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의 핵심 이벤트부터 이탈리아 디자인 아이덴티티까지, 살로네 델 모빌레를 이끄는 수장이자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뽀로의 마케팅 총괄 마리아 포로에게 듣는 리빙 디자인 이야기.
마리아 포로 1983년 이탈리아 코모에서 태어나 자랐고,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연극과 대형 이벤트 분야에서 디자이너, 큐레이터, 코디네이터로 활동해왔으며, 2014년부터 뽀로에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살로네 델 모빌레 회장을 맡아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리빙 행사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살로네 델 모빌레 회장, 하이엔드 가구 브랜드 뽀로의 마케팅 겸 커뮤니케이션 총괄, 리빙업계의 떠오르는 인물… 마리아 포로를 소개하는 여러 수식어다. 대학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하고,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의 프로덕션을 맡아 커리어를 쌓은 그는 2014년 가족 기업인 뽀로에서 일을 시작하며 리빙업계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2021년 살로네 델 모빌레 역대 최연소이자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선출되며 코로나19로 위기에 봉착한 전시회를 안전하게 복귀시킬 임무를 맡는다. 2021 수페르살로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진화를 준비했고, 올해 살로네 델 모빌레를 성황리에 마치며 전 세계 최대 규모 리빙 전시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지난 3월, 이탈리아 디자인 데이를 맞아 홍보 대사로 한국을 찾은 그를 행사장에서, 브랜드의 한국 시장을 담당하는 유앤어스(@youandus.official)의 뽀로 쇼룸에서 또 한 번 만났다.
다양한 백그라운드의 디자인을 경험한 것이 인상적이다. 당신이 느낀 리빙 디자인의 매력은?
무대 디자인을 전공한 것은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자인과 건축, 음악, 문학까지. 리빙으로 영역을 바꾼 것은 뽀로의 일원이었던 배경의 영향이 컸지만, 리빙 디자인이 매력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대 디자인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일이다. 어찌 보면 꿈의 영역인데, 리빙은 그와 정반대다. 특히 가구는 매일 사람과 스킨십하며 현실과 아주 밀접하게 관계 맺는다. 그 점이 가장 큰 차이이자 매력이다.
포르마판타스마가 설계한 아레나에서는 프랑시스 케레, 존 포슨 등 건축과 리빙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토크를 펼쳤다.
국제 욕실 전시회에 설치한 파빌리온 ‘언더 더 서페이스Under The Surface’.
살로네 델 모빌레는 리빙 디자인을 알리는 여러 형식 중 전시를 택했다. 전시라는 형식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매년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두렵지만 굉장히 자유로운 일이다. 두 번째 매력은 다양한 브랜드가 모인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과 브랜드가 모이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서로 진화하고 성장한다. 작은 규모의 업체가 전시회에서 경쟁을 통해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알려질 기회를 얻는 것은 민주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다른 박람회와 차별화되는 살로네 델 모빌레만의 특징을 꼽는다면?
살로네 델 모빌레는 브랜드가 신제품을 가장 처음으로 공개하는 장소다. 다른 전시에 가면 이미 여기에서 소개한 제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는 푸오리살로네의 존재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살로네 델 모빌레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시내에 불이 켜지고 이벤트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한 전시 ‘생각의 방(A Thinking Room)’. 마리아 포로가 가장 기대하는 이벤트로 꼽기도 했다.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인 살로네사텔리테는 올해 25주년을 맞았다.
회장으로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60년이 넘는 긴 역사를 지닌 유산을 잘 유지하는 동시에 진화하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이다. 또 하나는 이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가구와 디자인 산업의 중심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향유할 더 많은 방문자를 만들고. 그 과정이 쳇바퀴처럼 이어진다.(웃음) 지속적으로 이어지려면 그만큼의 책임감 또한 가져야 한다. ISO 인증을 취득한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우리가 속한 사회와 깊이 관계 맺는 디자인을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당신 또한 디자인이 단순히 ‘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듯하다.
이탈리아 가구 산업은 자연 소재를 재료로 하고, 만드는 사람을 존중하며,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태생적으로 성격 자체에 지속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 살로네 델 모빌레에서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는 전시가 환경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번 열고 나면 정말 많은 폐기물이 발생한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 의무 대상이 아님에도 ISO 20121(지속 가능 이벤트 경영 시스템) 인증을 받은 것은 이 때문이다. 이제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전시를 기획할 때마다 높은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또 어떤 것이 있나?
지속 가능성은 물리적 환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시 기간 동안 열리는 살로네사텔리테SaloneSatellite는 신진 디자이너에게만 섹션을 할애해 프로젝트를 프레젠테이션한다. 지난 25년간 이 자리를 통해 1만 명 넘는 전 세계 디자이너를 발굴했고, 그중 다수가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이 산업의 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트리엔날레 밀라노에서는 지금까지 살로네사텔리테의 기록을 돌아보는 특별전 <우니베르소 사텔리테Universo Satellite>가 함께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수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올해 전시는 어떤 목표를 갖고 준비했나?
효율과 접근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다. 사람에게 집중하고 경험을 향상시키며, 효율성을 높인다는 세 가지 목표 아래 박람회의 포맷을 진화시켰다.
구체적으로 도입한 방식이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평면 자체를 관객 위주로 바꾼 것이다. 전시장을 하나의 도시를 기획하듯 디자인했다. 보통 전시장은 그리드 구조다. 로마 시대에 군사 기지를 세운 방식에서 기인한 것인데, 효율적이지만 지루하다. 우리는 복도를 줄여 광장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위한 장소로 기획했다. 지난해 에우로루체에서 시도한 결과, 관람객이 걷는 시간은 10% 줄었고, 관람한 것을 기억하는 비율은 무려 40% 증가했다. 올해는 이를 전시 전체에 적용했다. 일례로 에우로쿠치나 복도는 10곳에서 4곳으로 줄었다.
이번 살로네 델 모빌레의 주제는 ‘디자인이 진화하는 곳(Where Design Evolves)’이다. 어떤 메시지를 담아 정했나?
전시 자체가 어떤 정답을 주기보다는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 자체가 이벤트가 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려 했다. 일례로 국제 욕실 전시회에 설치한 파빌리온은 바다 아래로 들어가 물을 바로 옆에서 경험하는 듯한 느낌으로 디자인해 물이라는 존재를 감각하고 생각하게 한다. 에우로쿠치나에서는 매일 푸드 디자이너, 아티스트, 매거진이 협업해 앞으로 요리의 양식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해 각자의 답을 보여줬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참석자에게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찾으며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는데, 소회가 궁금하다.
전시 성과는 코로나19 이전의 수치로 완전히 돌아왔다. 예측할 수 없었고 당연한 것도 아니었다. 2021년 수페르살로네 이후 4년 동안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다. 그 결과는 우리의 방향이 옳았음을 증명했고,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더욱 나아갈 예정이다.
지난 3월 오픈한 뽀로 유앤어스 학동역 쇼룸(강남구 학동로 226, 02-547-8009).
뽀로 공장에서는 자동화 생산과 장인의 가공 공정을 아우르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뽀로 또한 당신의 주요 커리어 중 하나다. 올해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을 알렸는데, 어떤 계기로 론칭하게 됐나?
미니멀한 동시에 순수한 한국 건축, 한옥의 짜 맞춤 디테일, 소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뽀로 또한 심플하면서도 정교한 가구를 선보이기에 접점이 있다. 그리고 유앤어스를 만난 것이 큰 계기가 됐다. 우리는 시장성과 미적 기준만큼이나 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유앤어스는 건축적 성격이 강한 뽀로의 가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완벽한 파트너였다.
한국의 소비자에게 뽀로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 예정인가?
집이라는 공간은 대중에게 공개하는 무대가 될 수도, 사적인 순간을 품는 둥지가 될 수도 있다. 그 상반된 모습을 모두 만들 수 있는 가구를 보여주려 한다.
친환경 경영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2000년부터 조명을 쓰지 않고 자연광 아래에서 일하고 있다. 자연광 아래에서 소재를 살펴봐야 색감을 완벽하게 확인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 목재도 단순히 친환경적으로 생산한 것을 사용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겨울에는 남은 폐기물을 난방 연료로 사용한다. 지붕의 태양광 패널에서 얻은 에너지로 겨울에는 완벽한 자가 공급이 가능하다. 교도소의 재소자에게 쇼룸 워드로브에 거는 드레스 샘플 제작을 맡기거나 지역의 기술학교에서 뽀로 멤버들이 가르치는 등 지역사회에서 지속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 중인 일을 들려준다면.
너무 많은 일이 있지만, 일단 내년에 뽀로가 1백 주년을 맞이한다는 것.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내년이면 1백1세의 젊은이가 된 뽀로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