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하이라이트 〈디자이너스 초이스〉는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들이 집중하고 고민하는 주제를 나누는 무대가 되어왔다. 올해의 주인공은 유랩 김종유 대표와 인테그 송승원·조윤경 대표. 두 스튜디오는 AI와 자동화, 온라인이 나날이 부상하는 시대에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감각과 경험에 관해 이야기를 펼쳤다.

조각으로 지은 집: 삼베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재발견하며 새로운 시선을 제안한 유랩의 전시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의 마지막 장면. 김종유 대표의 어머니가 수의를 만들고 남은 삼베 조각으로 집을 지었다. 매년 여름 자투리 삼베를 꿰매 이불을 짓던 어머니의 손길, 남은 천 한 조각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보자기로 만들어 쓰던 선조들의 태도, 완성된 작품에서 느껴지는 평온한 미감이 조화를 이룬다.
유랩 김종유 대표: 버려진 것·벗어난 것·잊혀진 것

먹으로 지은 집: 산목散木
김미연 작가가 한지 위에 먹을 쌓아 올려 세운 집은 쓰임에서 비켜난 것들을 품어낸다. 6백44년 된 나무는 화재로 생명을 잃었지만 소목장 조현영의 손을 거쳐 가구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죽은 나비의 푸른 날개는 정우원 작가의 키네틱 아트를 통해 예전의 날갯짓을 다시 시작한다.
검은 먹이 겹겹이 배어든 한지, 조각조각 이어 붙인 삼베, 타닥타닥 밟히는 금속 슬레이트, 존마다 달라지는 향까지. 유랩의 전시 〈무용지용, 쓸모없음의 쓸모〉는 20년 가까이 소재에 천착해온 사무소답게 온통 물성으로 가득했다. 유랩은 2007년 설립한 이후 ‘공예와 소재가 가장 최소 단위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간 실험을 이어왔다. 폐기 도서를 재활용한 종이 블록으로 서점의 진입부를 제작하고, 거푸집에 파라핀을 부어 프레이그런스 브랜드 스토어의 벽을 세우는가 하면, IT 기업의 식당을 디자인할 때는 버려진 키보드 부품을 콘크리트와 섞어 자재를 만들기도 했다. 일상의 평범한 소재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온 김종유 대표의 시선은 이번 전시에서도 변함없이 드러났다. “요즘은 SNS를 통해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게 되는 시대잖아요. 이번 전시에서는 ‘쓸모없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때로 우리가 누군가보다 부족해 보일 때가 있지만, 모든 존재에는 저마다 쓸모와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를 공간으로 전하려 했어요.”

버려진 것의 재발견
항공 플레이트로 만든 테이블 위 새롭게 재탄생한 재료들. 정우원 작가의 ‘무용의 기적’에서 부러진 나뭇가지는 펜 플레이트 위 정교한 터치의 주체가 되고, 그 뒤 철망과 키보드 조각, 쓰고 남은 백신병은 유랩의 손길을 거쳐 공간의 소재로 변모한다. 가장 뒤쪽 작업은 가공하고 버려진 철재로 오브제를 만드는 안도 프로젝트의 작품.
좁은 통로를 지나 소란한 전시장에서 유랩의 세계로 발을 들이면, 가장 먼저 ‘먹으로 지은 집’이 등장한다. 검은 한지를 덮은 공간 중심에는 지난해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화재로 불타버린 후 가구로 제2의 생을 준비 중인 보호수가 서 있고, 그 옆에서는 나비가 푸르른 날갯짓을 한다. 정우원 작가가 죽은 나비의 날개를 키네틱 아트로 구현해 살아 있는 나비처럼 움직이게 한 것. 뒤이어 쓰임을 다한 항공 플레이트로 만든 테이블 위에는 유랩과 여러 작가가 리사이클 소재를 탐구한 작업이 놓여 있다. 마지막 ‘삼베로 지은 집’은 김종유 대표의 어머니가 손수 만든 삼베 수의, 그리고 남은 삼베 조각을 모아 지은 공간이다. 이곳에 자리한 모든 재료는 디자이너와 작가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입고, 유일무이한 존재로 격상한다. “〈장자〉 ‘인간세’ 편의 ‘산목’은 숲속에서 곧게 자란 나무는 일찍 베이지만, 작고 뒤틀린 나무는 살아남아 결국 큰 숲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희가 전시한 작품과 그간의 작업에도 이러한 생각이 깃들어 있어요. 공간을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을 향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시에는 아엘 김미연 대표, 소목장 조현영, 정우원 작가, 안도 프로젝트 등 그간 유랩과 협업하며 인연을 맺은 여러 작가가 참여했다. 서예가 조용연은 현장에서 직접 쓴 입춘첩을 관람객에게 선물하고, 삼일절에는 3·1독립선언서를 벽에 쓰는 퍼포먼스를 하며 기념하기도 했다. 참여한 작가는 물론 관람객들과도 위로와 공감, 응원을 나누며 전시장에 모인 서로의 존재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종유 대표는 2007년 공간 실험을 목표로 디자인 스튜디오 유랩을 설립했다.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섭하고, 소재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공간에 유랩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주요 작업으로 이태원의 서점 겸 북 카페 그래픽과 베이커리 오월의 종, 교보문고, 그랑핸드, 네이버 신사옥 식음 공간 등이 있다. designstudioulab.com
인테그 송승원 · 조윤경 대표: 여백으로 만드는 오늘의 ‘머무름’

더 큐브: 공간에 숨은 켜를 드러내다
모든 것이 금세 나타나고 사라지는 요즘, 물리적 공간이 줄 수 있는 경험을 탐구한 인테그의 전시에서 만나는 첫 번째 장면. 은은하게 빛을 들이는 한지의 물성으로 채운 공간이다. 소파 내장재, 페인트나 벽지를 바르기 전 바탕 작업을 한 벽체, 금속 구조체 등 가구와 공간의 숨은 과정을 드러낸 작품은 관람객에게 디자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오른쪽 금속처럼 보이는 구조물의 소재는 메라톤.
인테그 송승원·조윤경 대표는 기획전 〈(Design {Matters) Matter}〉에서 그들이 만든 장소 자체가 작품이 되고, 관람객이 그 안을 거닐고, 머무는 장면들이 모여 비로소 완성되는 전시를 선보였다.

더 라운드: 서로 다른 세계의 만남
결국 공간의 가장 근원에는 자연이 있다. 한옥이 자연을 집 속의 풍경으로 끌어들이던 것에서 더 나아가 레오킴 작가의 한국 꽃꽂이와 이윤정 작가의 설치 작업을 더해 자연을 인테그만의 시선으로 해석했다. 둥근 벽면은 무니끄 패널.
“이제 AI를 통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즉시 찾고, 때로는 과잉이라 느낄 정도로 원하는 것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등장했다가 금세 소비되는 요즘, 물리적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답을 ‘머무름’이라는 개념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조윤경 대표의 설명처럼 두 디자이너는 가장 직관적 형태인 도형을 모티프로 서로 다른 머무름의 장소를 만들고, 과거 우리의 집이 지닌 공간적 요소를 그 안에 담아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공간은 한지의 반투명한 물성, 그리고 한지 문 너머의 차경이 한옥을 닮은 ‘더 큐브(네모)’. 이곳에는 흡음재, 퍼티를 칠한 바탕 등 디자이너가 아니면 접하기 어려운 공간의 숨은 요소들을 전시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더 루프(세모)’는 박공지붕 아래 전통 보료에서 영감받은 모듈 소파로 구성한 좌식 공간. 지붕은 그 자체로 바라보는 재미를 주는 동시에 외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가려주어 마치 대청마루처럼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주변 풍경은 들이면서도 느슨하게 경계를 구분하던 한옥의 공간감과도 꼭 닮았던 부분. 마지막 ‘더 라운드(동그라미)’에서는 공간의 원형인 자연을 마주하게 된다. 레오킴 작가, 이윤정 작가의 작업이 어우러져 자연과 인공이 균형을 이루는 모습은 “오늘날의 공간에서는 어떻게 자연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인테그의 답이라 할 수 있다.
관람객은 디자이너가 구현한 머무름의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겼다. 딱딱한 벤치 속 스펀지의 푹신함을 느끼거나 마감재의 물성을 경험했고, 더 루프에서는 드넓은 페어장 한복판임에도 나지막한 지붕 덕분에 기대어 눕기도 하며 자유롭게 머물렀다. “저희가 만든 공간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경험하는 모습을 보며, 디자인은 어떤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보다 사람들이 머무르는 여백을 만드는 일임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송승원·조윤경 대표는 2015년 건축·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인테그를 설립한 후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도시 공간의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디자인 방법론을 바탕으로 다양한 물성과 형태에 대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intgspa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