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우주에서 숲으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집

샤넬의 새 수장 마티유 블라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첫 샤넬 캠페인을 공개했다. 무대는 코코 샤넬이 1928년에 직접 지은 프랑스 리비에라의 빌라 ‘라 포즈La Pause’! 그곳은 생전 코코 샤넬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기도 하다. 라 포즈는 이름 그대로 ‘잠시 멈춤’을 허용하는 곳이다. 샤넬은 파리의 속도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고, 춤을 추고, 친구들과 나른한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시간을 다시 정의했다. 장인과 예술가들이 머물던 이 공간은 당시 모더니티의 중심에 있었고, 그녀는 그 모든 에너지를 샤넬이라는 메종 안으로 흡수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바로 이곳의 안뜰에서 첫 샤넬 캠페인을 촬영했고, 샤넬의 헤리티지와 현재를 가로지르는 감각적 접점을 새롭게 제시했다. 마티유 블라지가 창조한 새 샤넬 캠페인의 결정적 힘은 공간 자체가 옷의 메시지로 전환되는 순간에 있다. 라 포즈의 정원과 파티오에서 펼쳐진 장면들은 단지 과거의 유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오늘을 향해 미묘하게 호출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의 DNA를 단순히 복고적으로 되살리려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의 시선은 샤넬의 유산이 우리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순간으로 확장되는 과정과도 같다.

샤넬 2026 S/S 컬렉션 쇼.
첫 쇼에서 블라지는 그랑 팔레를 거대한 우주로 변모시켰다. 매달린 행성들, 반사되는 광채, 끝없이 펼쳐진 별의 공간은 샤넬의 옷과 함께 하나의 우주적 서사를 만들었다. 옷은 별과 달 사이를 떠다니는 무중력체처럼 느껴졌고, 우주라는 배경은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시간과 경계를 초월할 수 있다는 감각적 확신을 주었다. 이 무대는 단지 시각적 이벤트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적 코드’였다. 이어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는 그 우주적 상상력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랑 팔레는 이번엔 거대한 버섯과 분홍빛 버드나무로 가득한 동화 같은 정원이 됐다. 거대한 버섯들은 어린 시절 읽은 이야기 속 장면처럼 런웨이를 둘러싸고, 꽃과 조류를 연상시키는 텍스처는 옷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냈다. 정원의 풍경 속에서 옷은 꿈과 현실이 뒤섞인 서정적 장면으로 되살아났다.

샤넬 2026 S/S 오트 쿠튀르 쇼.
이 두 공간, 즉 우주와 이상한 나라의 정원은 언뜻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블라지에게 공간이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옷이 존재하는 방식의 확장이었을 뿐이다. 우주는 경계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상징하고, 동화적 정원은 자연과 감각, 그리고 감성의 풍경을 드러낸다. 그의 샤넬은 이 두 시공간을 통해 패션이 단지 물질적 제품을 넘어 감각적 경험으로 이어지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블라지는 공간을 통해서 샤넬이 말해야 할 것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낸다. 우주는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이고, 정원은 그 가능성이 생명으로 발현되는 장이다. 샤넬의 옷은 그 사이를 횡단하며, 관객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상상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가 된다. 그렇게 블라지의 샤넬은 결국 우주적 상상력과 동화적 환상이 만나는 지점, 그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문의 chanel.com
에르메스
바다와 말의 기억을 겹쳐, ‘시간’을 꿰매는 집

에르메스 2026 PE 컬렉션
“에르메스와 ‘집’의 연계성은 단순히 리빙용품이나 가구 판매를 넘어 신념을 주거 공간으로 확장하는 일종의 전략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에르메스는 느리다. 그러나 그 느림은 우아한 지연이 아니라, 정교함 자체이다. 에르메스는 ‘아름다움’을 말하기 전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항상 먼저 말한다. 그래서 이 집의 미학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유행이 아니라, 시간과 공예에 방점이 찍혀 있구나 하고 알 만한 소수의 사람은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사실 브랜드 에르메스와 ‘집’의 연계성은 단순히 리빙용품이나 가구 판매를 넘어 신념을 주거 공간으로 확장하는 일종의 전략으로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1920년대부터 이어진 이 연계성은 가죽·가구·패브릭·식기 등 다양한 홈 컬렉션을 통해 구현되었고,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매년 타임리스한 가치와 현대적 공예를 결합한 홈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으로 그 정점을 찍는다. 장인 정신과 기능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인간의 몸으로 자연스레 옮겨오는 문법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에르메스만의 독보적 스타일일 것이다(솔직히 에르메스 메종 도산만큼 패션과 리빙을 통해 한국의 주거 문화와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을 잘 구현해낸 브랜드 매장이 또 어디 있을까?).

에르메스 2026 PE 컬렉션
흥미로운 건 에르메스가 늘 그렇듯, 결국 ‘옷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에르메스의 정수는 여전히 안정감, 유행이 지나도 신뢰를 잃지 않는 옷장의 구축에 있다. 에르메스에서 옷과 액세서리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어찌 보면 집 안의 가구처럼 시간과 손길 및 경험을 담는 존재이다. 이번 시즌(2026 S/S), 에르메스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데주 바네니 시뷜스키는 프랑스 남부 카마르그의 야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실제로 말안장이었다. 아카이브 속 안장을 연구한 결과가 레이스업 코르셋이 아니라 가죽 ‘하네스’로 번역되었다. 런웨이의 바닥,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질감과 조개 같은 흔적들, 그리고 라이더의 서사가 겹치면서 에르메스 공간은 공방과 해변, 승마장과 도시를 동시에 품는다. 글로만 이해한다면 서로 상충되고 도무지 연결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조합. 그러나 현실에서 비주얼로 마주하면 기가 막히게 서로 어울리는 조합이란 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시즌의 핵심 오브제는 바로 하네스다. 밴도·셔츠·퀼팅 실크 트윌 라이딩 재킷 위에 겹쳐지고, 어떤 룩에서는 프린트 스카프의 두 끝을 가슴 위에 고정한다. 섹슈얼리티가 ‘노출’이 아니라 결속 방식으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나데주가 말한 ‘피부의 언어’는 가죽이 피부 위를 미끄러질 때의 감각, 끈이 감기는 선의 방향, 퀼팅이 남기는 볼륨의 기억으로 구현된다. 컬러 팔레트 또한 토양과 태양의 색—브라운, 올리브, 샌드, 레드, 블랙—으로 단단히 고정된다. 에르메스의 시간은 스타일을 배신하지 않는다.
하네스라는 실험적 장치가 등장해도 결국 이 집은 옷장을 지속적으로 구축하게 만든다. 단 한 번의 시즌이 아니라, 여러 해의 삶을 견디는 물건. 에르메스의 집은 패션 우주에서 가장 오래 불이 켜져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문의 hermes.com
프라다
무대에서 방으로, ‘과부하’ 시대의 옷을 더 간결한 구조로 만드는 집

건축가 렘 콜하스가 설계한 프라다 재단 미술관.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1993년에 설립한 현대미술 재단은 단순한 브랜드 후원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여느 프라다 매장과 전혀 닮지 않았다. 로고도 상품도 전면에 없다. 이는 프라다가 스스로를 단순한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담론 생산자로 규정하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작년 3월 프라다는 상하이의 20세기 초 저택을 6년간 복원해 ‘미샹 프라다 롱자이’를 오픈한 바 있다. 이 공간에서 프라다는 영화감독 왕가위의 미학을 덧입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브랜드 서사를 구축했다. 프라다는 고택의 물리적 복원뿐 아니라, 그 공간에 미식과 예술을 채움으로써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적 유산의 가치를 영속적 공간 경험으로 확장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폰다치오네 프라다를 통해 보여준 프라다의 공간 재생 방식과도 매우 흡사하다. 결국 프라다 하우스의 이 모든 공간 창출은 프라다의 옷처럼 우리에게 질문한다. “아름답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이고 싶어. 어떻게?”

상하이의 명소가 된 레스토랑 미샹 프라다 롱자이 내부.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함께 만드는 프라다의 세계는 단지 두 천재의 협업이 아니라, 프라다라는 집이 원래 해오던 방식—패션을 ‘정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다루는 방식—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트렌드보다 태도, 답보다 질문에 가깝다. 프라다 하우스의 중심에는 ‘왜?’라는 문장이 늘 있고, 매 시즌 그 문장은 새로운 형태를 지닌다. 이번 시즌(2026 S/S 여성), 그 질문은 ‘과부하’에서 시작한다.

브라운 컬러의 목재 건축과 창밖의 그린 컬러, 그리고 정갈하게 놓인 테이블웨어의 조화가 완벽하다.
“프라다는 고택의 물리적 복원뿐 아니라, 그 공간에 미식과 예술을 채움으로써 브랜드가 추구하는 지적 유산의 가치를 영속적 공간 경험으로 확장했다.”

품격을 갖춘 고가구와 책, 오브젝트가 감각적으로 배치된 미샹 프라다 롱자이 내부 풍경.
라프 시몬스는 옷을 몸에 조형하기보다 몸과 옷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 거리의 미학은 구체적이다. 탄성 없이 구성된 브라 톱, 가슴을 받치지 않지만 형태만 남아 있는 브라, 그리고 더 나아가 몸에서 떠 있는 듯한 브라의 암시까지. 미우치아 프라다와 라프 시몬스가 창조한 프라다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의복을 기능에서 떼어내고, 상징의 껍질만 남기는 방식으로 질문을 던진다. 동시대의 정보·속도·이미지 과잉에 대한 반응으로 쇼는 오히려 더 단순한 장치로 구성되었다. 강렬한 오렌지 톤의 플로어와 간결한 관람 구조. 프라다는 늘 공간을 무대처럼 쓰지만, 이번에는 무대를 다시 방처럼 만든다. 소음을 줄이고, 옷이 질문하게 하는 구조! 그 결과 옷은 ‘정의되지 않은 가능성’에 가까워졌다. 로고의 과시보다 형태의 애매함(군복처럼 보이지만 드레스처럼 입는 방식, 칼라를 뒤집어 만든 톱, 잘려나간 듯한 브라 형태,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다시 평평해지는 스커트), 이건 귀여움이 아니라 규칙을 흔드는 방법에 가깝다. 과부하 시대에 필요한 건 더 많은 장식이 아니라, 내가 나를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옷. 그래서 프라다의 레이어링은 기능이 아니라, 이 시대 최고의 합리적 스타일의 세계관이 된다. 프라다는 늘 시대의 불안을 미감으로 달래기보다 불안을 정확히 이름 붙이고 형태로 번역해왔다. 옷은 위로가 아니라 태도다. 과부하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새로운 트렌드가 아니라, 몸과 옷 사이의 거리를 재설정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프라다의 집은 그 거리를 가장 영리하게 설계하는 곳이다. 문의 prada.com
JW 앤더슨
‘낭만’를 지배하는 자, 자신이 곧 그 집의 주인이 된다

JW Anderson 핌리코 매장 내부 전경.
“조너선 앤더슨은 패션과 가드닝 도구 사이에 어떤 논리적 연결 고리를 찾기보다 그저 그의 취향 전체를 담아낸 큐레이션, 통합적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창조해낸다.”
오트 쿠튀르부터 스파 브랜드 협업까지, 패션의 전 카테고리를 가로지르는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은 이제 ‘옷 만드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손대는 순간 런웨이는 의복의 무대가 아니라 취향과 생활, 사물의 질서가 정교하게 조직되는 하나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앤더슨의 작업은 늘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떤 세계를 펼칠 것인가”에 가까운 질문에서 출발한다.
조너선 앤더슨에게 패션은 실루엣의 경쟁이 아니다. 소재의 물성, 사물의 배치, 빛의 온도, 동선의 흐름까지 포함하는 생활 구조에 가깝다. 따라서 그의 컬렉션을 따라갈수록 의복 자체보다 먼저 하나의 장면, 즉 옷이 놓일 세계가 떠오른다. 패션을 ‘입는 행위’에 가두지 않고, ‘살아가는 방식’으로 확장하는 태도. 앤더슨은 그 확장을 과장된 선언이 아니라, 차분한 큐레이션으로 증명해왔다.
런던에 있는 자신의 브랜드 매장 ‘JW Anderson 핌리코’는 이러한 태도를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사례다. 완결을 서두르지 않는 인테리어, 과도한 광택을 배제한 밀도, 그리고 럭셔리 리테일 공간이 흔히 선택하는 긴장감 대신, 사물들이 공존하는 방식이 공간 전반을 지배한다. 물론 의류는 중심에 놓이지만, 동시에 오브제들과 같은 높이에서 존재한다. 골동품 가구와 도예, 차와 꿀, 그리고 가드닝 도구까지… 이곳에 놓인 사물들은 분위기를 위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고 닳아갈 수 있는 기능적 오브제로서 아름다움을 지닌다. 프랑스산 구리 물뿌리개, 전통적 삽과 손 도구, 빈티지 워터링 캔이 의류와 한 공간에 놓이는 순간, 앤더슨이 말하는 럭셔리의 정의가 더욱 또렷해진다. 그것은 광택의 문제가 아니라, 잘 만들어져 오래 쓰이는 것의 존엄에 관한 문제다.

런던에 있는 JW Anderson 핌리코 매장 전경. 이 공간은 브랜드를 드러내기보다 삶의 장면을 겸손하게 연출한다.
그의 오트 쿠튀르 무대에서 ‘정원’이 펼쳐지고 있다면, 정작 조너선 앤더슨 자신만의 작업에서는 ‘온실’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듯 보인다. 정원이 자연 자체의 질서와 우연을 품은 공간이라면, 온실은 본질적으로 인공적이다. 온도와 습도 및 빛의 각도를 사람 손으로 조절하고, 연약한 생장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의 자비와 연민이 개입되는 곳. 그래서 온실은 자연의 반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협업, 자연이 스스로 완성하지 못하는 시간을 인간이 대신 보듬어주는 구조다. 앤더슨이 리테일 공간과 프로젝트에서 반복하는 감각도 이 ‘온실의 윤리’에 가깝다. 그는 완결된 표면을 즉시 제시하기보다 사물이 닳고 바래며 쓰임이 쌓일 수 있도록 여백을 남긴다. 골동품 가구, 도예, 생활 식료, 가드닝 도구 같은 오브제가 옷과 나란히 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들은 ‘연출을 위한 소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지속적으로 관리되고 사용되어야만 가치가 완성되는 것이다. 결국 앤더슨이 설계하는 세계에서 럭셔리는 화려함이 아니라 손길이 들어간 지속성, 자연과 인간의 협업이 만들어내는, 오래 살아남는 아름다움으로 정의된다.
그에게 리테일 매장이란 ‘자신이 좋아하고 가까이 두고 싶은 것’을 방문객에게 소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 담담함은 곧 그의 미학의 핵심이 된다. 패션과 가드닝 도구 사이의 연결 고리를 과잉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설명을 멈추는 순간, 공간은 더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앤더슨은 패션을 카테고리로 구획하지 않고 옷과 사물, 자연과 실내, 개인의 생활과 공적 무대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다만 그 의도는 단순한 무질서가 아니라, 한 사람이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의 공간이 지향하는 것은 완벽하게 마감된 럭셔리의 표면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드나들며 시간이 쌓이고, 사물의 표면이 변화할 여지를 남기는 태도에 가깝다. 닳음과 손때를 배제하지 않는 감각, 사용의 흔적을 가치로 전환하는 관점은 그가 반복해온 질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든다. 결국 그에게 패션은 ‘무엇을 입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태도와 어떤 사물들 사이에서 살아가는가’의 문제다. 그는 옷으로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정교한 구조로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증명은 늘 같은 자리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움은 결국 오래 쓰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문의 @jw_anderson
셀린느
서재에서 공원으로, ‘유산의 질서’를 재배치하는 집

“마이클 라이더는 2026년 여름 컬렉션을 위해 파리 근교의 생 클루 국립공원을 런웨이로 선택했고, 도시의 경계를 벗어난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요한 외침을 터뜨렸다.”
셀린느는 조용하지만 강한 브랜드다. 셀린느의 ‘트리옹프’ 모티프 또한 단순히 한 브랜드 로고를 넘어 파리지앵의 역사적 메모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트리옹프는 파리 개선문을 둘러싼 체인 링크에서 영감을 받은 두 개의 ‘C’가 얽힌 형태로, 1970년대 초 창립자인 셀린느 비피아나가 직접 발견한 상징에서 출발한다. 이 모티프는 곧 셀린느 메종의 파리지앵 정체성과 우아함의 은유가 되었고, 이후 다양한 가죽 제품과 액세서리의 중심 장식으로 자리했다. 이 상징은 전임자 에디 슬리먼을 통해 트리옹프 박스와 백 및 벨트 등으로 재확산되었으며, 그 결과 헤리티지와 현대성이 동시에 작동하는 코드로 브랜드가 한 차원 진화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셀린느의 새 수장 마이클 라이더는 이 트리옹프를 공간과 컬렉션 전반에 교차되는 상징적 문맥으로 읽음으로써 조용한 럭셔리를 완성시키고 있다. 트리옹프는 단지 장식이 아니라, 셀린느가 지난 수십 년간 축적해온 시각적 기억을 소환해내는 좌표다. 그것이 공간 곳곳에 배치될 때 컬렉션의 옷들은 단독의 오브제가 아니라, 메종의 역사 속에 놓인 순간으로 재해석됨을 영민한 마이클 라이더가 간파한 것이다.

오벌 형태의 벨트 장식과 레드 계열의 레이어링이 돋보이는 셀린느 2026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
마이클 라이더는 조용한 셀린느를 침묵이 아니라 정리로 해석한다. 과시가 아니라 배열—무엇을 어디에 두는가—의 미학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의 셀린느는 ‘강하게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배치’한다. 그의 출발점(2026 봄 컬렉션)은 파리 비비엔 거리의 본사였고, 그 공간 위에는 거대한 스카프가 지붕처럼 내걸렸다. 트리옹프처럼 두 개의 ‘C’가 얽힌 형태로 앉아 있는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흩날리던 스카프는 마치 거대한 집의 지붕처럼 메종과 사람을 보호하는 안락하고 신선한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했다.

마이클 라이더는 피비 파일로 시절의 러기지 백을 재치 있게 복원했다. 지퍼 장식을 스마일 형태로 디자인했고, 구조적 형태는 플랫하게 전복시킨 버전을 함께 선보이며 자신만의 유머를 구사했다.
흔히 행하는 중성적 박스 공간에서 강한 조명과 사운드로 분위기를 강요하는 일반 파리 패션쇼 런웨이와 달리, 라이더가 창조한 셀린느의 첫 쇼는 그야말로 ‘실외의 감각’을 떠올리게 했다. 주입형 드라마가 아닌 자연광, 공기, 여백 같은 요소로 말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제시하는 룩이 ‘런웨이용 조각’이라기보다 실제로 일상 속에서 입고 걸을 때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옷(코트의 드레이프, 니트의 리듬, 스카프의 미세한 흔들림 등)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들린 듯 지적이고 아름다운 옷들을 나열해냈다. 마치 원래 그 모든 걸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마이클 라이더는 2026년 여름 컬렉션을 위해 파리 근교의 생 클루 국립공원을 런웨이로 선택했고, 도시의 경계를 벗어난 여유롭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고요한 외침을 터뜨렸다(답답한 서재를 벗어나!). 자유롭다고 해서 그냥 흩어지게 두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질서를 유지한 채 더 넓은 삶의 장면(거리, 공기, 움직임)으로 무대를 확장해 ‘밖에서도 유지되는 생활감’으로 셀린느의 새로운 컬렉션을 제시한 것이다. 이 여정은 단지 옷을 보는 것이 아닌, 패션이 놓이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인지하는 경험으로 우리 모두를 이끈다. 결국 서재는 셀린느의 문법이었고, 공원은 그 문법이 숨 쉬는 방식이었다. 문의 c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