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맨갤러리M 2층에 있는 정순목 대표의 수집품. 문형태, 베이스먼트, 강준석 등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잡스: 에디터>의 부제목이다. 에디터란 직업을 구와 절로 표현한 이 문장은 갤러리를 설명하는 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작품 멋지다’는 무형의 생각이 ‘더 많은 사람이 작품과 만났으면 좋겠다’는 구체적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란 점에서 말이다. 미들맨갤러리도 비슷한 이유로 생겨났다. ‘내게 좋은 게 당신에게도 좋을 수 있다’는 믿음과 좋은 작품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호혜성이 결합했다.
미들맨갤러리 정순목 대표.
미들맨갤러리 정순목 대표는 건축을 전공했지만, 어릴 적 부모님의 영향으로 예술과 가까이 지냈다. “놀이동산보다 미술관이나 작가의 작업실을 더 많이 다녔어요. 부모님께서 작품을 실제로 소장하고 소유하기도 하셨고요. 어깨너머로 보며 작품이 관람의 대상인 동시에 소장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이어졌어요.” 20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마음에 드는 작가의 작품이 그렇게 하나둘 쌓여가기 시작했다. 집 안의 여백을 작품으로 하나둘 채워갈수록 안목의 두께가 두꺼워졌다.
미들맨 갤러리M의 외관. 좁고 긴 형태에 비정형 창을 낸 것이 특징이다.
컬렉터의 삶을 살다가 갤러리 대표가 된 건 그를 포함한 여섯 명의 크루가 힘을 모아 만든 복합 문화 공간 지비디gbd의 탄생 때문이다. “2017년 해운대의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공간을 만들었는데요, 주변에서 저보고 갤러리 운영을 담당해보라고 추천해줬어요. 오랜 시간 작품을 감상하고 수집해온 저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지요.” 사람과 동물, 오름 등 제주 자연에 착안해 작업하는 강준석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들맨갤러리S의 출발을 알렸다. 강준석 작가의 토끼 조각은 정순목 대표가 가장 처음 소장한 작품이기도 하다.
미들맨갤러리M은 좁은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정중앙에 가벽을 세웠다. 이것이 독특한 동선과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
상자 속 상자처럼 자리한 공간은 의외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갤러리 규모가 크면 작가는 ‘여기를 어떻게 다 채우지?’라는 막막함을 느끼는데요, 이곳은 공간이 작으니 ‘어? 이 정도면 나도 충분히 해볼만한데?’라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카페가 함께 있어 손님 입장에서도 작품에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고요.” 여기에 정순목 대표의 굳건한 소신이 더해졌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의 취향과 만족을 여과해야 타인에게도 권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입장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수집하며 인연을 맺은 작가를 비롯해 자신의 취향에 와닿는 작가를 만나면 소개했다. 독창적이면서도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작가의 기획전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던 배경이다.
미들맨갤러리M 2층에 있는 정순목 대표의 수집품. 김선영, 콰야, 이미주 등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가득하다. 진열장 맨 아래에 있는 컵은 미들맨 전시 굿즈.
순탄하게 운영하던 취향 집합소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느 순간 규모가 큰 작품을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요, 공간의 벽면도 크지 않고 천장 높이도 낮아 작품을 설치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영화 속 서사의 주인공처럼 미들맨갤러리에도 도약의 시간이 찾아온 것. 2023년 1월, 지비디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위치에 폭은 좁지만 긴 형태의 건물을 쌓아 올렸다. 정순목 대표의 친구이자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카이건축과 함께 미들맨갤러리M을 만들었다. 스몰 사이즈를 입던 갤러리가 미들 사이즈로 옷을 갈아입었다.
미들맨갤러리S가 자리한 복합 문화 공간 지비디 모습.
몸집은 커졌지만 갤러리를 미들맨갤러리답게 하는 것, 내면만큼은 변함 없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뭘 이야기하는지 잘 들리는 작업, 어렵고 힘든 작품보다 이해하기 쉽고 아름다운 작품과 함께하려고 노력해요. 또 작품 속 사람이 등장하는 걸 좋아하고요. 인물화에도 시선이 있는 데요, 관람객이 작품을 향해 보내는 시선뿐 아니라 작품이 관객을 응시하는 관계성을 좋아해요.” 규모가 너무 크면 공간과 작품이 인간을 위압하곤 한다. 그러나 미들맨갤러리는 그 반대다. 관람객과 작품이 서로를 바라보기에 적절한 구조를 갖췄다. “갤러리가 작품과 관객 사이에 머무르며 관계를 연결하고 조율하는 성질을 지녔잖아요. 그래서 미들맨이라는 단어를 이름으로 정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M이 두 개나 들어 있더라고요. 앞으로도 미들맨갤러리다운 전시를 개최해서 취향이 잘 맞는 다양한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해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미들맨갤러리. 정순목 대표는 매월 이곳을 통해 작가와 관객 사이 가교 역할에 전념한다. 미들맨이라는 이름처럼 말이다.
미들맨갤러리M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로 35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 매주 일 · 월 요일, 공휴일 휴무
문의 @middleman_gallery
미들맨갤러리S
주소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로14번길 54
운영 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
문의 @middleman_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