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미 작가의 한옥을 취재하고 돌아와 쉬며 ‘좋은 집을 완성하는 시작점이자 마지막 퍼즐은 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집의 기운과 표정, 결을 만드는 바탕 같은 것. 작가의 한옥은 주말이면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물살처럼 쏟아지는 북촌 메인 골목에서 살짝 비껴간 곳에 있다. 인파를 헤치고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올라 살짝 방향을 튼 곳에서 만난 집은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 반듯한 낙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수미 작가는 매일매일 즐거운 꿈을 꾼다.

자목련이 커다란 버섯처럼 뭉게뭉게 피어난 마당. 이수미 작가에게도, 한옥에게도 좋은 계절이다.
한국의 집은 참으로 멋스러운 데가 있다. 대문을 열고 ‘직진’하지 않고 좌우로 꺾어가며 부러 곡선의 길을 만들어낸다. 이수미 조각가의 집도 그랬다. 대문을 열고 돌계단을 오르자 이내 우측으로 꺾이고 다시 좌측으로 한 번 더 방향을 트니 ‘이 문이 진짜’라는 듯 솟을대문이 나타난다. 계단참 같은 공간에는 흰 꽃이 하늘하늘한 화분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작은 소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문을 열자 깜짝 선물처럼 펼쳐지는 자연의 집. 시니컬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을 만한 풍경으로, 4월의 집은 큼지막한 자목련과 명자나무, 분홍 병꽃나무로 도심의 도원경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대지 면적이 80여 평이라 마당도 그만큼 큰 ㄷ자 한옥. 정원 너머 멀찍이 한옥의 몸채가 보였는데, 나무문 빛깔이 유달리 곱다. 몸피를 여러 번 깎아 찾아낸 보드랍고 온화한 빛깔. 자목련 너머로 펼쳐진 그 풍경에 취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마당과 허공에 정오의 볕도 때마침 가볍게 걸렸다. 북촌의 한옥은 대부분 멋과 기품이 넘치는데, 이곳은 거기에 ‘호젓한 고독’까지 갖춘 모습이다. 이면도로에 위치해서도 그런데, 야트막한 오르막길에 자리함에도 터가 좋아 담벼락 아래로 북촌의 고즈넉한 풍경이 와르르 펼쳐진다. “코로나19 때였어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때라 우연히 유튜브를 보는데, 이 집이 나오는 거예요. 바깥쪽 작은 마당에 말도 안 되게 작고 허름한 샤워실이 있고, 이 좋은 풍광을 마다하고 큰 창을 달력으로 발라 다 막아 놨더라고요. 주방 천장도 다 덮여 있고요. 첫 만남에는 결정을 못 하고 이듬해 봄에 다시 왔는데, 그때도 안 팔리고 있는 거예요. 마당으로 햇살이 드는데 너무 조용하고, 평화롭더라고요. 그날 바로 계약했어요.”

안채의 거실. 본인이 만든 의자에서 포즈를 취한 이수미 작가. 브론즈로 뼈대를 만들고 그 위에 반듯하고 큼직한 고재를 얹었다.

소파 대신 의자 여러 개와 테이블을 각각의 배우들처럼 배치했다. 보드라운 벨벳 체어는 앙드레 소르네Andre Sornay, 마호가니 목재와 대리석의 조합이 근사한 사이드 테이블은 미국의 미드센추리 모던 디자이너 존 키얼John Keal 작품.
매번 느끼지만 집을 구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 지금 모습이 아닌 미래의 모습을 그릴 수 있는 자만이 승전가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대수선에 돌입. 대목수를 섭외했다. 그야말로 허무는 곳이 많은 대수선이 돼 멈추고, 북촌 일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축가 및 목수와 호흡을 맞췄다. 장판을 걷어내고, 크고 작은 창을 만들고, 작은 샤워실이 있던 공간은 다 허물어 야외 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썩은 서까래만 골라내 고재를 끼워 넣고, 마당과 실내 공간이 편안하게 연결되도록 바닥 높이를 낮추고….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안채 뒤로 빙 둘러싸여 있는 뒤란. 안방에 있는 안쪽 문을 열면 욕실이 나오고, 그곳에 있는 문을 또 열면 뒤란으로 이어지는데 모서리에 아담한 노천탕까지 있는 서프라이즈! 그곳에 몸을 담그면 이웃한 한옥의 기와가 보이고 그 옆으로 소담한 정원이 펼쳐진다. 취재를 하며 두세 번 이곳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그때마다 새소리가 한가득. 짹짹, 푸드득 소리가 한 번도 끊이지 않는 뒤쪽의 쉼터 같은 느낌이었다. 이수미 작가는 “굳이 노천욕을 하지 않고 꽃잎을 띄워놓거나 새소리를 듣고 물만 뿌려도 좋은 곳”이라고 했다. “이곳에 오면 그저 평화로워요.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줍고, 꽃에 물만 주고 있어도 좋지요.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아요.”

다이닝 공간에는 한결 작가의 옻칠 테이블을 두었다. 시선 끝에 걸리는, 단색화의 거장 최명영 작가의 작품도 근사하다.

주방 공간에서 바라본 큰 거실 겸 대청.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준 정서적 유산
이 아름답고 낭만적인 집은 구석구석 이수미 작가의 작품으로 더욱 빛난다. 의자부터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는데,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레이스와 개미, 해골. 손뜨개로 완성한 레이스를 몰드로 떠 얇은 금속으로 바꾼 후 도자나 고재의 깨진 부분을 메우고 본인 몸무게의 20~50배를 짊어지는 개미에 경탄하는 마음을 담아 조형물로 만들어 대들보 밑에 걸고, 크고 작은 해골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 넣는다. 설명만 들으면 언뜻 ‘과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기본적으로 미감이 좋고 위트와 재치가 만들어내는 중화 작용도 있어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지 않다. 특히 고재나 달항아리를 알루미늄 또는 은으로 메우는 작업은 긴스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긴스키가 산뜻한 환절기 옷이라면 두툼한 질감과 조형미가 두드러진 그녀의 작업은 겨울 정장에 캐시미어 목도리를 두른 느낌. 도톰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앞다퉈 사간다. 이날 이수미 작가는 본인의 작품을 여럿 가져왔는데, 그 작품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내겐 모든 것이 ‘생의 찬미’처럼 보였다. 깨지고, 망가지고, 근면하게 살다 끝내 죽은 것에 다시 온기와 웃음을 불어넣는 일.

한옥에서의 좌식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게스트 룸. 맞은편 통창 너머로 뒤란을 감상할 수 있다.

본인이 만든 작품을 중심으로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건 특혜이자 재미다. 시멘트를 주재료로 한 개미 조형물. 그녀의 작품에는 오래된 물건과 성실한 생명을 향한 존중이 때로 묵직하고 때로 위트 있게 담긴다.
“할아버지가 절을 짓는 대목수였어요. 엄마 아빠는 일을 하러 나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랑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 집이 큰 한옥이라 이것저것 볼거리도 많고 놀거리도 많았어요. 할머니는 비단을 짜셨는데, 집에 있으면 홀치기염색을 할 때 천을 묶었다 펼치고, 물에 담갔다 뺄 때 나는 뽀드득, 철벅철벅 소리가 계속 들렸어요. 저는 그런 소리를 들으며 온 서랍장을 다 뒤지고 다니며 놀았고요. 서랍을 열다 보면 죽은 벌레도 왕왕 나왔는데, 제겐 그게 대수롭지 않았어요. 무서워할 것도 없죠.(웃음) 이웃집 딸기밭에서도 한 철을 놀고요. 근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제가 살던 그 집에 우연히 다시 갈 일이 있었는데, 그렇게 크고 높던 집이 생각보다 작더라고요. 가기 무섭던 화장실도 그렇고, 큼직한 가마솥도 그렇고 분명 큰 세계였는데 말이지요.(웃음) 할머니 댁에 있던 그 많은 골동이며 가구는 큰삼촌이 KBS 드라마 제작국에 다 기증했어요. 그곳 자재과에 계셨거든요. 그렇게 오래된 물건을 보고, 만지고, 느낀 영향 덕분인지 생활 기물에 끈끈한 애착이 있어요. 이 둥글넓적 큼직한 고재가 뭔지 아세요? 술을 만들고 거를 때 쓰던 나무 용기인데, 여기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지요? 이걸 버리기 아까워 은이나 알루미늄 및 레이스 등으로 조심조심, 고심고심 메우는 거예요. 휘트니 뮤지엄 같은 곳에서 미술계 인사들이 오면 저걸 가져가려고 난리가 나요. 치즈 플레이트나 과일 트레이로 써도 좋겠다면서요.”

금속 레이스로 ‘옷’을 만들어 입힌 소반.

욕실 한쪽도 이리 재미있게.
집도 삶도 축하하고 경외하는 것
그녀의 인생에는 서사가 넘친다. 뉴욕 주립 패션공과대학교(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입학해 미국으로 날아간 때가 스물여섯 살 가을. 도미 전에는 한국에서 패션, 뷰티 모델로 활약했다. 피에르가르뎅 전속 모델이었고, 아모레 광고에도 나왔다. 찍은 CF만 50편이 넘는다. 그녀의 핸드폰에 이때 사진들이 저장돼 있었는데, 와! 큰 키와 이국적 마스크, 치약 모델처럼 해사한 미소가 돋보였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한국에 IMF가 터져서 엄청 힘들었어요. 졸업은 해야 하니까 치과에서도 일하고, 옷 가게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시급이 10달러이면 1만 8천 원이니까 고학생에겐 큰돈이었지요. 치과에서는 보조 직원으로 손님도 응대하고 보철물의 본을 뜨는 일도 도왔는데, 할아버지·할머니랑 살던 경험 덕분에 추운 겨울에 노인분들이 들어오면 무릎을 꿇고 외투를 벗겨드렸어요. 손이 곱아 단추며 지퍼를 만지기가 쉽지 않잖아요. 덕분에 인기가 많아 지금도 ‘그때 그 미스 리’ 하면서 제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대요. 그 치과 의사랑 제 룸메이트가 결혼해서 병원 소식을 종종 듣거든요. 학교에서는 주얼리 디자인을 배웠어요. 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다 보니 친숙하기도 했고, 본 것도 많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대공, 소공은 물론이고 톱질하기, 접착하기, 은판을 겹쳐 납땜하거나 망치질로 부풀려 안을 비게 만드는 홀로 폼hollow form까지 배우고 나니 일의 영역이 자연스럽게 조각으로 확장됐고요. 제 작업이 엄청 다양한데, 긍정주의자인 데다 일을 재미있어 해서 그래요. 해골 시리즈만 해도 눈알이 빠지고, 선글라스를 끼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메롱 하는 등 온갖 표정이 다 있어요. 누군가가 죽었다고 해서 살던 기억과 모습까지 다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제 삶에 영원히 있는 것처럼 죽음과 삶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문양의 레이스를 몰딩으로 떠 견고한 금속으로 작업하다 보면 그런 삶을 축하하고 경외하고 치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고요.”

바닥 한쪽을 직각으로 처리해 선반이며 콘솔에 툭툭 올려놓을 수 있는 ‘이수미표’ 달항아리.

새의 다리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와인 쿨러. 역시 재미와 위트가 돋보인다.

거실이나 쪽마루에 앉아 마당에 걸린 빛과 하늘을 보고 있으면 한옥이 얼마나 호사로운 집인지 새삼 깨닫는다.
몇 년간 이 집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운용 방법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곳이 많은 사람에게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연과 워크숍이 열릴 수도, 어떤 브랜드와 협업을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에게도 활짝 문을 열어 좋은 기운을 주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공간의 영향력이란 것도 분명 있다고 믿기에 과감히 추진해볼 생각이다. 아름답게 고친 이 집의 나이가 90이 다 됐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나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더 근사하고 더 멋질 것 같았다. 긍정 에너지로 반짝이는 그녀의 작품처럼.
이수미 작가와 <행복>의 오작교 역할을 한 박소연 대표는 아트앤에디션(artnedition.com)을 운영하며 ‘일상이 예술, 예술이 일상’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실제 경험으로 연결하는 인물입니다. 이수미 작가의 감각적 작품도 만날 수 있는 아트앤에디션은 ‘바른손’에서 시작한 아트 플랫폼으로, 전시 기획과 브랜드 협업을 통해 작품을 공간과 일상 속으로 확장시키며 작가와 컬렉터, 작품과 일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점인 판화 에디션뿐 아니라 원화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리빙 브랜드와 협업, 공모전 기획 등 일상 속에서 감상과 수집이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