 절제되고 정제된 디테일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은유한다. 인허가부터 시공까지 3년여의 과정을 거치며 건축이 하나의 정교한 시계처럼 작동하도록 치밀하게 완성했다.
시니어 하우징 프로젝트


3백 세대 규모의 시니어 레지던스와 병원을 결합한 복합 시설. 인간 생애의 마지막 장을 담아내는 서사적 건축을 지향한다. 노년의 시간 속에서도 일상의 감각을 선명하게 유지하며, 마지막까지 개인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는 공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계획 중이다. 삶과 죽음의 궤적 속에서 존재 가치를 성찰하는 철학적 배경이 되고자 한다.
“제 건축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축적된 동사의 건축(Architecture of Layered Verbs)’입니다. 우리는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잖아요. 공간 또한 인간이 움직이고 감각하는 일련의 행위를 유연하게 담아내는 동사적 건축을 늘 목표로 삼아왔어요.”
SKM에서는 타운하우스, 한국형 클럽하우스, 공유 별장 등 늘 새로운 건축에 도전해왔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나요?
시니어 레지던스와 병원을 결합한 복합 시설, 서래마을 빌라의 재건축, 제주와 청평의 리조트, 미술관과 최첨단 기술 연구소까지 다양한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시니어 레지던스 프로젝트에 특히 집중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많이 등장하고, 또 우리에게 더 중요해질 영역이기도 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계획해가고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는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하는데, 사실 매우 젊은 나이예요. 그래서 시니어 레지던스가 젊은 시절에는 미처 하지 못하던 것에 집중하고, 앞으로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나가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집이 각자가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는 거죠. 저는 가장 생산적인 주거 형태가 호텔이라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해주니까요. 시니어 하우징 역시 점점 호스피탤리티의 영역으로 발전할 거라고 봅니다. 이건 사실상 모든 주거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해요. 청소나 세탁, 요리 같은 일이 점점 더욱 서비스의 영역이 되어가고 있어요.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이 갈수록 좋아하는 일과 취미에 집중하는 주거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데, 그게 결국 호스피탤리티에 가닿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KM의 중요한 정체성 또한 호스피탤리티입니다. 호스피탤리티 공간을 설계할 때 어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나요?
욕실이나 침실을 특화한다거나 평소에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드는 비일상적 공간을 디자인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항상 자연과 교감하는 법을 찾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연을 풍경의 일부로 가지고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프로젝트이든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아난티는 일반 호텔과 달리 항상 발코니가 있어요. 또 충분히 환기할 수 있도록 넓은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합니다. 또 하나의 목표는 프라이버시입니다. 호스피탤리티의 중요한 조건이 프라이빗하고 싶을 때는 사적인 객실에 머물다가 누군가와 교류하고 싶을 때는 로비나 카페로 가서 퍼블릭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거예요. 보통 호텔 객실은 문을 열면 바로 침대가 보이는데, 저희는 중문을 두고 전이 공간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아난티 앳 강남은 객실을 1층 거실, 2층 침실의 복층으로 구성해 선택지가 더 풍부해요. 로비가 퍼블릭하다면 거실은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는 세미 퍼블릭 공간으로, 위층 침실은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이 되는 거죠.
한국에 돌아와 처음 사무소를 시작할 당시에는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었나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영웅적인 사람이 아닌데,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잖아요. 저는 그런 면면이 모든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 한 명 한 명이 인간애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퍼뜨려가는 거라고요. 그러한 인간이 중심이 되고, 인간의 행위를 잘 담는 건축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 건축의 정체성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축적된 동사의 건축(Architecture of Layered Verbs)’이에요. 우리는 항상 움직이고 변화하잖아요. 공간 또한 인간이 움직이고 감각하는 일련의 행위를 유연하게 담아내는 건축을 목표로 삼아왔습니다.
그러한 지향점이 인간과 가깝고 자연과 관계 맺는 SKM의 건축으로 발현되고 있습니다.
김봉렬 교수님이 제 건축에 대해 한국적 건축이라고 평해주신 적이 있어요. 출입구에서 로비로 올라가는 시퀀스나 동선, 복도 끝을 막지 않고 유리를 두어 뷰를 만들어주는 방식, 자연에 열린 모습 같은 것이 굉장히 한국적이라고요. 한국의 집은 차경을 비롯해 대청마루나 마당 같은 요소에서 볼 수 있듯 늘 자연과 교감하잖아요. 그러한 요소가 모두 동사의 건축에 맞닿아 있어요.
건축을 감정에서 시작해 측정 가능한 도면이 되었다가 다시 감정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예술이라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소장님께서 건축에 담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우아하고 세련됐다, 그러면서 역동성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국민성이라 생각해요. 에너지가 있는 거죠. 한복도 저고리와 치마의 프로포션, 곡선 같은 것이 우아하고 세련되면서 동시에 역동적이에요. 제 건축도 그러한 가치를 담으려 해요. 그런 가치는 건축에서만 추구한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제 삶에서부터 모색해야 나오는 것 같아요.
30년간 성장을 거듭하며 롱런할 수 있던 비결을 꼽아 주신다면.
운동선수가 매일 연습하듯, 저는 매일 건축을 합니다. 매일 사무실에 와서 차분히 앉아 내 일을 꾸준히 루틴을 가지고 하는 것. 사실 특별한 비법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운이 좋기도 했고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었고, 오래 협업을 이어온 아난티 이만규 대표님을 비롯해 좋은 건축주들을 많이 만났어요. 하지만 결국은 매일 열심히 하는 레이어의 축적이에요. 행동의 축적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지속성, 끈기라고도 하죠. 매우 흔한 말이에요. 재미없고. 그런데 어려워요.
10년 후의 SKM은 어땠으면 하나요?
우선은 좀 더 단단해지고 오래 남는 사무소가 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시대를 관통하는 건축으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요. 그래도 앞으로 20년 정도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웃음) 그동안 열심히 잘해봐야죠. 늘 해오던 것처럼요.
민성진
남가주 대학교(USC)에서 건축학 학사를, 하버드 대학교 건축대학원(GSD)에서 도시디자인학 석사를 취득하고, 1995년 SKM Architects를 설립했다. 그는 평범함을 비범한 감각의 구축으로 승화시키는 ‘우아한 동사의 건축’을 추구하며, 사물의 물성과 현상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작업에 임한다. 그가 이끄는 SKM Architects는 고도화된 건축디자인과 기술을 통해 인류 문화의 진보를 이끌고 ‘시간의 건축’을 실천하는 건축가, 디자이너, 도시 연구자들의 지적 공동체이다. skm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