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 사태로 패션 업계는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일명 ‘언택트’ 쇼를 선보이고 있다. 화려한 쇼장을 벗어나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 이번 시즌 오트 쿠튀르 컬렉션 6.
Christian Dior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크리스챤 디올을 포함한 파리 쿠튀리에들이 프랑스의 패션 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전개한 순회 전시 ‘테아트르 드 라 모드Th`ea^tre de la Mode’. 여기서 착안한 디올은 오트 쿠튀르 쇼에 흥미로운 여정을 담아냈다. 슈트 케이스를 든 쌍둥이가 숲속에서 여러 캐릭터들을 만나 55cm의 축소판 의상을 선보이는 이야기다. 디자인은 리 밀러, 자클린 랑바 등 5인의 초현실주의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이중 자클린 랑바의 작품 ‘보들레르, 제니 다무르-플람’은 코트 위 프린트로 재탄생했다.
Giambattista Valli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브랜드의 핵심적인 쿠튀르 기법을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 튈을 겹겹이 쌓아 독특한 실루엣을 형성하고 모슬린muslin과 시폰 소재를 휘감아 드레스의 풍성한 형태를 강조하는 식. 여기에 탄탄한 태피터 소재로 제작한 리본 장식을 더해 로맨티시즘을 극대화했다. 18점으로 구성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모델 조앤 스몰스Joan Smalls를 주연으로 한 영상을 통해 공개되었다. 드레스의 화려한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스크린을 2개로 분할, 컬렉션과 대비되는 파리의 삭막한 겨울 풍경을 함께 배치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꽃이 피는 아름다움은 존재했다.”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이번 컬렉션을 매개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Masion Margiela
공포물 같은 프리뷰 영상을 공개해 이목을 끈 메종 마르지엘라. 이번 시즌 ‘아티즈널 Artisanal’ 컬렉션의 핵심 요소는 사람들이품고 있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이다.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는 ‘투명성’이라는 키워드를 구현하고자 열화상 카메라를 활용했으며, 이를 통해 관음적 시선을 표현했다. 의상은 ‘레시클라Recicla’ 제품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존 갈리아노가 고른 빈티지 제품을 업사이클 과정을 거쳐 재탄생시킨 것이다. 본래의 색상을 유지하면서 원형 패널을 활용한 커팅 기법으로 옷이 젖은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Chanel
“르 팔라스Le Palace 영화관에서 나오는 펑크 프린세스를 생각했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비르지니 비아르의 말이다. 오트 쿠튀르 영상 속 모델들은 영국 일렉트로닉 팝 듀오 족스트랩Jockstrap의 노래에 맞춰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부풀린 헤어스타일, 인조 보석과 비즈를 수놓은 트위드 드레스, 시퀸 소재와 깃털 장식 등 컬렉션의 모든 요소는 가상의 ‘펑크 프린세스’를 구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차분한 색조를 기본으로 짙은 핑크 컬러를 조합해 컬렉션에 활기를 더했으며, 흑백과 컬러 버전의 교차, 빠른 화면 전환 등 포토그래퍼 미카엘 얀손Mikael Jansson의 극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한편의 뮤직비디오와 같은 오트 쿠튀르 쇼를 완성했다.
Balmain
“록다운 기간 동안 파리의 아름다움을 갈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도시의 록다운 종료를 기념하기 위해 파리 센강을 횡단하는 크루즈 위에서 오트 쿠튀르 쇼와 뮤지션 이슐트Yseult의 콘서트 그리고 댄스 퍼포먼스를 개최했다. 1946년에 선보인 오렌지빛 튈 드레스부터 1980년대의 글램 룩, 중세 시대 모티프를 반영한 2012 F/W 의상까지. 브랜드의 75년 역사를 함축한 이번 행사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통해 생중계됐으며, 파리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Valentino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Nick Knight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벤트. 바로 발렌티노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물질에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하는 인간의 창조 활동에 주목했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창작활동의 바탕이 되는 하얀 천에서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순백의 드레스로만 채웠다. 닉 나이트의 진가는 여기서 드러난다. 흰색 드레스를 스크린 삼아 의상 표면에 색색의 이미지를 투사한 것. 정교한 쿠튀르 기법과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이색적인 오트 쿠튀르 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