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작당 기간에는 오픈 하우스를 비롯해 지역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클래스와 전시 연계 프로그램이 열린다. 부산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졌다. 행복작당 리빙 스폿뿐 아니라 다양한 장소가 건축, 공예, 식문화,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연결되며 도시를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래된 명소부터 새롭게 주목받는 공간까지, 부산을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창이 되었다.
응축된 시간의 여운 - 비비비당 다도 체험
한준현 매니저가 선차 다법을 시연했다.
비비비당이 자리한 청사포는 어촌과 철도 및 해안선이 공존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와 근대 부산의 기억이 겹쳐 있는 동네다. 그곳의 한옥이 조용한 찻집으로 다시 문을 열면서, 과거의 결이 현재의 리듬과 어우러지고 있다. 옻칠한 목재 외관과 드러낸 서까래, 한지로 마감한 실내는 전통 한옥의 분위기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한다. 창 너머로 보이는 청사포 바다까지 운치를 더한다. 행복작당 부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원소윤 대표의 잎차 다법과 말차 다법으로 나누어 다도 체험을 진행했다. 그는 “차를 우리는 법에만 그치지 않고, 그릇을 고르고 놓는 방식, 공간의 여백을 인식하는 태도, 몸의 자세까지 모두 다도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을 위한 특별한 체험은 향을 나누는 시간으로 시작해 찻잔을 예열하고 퇴수하는 절차를 거쳐 감잎차나 국화차를 우리는 순서로 이어졌다. 인상 깊던 순간은 7백 년이 넘은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실제로 사용한 것. 마루 위에서 손에 쥔 유물은 시간의 밀도를 품었다. 문의 0507-1326-0706
커피와 아이콘 체어가 함께할 때 - 모모스커피 디자인 토크
전은경 디렉터가 모모스커피, 엔포유NForU와 함께 까시나 가구의 디자이너 이야기를 풀었다.
부산 온천장에 자리한 모모스커피는 단순한 커피 식음 공간을 넘어, 감각과 철학이 축적된 하나의 ‘장소’로 기능한다. 전주연 대표와 이현기 대표가 공동으로 이끄는 이곳은 ‘오리지널 피스만 둔다’는 명확한 원칙 아래,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 하나하나에 높은 밀도의 기준을 적용해왔다. 커피, 가구, 채광, 동선까지 어느 것 하나 우연히 배치한 것이 없으며, 그 질서 안에서 방문자는 일상적 감각을 새롭게 조율하게 된다. 이번 행복작당 부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 공간에서 열린 체험은 전은경 디렉터의 디자인 토크와 도슨트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주제는 ‘아이콘 체어’이며, 그 시작은 의자의 역사와 디자인 윤리에 대한 강연이었다. 르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인 LC 시리즈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배제된 공동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과 피에르 잔느레의 이름이 어떻게 복원되었는지를 짚는 과정은 저작권을 넘어 디자인 감수성과 시대 윤리를 다시 묻는 시간이었다. 이어서 모모스커피 온천장 공간 곳곳에 놓인 다양한 의자를 소개했다.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의 위시본 체어, 핀란드의 도무스 체어, 장 프루베의 스탠다드 체어, 가리모쿠 브랜드의 체어 등. 각각의 디자인은 재료, 구조, 앉는 자세, 생산방식에 따라 다르게 구현되었고, 기능을 넘어 앉는 사람의 태도를 규정짓는 철학적 장치로 읽혔다. 모모스커피 온천장의 의자에 앉는 일은 곧 감각을 다시 배우는 경험이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는 일, 하나의 의자에 앉는 일은 결국 우리의 일상적 삶을 어떤 미감과 태도로 채울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문의 051-512-7036
나무의 숨결을 따라가는 공예 - 김민욱 작가 오픈 스튜디오
김민욱 작가가 작업실에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시범으로 보여주었다.
부산 출신 목공예가 김민욱(키미누)은 옹이, 갈라짐, 색 번짐 등 자연 재료의 결함을 그대로 살리는 작업 방식으로 시간의 흔적을 표현한다. 2019년 ‘렉서스 어워드’ 서울 수상에 이어, 2022년 ‘LOEWE 크래프트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며 주목받는 작가다. 부산 연지동의 조용한 골목. 그동안 외부에 자주 공개하지 않던 김민욱 목공예가의 작업실이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특별히 문을 열었다. 1층은 쇼룸, 지하는 작업실로 구성한 이 공간은 나무의 호흡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작업실에서 나무가 하나의 그릇으로 빚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공예의 본질에 다가가는 여정이 이어졌다. 벽면에는 일본산 농나무와 오랜 시간 건조한 다양한 원목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현장에서는 밴드소와 선반 기계를 활용한 나무 그릇 깎기 시연이 진행되었다. 칼날이 나무를 따라가며 만들어내는 진동, 흩날리는 톱밥, 퍼져나가는 장뇌 향까지 모든 감각이 공예의 일부가 되었다. 또 완성된 작가의 목공예 작품을 직접 사용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살아 있는 나뭇결을 품은 그릇을 손에 쥐고 말차를 맛보는 순간, 재료와 시간, 사용과 감상의 흐름이 하나로 이어 졌다.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장인의 손과 나무의 시간이 함께 깃든 그릇이었다. 문의 @qi_minu
‘슬로 디스트릭트’ 골목 산책 - PDM파트너스 오픈 토크
PDM파트너스에서 진행된 고성호 건축가의 오픈 토크. 건축사사무소를 비롯해 망미동 일대를 함께 거닐었다.
부산 망미동에서 고성호 건축가는 20년 넘게 ‘슬로 디스트릭트Slow District’란 이름으로 속도와 상업성 중심의 개발 흐름에 맞서왔다. 고층 대신 저층 구조를 통해 골목, 자연, 시선을 공유하며 도시의 감각을 보존하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이는 개별 건물을 넘어서 시간이 지나도 살아남는 도시 구조를 지향하는 느린 건축의 실험이다. “이 땅은 법적으로 15층까지 건축이 가능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어버리면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강과 산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강과 산을 모두가 공유하는 방향으로 개발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토크를 비롯해 건축가와 함께 PDM파트너스 건물 곳곳을 탐방하고, 망미동 골목을 직접 걸으며 그가 설계한 공간을 하나씩 체험했다. 옥상에서는 식물을 심어 열섬 현상을 완화하고 방수 수명을 연장하려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고, 입구에는 지역성과 안녕을 상징하는 팽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성호 건축가의 건축 실험 중 하나인 ‘에올리브’ 레스토랑은 폐유리병과 우유병, 오래된 목재 등을 재료로 지었으며, 15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레스토랑은 나중에 철거하더라도 남는 것이 없을 정도로 폐목재·폐자재·재생 벽돌·철 등 전부 재생 자재를 사용해 지은, 말 그대로 순환을 전제로 한 실험적 공간입니다.” 건축가는 공간마다 지역성과의 관계, 생태적 고려, 기억을 담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며 각 공간의 맥락을 풀어냈다. 속도보다 밀도, 개발보다 공존을 이룬 망미동의 풍경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의 051-750-2100
흙을 따라 흐르는 시간 - 오초량 전시 <흙의 시간>
<흙의 시간> 전시 전경.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에서 작업하는 은성민 작가의 작품이 놓여 있다.
부산역 인근 초량동 골목 안에 자리한 ‘오초량’. 19세기 개항 이후 외국 선박이 드나들던 국제 무역항이자 일본 조계지이던 초량동은 다양한 문화가 중첩되며 복합적인 장소성을 형성해왔다. 이곳에 남은 오래된 일본식 가옥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 오초량이다. 행복작당 부산 기간 중 예약제로 열린 도예 전시 <흙의 시간 The Time of Soil>에는 김혜정, 은성민, 조아라, 야마시타 키미토시, 이은정 작가 다섯 명이 참여했다. 프랑스 피레네산맥, 태국 치앙다오, 일본 히로시마, 제주 조천, 양산 통도사, 서울 구기동 등 각기 다른 지역에서 채집한 흙은 도자기로 빚어졌고, 그 결과물에는 장소와 시간이 켜켜이 축적된 밀도가 담겼다. ‘흙은 땅의 질서를 담은 암호’라는 개념은 오초량의 다층적 역사성과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관람객은 입장과 동시에 다기·차·다과·소책자가 담긴 바구니를 건네받았고, 마당과 이어진 마루에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따뜻한 찻잔을 감싸 쥔 손끝에 닿은 흙의 감촉, 잔잔히 흐르는 시간의 결이 겹쳐지며, 전시는 시각적 감상에 머물지 않고 오감을 자극하는 체험으로 확장되었다. 공예 작품, 창밖 풍경, 오래된 건축물의 시간성이 포개지며 고요한 감각의 층위를 이뤘다. 작품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흙’이라는 재료 자체였고, 그 물성을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문의 051-463-5652
드로잉에 담긴 예술적 사유 - 조현화랑 김종학 화백 전시 아트 토크
김종학 화백의 에서 선보인 가로 18m에 이르는 대형 작품 ‘풍경’ 연작.
달맞이길 끝자락, 바다와 숲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조현화랑에서 김종학 화백의 개인전 가 행복작당 부산 관람객을 위한 선공개 형식으로 열렸다. 전시 개막에 앞서 열린 아트 토크에는 정성갑 갤러리클립 대표와 정선경 큐레이터가 참여해 작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되짚었다. 관람객은 작가의 말보다 그의 그림을 통해 시간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했다. 토크는 김종학 화백의 작업 철학과 표현 방식, 전시 기획 배경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로 채워졌다. 정선경 큐레이터는 김종학 화백의 작품은 겉보기엔 구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추상 언어로 자연과 생명의 흐름을 담아낸다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추상의 본질을 체득한 뒤 개인적 상실을 딛고 자연으로 돌아가 작업을 재개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한 과정도 공유했다. 전시 공간은 설악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했고, 조각보와 목가구 등 전통 오브제에서 영감을 받은 색과 균형감도 소개했다. 삶의 말미에 다다른 지금도 “나는 나로 살아야 한다”는 그의 태도가 작품에 투영되었음을 되새겼다. “김종학 선생님은 ‘나는 나로 살아야 돼서 계속 독립적인 그림을 그리는 게 맞다’고 하셨어요. 옆 사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칼 하나 들고 밀림을 헤치듯이 길을 만들어가는 거죠.”(정선경 큐레이터) 1백여 점의 작품과 함께 구성한 전시는 회화를 자연과 기운을 담은 시간의 기록으로 제시했다. “그림은 기운이 운동해야 한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도 기운이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아니다.” 토크에서 남긴 이 말을 고스란히 체감했다. 문의 051-747-8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