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에 불안정한 업무 환경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밀레니얼 세대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빌라선샤인이다. 홍진아 대표는 일하는 여성들이 함께 발전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홍진아 대학에서 경영학과 신문방송학을, 대학원에서 상담학을 전공했다. 노동 환경과 일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아 여러 가지 직업을 한 번에 수행하는 ‘엔N잡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곳의 직장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의 관심사를 펼칠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때 경험을 다수의 콘퍼런스에서 나누었는데, 콘퍼런스 연사의 남녀 구성비가 남성에게 기울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더 많은 여성에게 발언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이들의 네트워크를 넓히고자 커뮤니티 랩 빌라선샤인을 설립했다. 지난해 여성 이노베이터 8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 <나는 오늘도 내가 만든 일터로 출근합니다>를 출간해, 일하는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소공동의 로컬스티치, 성수동의 카우앤독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의 라운지에 주황색 간판 하나가 놓이면 여성들이 모여든다. 무대 위의 연사가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이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다. 이때 이들의 주제는 ‘어떻게 일을 더 잘할 것인가’가 주를 이룬다. 밀레니얼 세대 여성을 위한 커뮤니티 랩 빌라선샤인의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지난해 4월 시작해 시즌제로 멤버를 받아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1기에는 82명, 2기는 150명이 등록했고 올해 1월에 시작한 3기에는 220명이 모이며 규모가 커졌다. “회사에 다니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외롭지 않은 기획자 학교’란 커뮤니티를 운영했어요. 여성 기획자를 위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보통 혼자 일하는 이들이 회사 밖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서로의 일을 도우며 자신의 커리어를 개발하는 모습을 보았어요. 이를 통해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빌라선샤인 홍진아 대표의 말이다. 그녀는 2016년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여성 코워킹 스페이스 ‘더 윙The Wing’의 사례를 보고 여성 커뮤니티 서비스 사업을 구상했다. 더 윙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공간과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런던 등으로 빠르게 지점을 넓혔다. 그만큼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는 반증이다.
서로에게 선배가 되어주는 자리
올해로 사회생활 10년 차인 홍진아 대표의 별명은 ‘프로엔잡러’다. ‘엔N’ 개의 일을 한다는 뜻. 2017년 두 곳의 회사에서 콘텐츠 매니저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를 동시에 담당하면서 퇴근 후에는 다방면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험을 했다.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이 많아지는 만큼 회사에 기대기보단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일하는 방식을 찾은 것이다. 그 과정을 신문에 기고하거나 콘퍼런스에 연사로 서서 사람들과 나눴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앞으로 10년 뒤 제가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어요. 지금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는 20~30대 밀레니얼 세대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 생각해요. 이들은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세대라 불리지만 저성장 시대인 탓에 이전 세대가 일을 하면 당연하게 쌓을 수 있었던 부나 커리어의 성장이 불가능하죠. 그런데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는 선배가 없는 상황이에요. 특히 대부분의 회사 임원이 남성인 사회에서 여성이 모델로 삼을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죠.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이 만나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3개월 단위로 ‘뉴먼’이라 부르는 멤버를 모집하는데 디자이너, 개발자, 1인 사업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20~30대 여성이 주로 찾는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은 크게 6가지로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한다. 그중 격주로 열리는 ‘모닝 뉴먼스 클럽’이 메인 프로그램이다. 매 시즌 하나의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질문 5가지를 준비해, 회원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는다. 일을 할 때 부딪히는 어려움을 테마로 선정하는데 3기는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삼았다. “각 질문의 문제를 해결해본 전문가가 무대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한 뒤 참여한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이때 연사는 밀레니얼 세대로 구성해요. 10년, 20년 먼저 살아본 사람이 아닌 동시대에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의 이야기이기에 현실에서 곧장 적용할 수 있죠. 이처럼 경험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전문가가 아닌 멤버가 연사가 되어보는 선샤인 경험 공유회도 열어요. 시즌마다 10회 정도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주제를 신청받아 진행해요.” ‘내가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 ‘아무 체계도, 사수도 없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지역 모임 만들기’ 등의 테마를 정해 일을 하며 직면한 문제를 해결했거나 고민을 가진 멤버가 무대에 선다. 진행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빌라선샤인은 주최자가 된 멤버를 도와 콘텐츠를 다듬고 보강하는 역할을 한다. 이외에 엑셀이나 PPT, 노션 같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 사용법에 관한 워크숍이나 노무, 법률, 주거, 투자 등 여성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자리 등 일과 삶에 도움이 될 실질적인 프로그램도 준비한다.
오프라인 프로그램 외에 업무용 메신저인 슬랙을 활용한 온라인 소통 공간도 운영한다. “일주일에 게시글이 1000개에서 1400개 정도 올라와요. 일을 하며 궁금한 것에 대해 묻기도 하고, 서로 일을 주고받기도 하죠. 홀로 살며 부딪히는 주거 문제나 사회 초년생이 궁금해할 연봉 협상, 노동법에 관한 상담도 이뤄져요. 빌라선샤인은 노무, 법률, 주거, 투자 분야의 전문가를 두어 일대일로 상담을 할 경우 큰 비용이 드는 일을 부담 없이 해결할 수 있죠.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문제를 토대로 서비스를 구축했어요.” 3기부터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 멤버십을 별도로 마련했다. 오프라인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지 않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할 수 있으며 커리어 발전을 위한 콘텐츠 등을 받아볼 수 있다.
참가자가 주체가 되는 커뮤니티
“커뮤니티를 통해 얻는 성과는 수치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어요. 매주 회원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얼마나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지 느낄 뿐이죠. 1기부터 3기까지 참여한 분이 있는데, 최근 연봉 협상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함을 느꼈어요. 자신의 성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걸 정리해 제시한 덕분이죠. 누군가는 추상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해보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 자신감을 얻으면 자기 확신을 가지고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어요.” 빌라선샤인이 직접 만든 프로그램 외에 멤버가 리더가 되어 소모임을 기획하는 뉴먼소셜클럽 역시 반응이 좋은 프로그램이다. 150명이 모인 시즌 2에는 34개의 클럽이 열렸는데 5명 중 1명은 리더가 되는 경험을 해본 셈이다. 클럽의 주제는 스터디부터 취미 생활까지 다양하게 열어두어 주체적으로 모임을 주도하는 경험을 이끌어낸다.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에 자칫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고, 발언권을 얻지 못해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가장 노력한 부분이 안전하고 공평한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든 거였어요. 이를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찾았죠.” 오프라인 모임 참가자는 입장할 때 ‘뉴먼스 체크리스트’란 종이를 받는데, 오늘 자신의 컨디션과 모임을 통해 이루고 싶은 점을 작성하는 칸이 있고, 그 뒤에는 커뮤니티 수칙이 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행동을 가다듬게 된다. 홍진아 대표뿐만 아니라 함께 일을 하는 커뮤니티 매니저와 콘텐츠 디렉터 모두 다양한 모임을 경험해보았기에 나온 운영 방식이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AI가 절대 할 수 없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고객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매주 이들을 대면해 이야기를 듣는 게 때로는 어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해야 고객에 대한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쌓고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어요. 결국 이 사업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다르게 만드느냐는 고객들의 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멤버들과 소통하며 사람들이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녀는 빌라선샤인이 만든 넓은 여성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한 이들이 차세대 여성 리더로 탄생하는 10년 뒤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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