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김보람

1983년생, 수염 많은 안무가, 한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몸의 언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춤추는 춤꾼.
맨몸의 내가 처음 태어날 때 이만큼 다가온 세상이 나를 물끄러미 보며 물었을 것이다.
“너 춤출래?”
갓난쟁이의 꼼지락대는 손가락 하나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안다. 한 생명이 나고 자라고 살기 위해 얼마나 부스럭대고, 퉁기고, 오물오물하고, 나풀거리는지 말이다. 얼마나 많은 몸짓으로 세상을 굴리는지 말이다. 나는 지금 몸짓 하나를 만나러 왔다. 그 몸이 스스로 구술하는 태초의 이야기를 넙죽 받아 채러 왔다.
김보람, 그의 직업은 안무 감독이다. 써놓고 보니 “나무는 식물이다”라는 말처럼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들린다. 그만큼 이제 많은 이가 그를 알아버렸다.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 ‘범 내려온다’로, 콜드플레이의 ‘하이어 파워’ 뮤직비디오로 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춤을 봐버린 것이다. 그런데 내력을 살피니 그건 고도로 계획되고 훈련된 막춤이었다. 김보람 감독은 현대무용, 힙합, 스트리트 댄스, 발레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무용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안무가로 정평이 난 이다.
그에게 카메라 앞에서 ‘몸짓’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금세 이 춤꾼에겐 몸짓보다도 긴 멈춤이 먼저 필요함을 알았다. 이 피가 도는 몸짓이 얼마나 긴 멈춤과 고민을 울림판으로 갖는지 이내 깨달았다.
“나만 해도 춤추려면 계획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살짝 재거든요. 음… 제 결혼식을 네 시간짜리 공연처럼 했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가 나와서 춤추시더라고요. 당신도 정신차려보니 추고 있더래요. 에너지가 몸에서 흘러나와 주체할 수가 없는 거죠. 우리 어머니가 나보다 좀 늦게 춤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소리랑 춤으로 공연도 다녀요. 기억을 떠올려보면 어릴 때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완도 오일장에서 어머니가 가수 현진영이 입고 다니던 후드 티(가슴팍에 X라 쓰인)를 사왔어요. 내가 그걸 입자마자 그냥 현진영 형처럼 추기 시작했어요. 뭐가 되려고 춤춘 건 아니에요. 그냥 기분이 좋아서 췄어요. 좋아서 추는 춤, 그걸 30년 넘게, 지금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연습실에서 추고 있는 것 같아요.”


김보람 감독은 안무를 그림으로 배웠다. 안산 연습실을 오가는 왕복 두 시간 지하철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노트 한 면에 빼곡이 그림으로 채우다 보면 안무가 완성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춤은 소리를 표현하는 그림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진행한 ‘춤추는 강의실’ 동영상을 보면 그 이야기가 쉽게 이해될 것이다.
“진심이라기보다 사실에 가깝습니다만”
완도 소년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서울로 올라왔다. 스트리트 댄스를 추고, 엄정화·이정현·코요태의 잘나가는 백업 댄서로 방송 무대에 섰다. 그러다 춤을 잠시 떠나 다른 일을 해봤다. 그때 알았다. 추고 싶은 춤을 계속 추는 게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시키는 건요, 하고 싶든 말든 할 수 있잖아요. 근데 하고 싶은 건… 진짜 하고 싶어져야 비로소 되더라고요.” 그리고 춤판으로 돌아왔다.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의 백업 댄서까지는 해보고 싶어서” 무작정 미국행을 감행하려는데, 비자가 필요했다. 학생 비자 때문에 들어간 게 서울예술대학 무용과였다. “대학 가서 공부를 처음 해봤다”는 그는 줄곧 성적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녔다.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등등 다 처음 춰보는 거였고, 그래서 재밌었다”는 그. 열심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개의 위인전은 이렇게 시작하지 않는다. “글쎄요, 전생에도 춤꾼이었는지 모르겠네요” 해야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의 시작은 이렇게 사소했다.
“제 이야기에서 진심이 느껴진다고요? 뭐, 진심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깝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약속한 소년 같은 그의 맑은 눈이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만든다.
대학 시절, 그는 김기인 교수를 만났다. ‘스스로 춤’, 그러니까 보여주기 위한 춤이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는 춤을 스승에게 배웠다.
“내가 왜 춤을 추는지, 내 몸이 어떤 움직임을 원하는지, 그걸 어떻게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지 같은 거였어요. 내가 나를 만나는 춤이라고 할까요? 하여튼 좀 정신 수양하는 것 같은 춤이었어요. 밖에서는 방송댄스 같은 화려한 춤을 추고, 안에서는 답 없는 춤으로 나를 씻어낸 거예요.”


"온 지구가 아니라고 해도 Yes!라고 할 수 있는 순간, 그것이 '막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반항이나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특별한 순간을 의미한다. 그런 순간을 만나기 위해 매일 열심히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하루 24시간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발, 물, 술, 문화, 정보 등 다양한 것을 섭취하며 살아나간다. 그러다 보면 그런 순간을 종종 만나곤 한다."
그 ‘스스로 춤’을 통해 그는 또 누구나 몸속에 이미 춤출 수 있는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만 증명할 길이 없을 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안성수 교수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춤을 좀 더 다르게 받아들였다.
“제가 알던 발레와 전혀 다른 거죠. 다리를 높이 올리기보다 왜 그렇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먼저 묻는 발레였어요. 몸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구조를 가르쳐주셨죠.”
안무가의 길도 안성수 교수를 통해 열렸다. 사실 안무가가 될 계획은 애초에 없었다. 대학 무용제에 낼 작품을 만들어보라는 제안에 무작정 친구들과 연습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순간, 관점이 바뀌었다.
“전에는 연습실에 가면 ‘내가 뭘 출까’ 생각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 사람들이 무대에서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작업이 CJ 영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그는 어느새 안무가가 되었다. <공존> <인간의 리듬> <바디 콘서트> <언더더쇼> <홀라당!> <피버> <벨트>… 멈추지 않는 신발을 신은 것처럼 공연하고, 연습하고, 또 공연했다. 그가 만든 공연은 여러 상도 받았다.
“그냥 재미있게 했어요. 재미없어질 때도 최선을 다했어요. 재미가 없어지는 그런 순간이 성장의 시간이라고 느끼면서 말이죠. 더 좋아질 기회가 찾아왔다면서. 뭐, 재미없다고 안 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두 갈래 길이 나오면 망설이다가 제 온 길로 되돌아간다는 ‘유예猶豫’라는 짐승처럼 늘 망설이다 마는 나 같은 의지박약에겐 고매한 철학자보다 그의 말이 더 두렵다. 진심을 뛰어넘는 사실이니까.

‘21세기 도깨비’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틀에서 벗어난 안무로 받아들여지지만, 뜻밖에도 김보람 감독의 안무 철학은 ‘춤추지 않는 춤’이다. 이를 위해 사전에 철저하게 동작과 안무를 준비한다.
“처음부터 어려운 길로 가버리면요, 의외로 쉽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2021년 ‘범 내려온다’로 빵! 터졌다. 겅중겅중 도인 체조하듯 튀어나온 사슴 같다가, 박귀심 여사의 관광버스 막춤 같다가, 남사당패의 한바탕 춤사위 같다가,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제의 춤 같다가…. 틀에 가둘 수 없는 춤이었다. 대중은 그 춤을 단번에 알아봤다. 설명하지 못했지만, 반응했다. 몸은 언제나 말보다 빠르므로.
“근데… 되게 애매모호해졌어요. 관심을 받는다는 게 감사하지만, 그리 달갑지 않았어요. 스타가 되려고 춤춘 건 아니라서요.”
그는 오히려 연습실로 들어갔다. 원래 하던 춤으로 돌아갔다. 그 선택의 한가운데 <바디 콘서트>가 있다. 2010년에 만든 이 공연을 그는 15년째 추고 있다. 언어가 없는 한 시간의 공연. 춤만으로 관객을 붙잡는 일은 어려운 도전이다. 그런데도 그는 2025년, 예술의전당에서 이 작품을 15회 연속으로 올렸다. 1년에 몇천 개의 작품이 올라간다는 한국무용계에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였다.
“무용으로 15회 공연은요, 휴대폰을 하루에 하나씩 새로 내놓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논리적으로 보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도전이죠. 게다가 아무런 후원이나 지원금 없이 자체적으로 올렸으니까요. 본전을 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실험이었어요. 근데요, 불가능해 보이는 건 해보고 싶어지잖아요. 관객도 설명 하나 없이 춤을 보는데, 어? 이걸 내가 재미있게 보네? 뭔가 초능력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대요. 우주의 언어를 처음 들었는데, 내가 막 이해가 돼, 재미있어, 이런 특별한 경험요.”
설명하지 않는 춤,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는 공연. 그 방식은 무대 위에서만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일하는 방식으로, 집단을 꾸리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만든 이름이 ‘앰비규어스Ambiguous’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는 규칙 없는 집단에 가깝다. 이름부터 애매모호한 이 집단은 출근을 강요하지도, 소속을 단단히 묶지도 않는다. 그저 앰비규어스의 일은 취미처럼 생각하고, 각자의 길을 더 많이 고민하고, 모이는 건 공연이 있을 때! 이 느슨한 약속이 앰비규어스를 10년 넘게 이끌었다.
“저도 알아요. 제도 밖에서 오래 버티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지. 실제로 우리는 늘 폭풍 속을 헤쳐나가는 기분이에요. 되게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한 마리 외로운 늑대 같은 단체거든요. 길이 없고, 우리가 다 길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면서 생계도 유지해야 하고, 시스템이 없으니 열 걸음이면 갈 길을 1백 걸음으로 가고, 그게 또 바보처럼 무식해 보이고. 그렇지만 쉬운 길을 찾는 게 저는 오히려 더 어렵더라고요. 처음부터 어려운 길로 가버리면 의외로 쉽게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논리력으로 무장한 철학서보다 그의 짧고 굵은 말 몇 마디가 더 와닿는 건 사실이다. 이런 당당함은 스스로 한계를 깨는 고통 속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사람만이 지니는 특질이다.

<피버>. 이 공연 의상이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 ‘범 내려온다’ 속 의상으로 쓰였다. 사진 김근우.

<인간의 리듬>. 사진 옥상훈.

<더 벨트>. 2024년 런던 코로넷 극장 초연 당시 영국 평단으로부터 별 다섯 개 만점을 받은 공연이다.
나는 왜 춤추는가?
”내가 춤을 추는 이유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추는 것.” 얄미울 정도로 압축적으로,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세상에서 그는 이렇게 뒤로 뒤로 가는 질문을 붙들고 있다.
“강남 어느 한구석의 연습실은 거꾸로 가는 노력을 미친 듯이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이 안에서 발견하고 있어요. 원래 춤이 원시 언어에 가까워요. 앰비규어스가 추는 춤도 그래요. 우리는 춤을 만들 때 우주인에게 보여주려고 만들어요. 언어가 없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제3의 언어로요. 그렇다면 제가 춤을 추는 이유는 뭐냐고요? 음… 살아 있으니까 추는 것 같아요. 살아 있으니까. 따지고 보면 살아 있는 게 다 춤이잖아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이미 춤추고 있으니까. 소파에 누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잔잔한 자세로 추는 거고, 힘들게 뛰면 그건 또 격렬한 춤인 거고. 저는 그런 것을 증명하고 설득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고요. <벨트>라는 공연에서 모두 춤추게 되는 마지막 장면이 있어요. 정말 4백~5백 명 되는 관객이, ‘춤 잘 못 추는데’ 하던 관객이 저를 따라서 춤을 춰요. 뭐, 춤이란 게 그런 거죠.” 집 안 어딘가에 붙여놓고 삶이 권태로워질 때마다 곱씹어보고 싶은, 엉덩이 살랑살랑 흔들며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이상하고, 아름답고, 애매모호한 도깨비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언젠가 지구인이 화성으로 이주할 텐데요,아마도 인간보다 로봇들이 먼저 가겠죠? 그때 이 로봇들이 도착해서 바로 일하기보다 인류를 대변한 하나의 춤, 퍼포먼스를 먼저 시작하는 거죠. 안무 자체는 다 프로그래밍하면 되는 거라서 준비만 딱 해놓으면 돼요. 그래 봤자 한두 시간일 테지만, 전 지구인이 그 공연을 TV로 시청하는 거예요. 어디선가 외계 생명체가 본다면 다 이해할걸요. 그거야말로 몸으로 소통하는 가장 확실한 미래 아닐까요? 거짓말이나 쓸데없는 말도 필요 없고, 해석도 필요 없어요. 이런 상상의 시작은 ‘우리 인류가 계속 진화해왔는데, 산업혁명 이후로는 몸이 진화했을까’라는 질문이었어요. 인류가 몸을 계속 유지하려면 몸의 언어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는 나름의 생각이 있어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게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도 크기 때문에 그냥 계속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어요.”
마지막 컷 촬영을 위해 그에게 다시 ‘몸짓’을 요구했다. 그가 슬렁슬렁, 휫휫, 착착 몸을 흔든다. 그가 춤출 때 나는 짐승 한 마리를 떠올렸다. 열대우림의 나무 위에서 태어나 나무와 나무 사이를 휙휙 옮겨 다니다가, 긴팔을 뽐내며 열매를 따고, 높은 곳에서 똥을 싸며 아득한 씨앗을 뿌리고, 바람과 빗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잠잠하게 우주의 적막에 주파수를 맞추는 긴팔원숭이. 우주 속 나의 좌표를 몸으로 발신하는 원숭이. 그 몸짓은 분명 우주인에게도 가닿을 것이다.
글 최혜경 | 사진 이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