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타의 전 CEO 악셀 브루흐호이저와 고양이 카를헨 5세는 숲속 마녀의 집에 산다. 건축가 앨리슨&피터 스미스슨 부부가 이 둘을 위해 25년 동안 리모델링한 집, 헥센하우스다.
유리 바닥 위에 세운 마녀의 빗자루 방, 헥센베센라움의 스케치.
스미스슨 부부가 리모델링을 시작하고 첫 번째로 고친 헥센하우스 현관 포치.
텍타에는 바우하우스만큼이나 브랜드를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가 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에 꼬리를 말아 올린 모습으로 로고와 제품 곳곳에 등장하는 그는 바로 악셀 브루흐호이저와 함께 사는 수컷 고양이 카를헨이다.
1920~1930년대 바우하우스의 오리지널 디자인 제품을 만드는 독일의 가구 브랜드 텍타Tecta. 텍타는 1956년 건축가 한스 쾨네케Hans Könecke가 설립한 가구 회사를 1972년 악셀 브루흐호이저Axel Bruchhäuser와 그의 아버지가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악셀은 슈테판 베베르카Stefan Wewerka, 앨리슨&피터 스미스슨Alison and Peter Smithson 부부 등 당대 모더니즘을 대표하던 여러 건축가와 함께 바우하우스 디자인을 계승·실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였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바우하우스의 정수라 평가받는다. 그리고 텍타에는 바우하우스만큼이나 브랜드를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가 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에 꼬리를 말아 올린 모습으로 로고와 제품, 쇼룸까지 곳곳에 등장하는 그는 바로 악셀과 함께 사는 수컷 고양이 카를헨Karlchen이다. “텍타가 이룬 모든 성공의 배후에는 그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진정한 보스예요.” 건축가 앨리슨 스미스슨이 악셀에게 쓴 편지 속 문장처럼 고양이 카를헨은 텍타의 역사를 관통하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그와 그의 집사 악셀이 사는 헥센하우스의 탄생에도 지대한 기여를 했다.
새로 지은 건물 네 동은 목재 통로나 돌다리를 통해 헥센하우스와 연결된다.
1984년 독일에 사는 고양이 카를헨 런던에 사는 고양이에게 보낸 편지이자 리모델링 의뢰서. 흐릿한 고양이 발도장이 재밌다.
헥센하우스의 시작은 1946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한 군인은 베저강이 흐르는 도시 헤센의 작은 마을 숲속에 은퇴 이후 여생을 보낼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당시 독일에는 자재도, 집을 지을 사람도 없었기에 그는 강가의 돌과 나무로 손수 집을 지었다. 돌로 바닥을 만들고 목재로 벽과 지붕을 세워 완성한 집은 <헨젤과 그레텔> 속 마녀의 집을 연상시키는 모습에 헥센하우스라 불렸다. 어느 날 악셀은 동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이 집을 발견하고 단번에 매료되었다. 그는 당시 거주가 불가능했음에도 이 집을 구입했고, 이후 스미스슨 부부에게 리모델링을 의뢰했다.
“제 집사 악셀에게 이 집에 전망대 두 개를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는 나와 슈테판 베베르카 씨를 위해, 다른 하나는 가드닝 도구와 새를 위한 것입니다.” 1984년 5월, 독일에 사는 고양이 카를헨이 런던에 사는 또 다른 고양이에게 보낸 이 편지가 리모델링 의뢰서이자 헥센하우스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스미스슨 부부 역시 그들의 고양이 스너프가 발 도장을 찍은 편지를 보내 프로젝트를 승낙했다. 이후 기나긴 협업 끝에 헥센하우스는 사람과 고양이를 위한 집이자 현대건축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스미스슨 부부는 1950년대 신브루털리즘의 개념을 처음 제시했고, 후기에는 집을 휴식하는 피난처로 정의하며 인간 중심의 모더니즘을 펼친 건축가다. “헥센하우스는 인간과 동식물, 빛과 공기, 물과의 조화를 목표로 합니다. 스미스슨 부부는 이곳의 점유자인 사람과 고양이가 자연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전제로 헥센하우스에서의 생활을 즐기도록 했어요.”
고양이 카를헨 5세는 2년 전부터 헥센하우스에 살고 있다.
헥센하우스 전경. 유리로 마감한 부분은 모두 스미스슨 부부가 고친 결과물이다.
사방에 유리 벽을 세워 숲을 향해 완전히 개방된 랜턴 파빌리언. 2001년 앨리슨이 설계했다.
1984년 시작한 리모델링은 1993년 앨리슨이 사망한 후에도 이어져 2003년 마무리되었고,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몇 차례 더 진행되었다. “그들은 항상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으로 마쳤어요. 그러고 나서 첫 스케치와 도면이 나오기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죠. 그렇게 서른 개가 넘는 요구를 수용하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현관의 포치를 시작으로 유리 바닥 위에 세운 작은 오두막, 사방이 유리 벽으로 개방된 랜턴 파빌리언, 선 플랫폼 등 모든 장소는 그들의 철학을 담아 기존 건축물과 숲의 풍경을 존중하며 세워졌다. 목재와 석재를 재료로 해 숲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고, 대부분 유리로 마감해 바깥을 향해 적극적으로 열려 있다. 또한 각각의 공간은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듯 목재 통로와 길, 돌계단으로 서로 연결된다. 그 결과 하나의 블록에 불과하던 집은 다섯 개의 건물과 전망대가 서로 이어진 풍경으로 어디까지가 집이고 어디부터가 숲인지 안팎의 경계가 모호한 채 존재한다. 한옥에 집 속에 경치를 들이는 차경의 개념이 있다면 헥센하우스는 거기서 더 나아가 집 자체가 숲의 일부가 되기를 택한 것이다.
주방과 거실 사이에 낸 반원 모양 구멍 문 홀Moon Hole. 악셀에게는 거실을 내다보는 창이, 카를헨에게는 이동 통로가 된다.
베저강이 내다보이는 방. 네모난 창틀을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으로 고쳤다.
경계를 흐리는 스미스슨 부부의 디자인 언어는 집 내부에서도 반복된다. 수많은 벽과 천장, 때로는 바닥까지 전체 또는 일부를 제거해 공간을 연결하거나 새로운 동선을 만들었고, 그중 일부는 유리로 마감해 빛과 시선이 느슨하게 드나들도록 했다. 창과 창틀 디자인부터 바닥과 천장의 패턴, 전망대까지 곳곳에 자리한 대각선과 삼각형 형상은 가새를 댄 목구조, 박공지붕, 숲속 나무 등 기존 건축물에서 발견한 요소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결과다.
리모델링의 또 한 가지 목표는 사람과 고양이를 위한 집. 현관 포치는 뾰족한 삼각 형태의 유리 바닥으로 만들어 카를헨이 곳곳에서 쥐의 흔적을 살필 수 있도록 했고, 강가의 창문에는 악셀을 위한 의자를, 마주 보는 자리에는 카를헨이 앉을 작은 의자를 놓았다. 헥센하우스 테이블을 비롯해 집안 곳곳에 낸 구멍은 창이자 파벽인 동시에 카를헨을 위한 놀이기구다. “부엌과 거실 사이의 벽에 난 구멍은 제가 무의식적으로 그린 반원 모양 스케치를 피터가 그대로 구현해준 거예요. 앨리슨은 항상 삼각형 구멍만 내어 지루했거든요. 계단 옆에는 각도에 맞춰 반원을 회전시켜 구멍을 냈는데, 얼마나 근사하던지! 그 자체로 조형적 작품이면서 저에게는 거실과 베란다 및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창이, 카를헨에게는 근사한 이동 통로가 되어주죠.”
2백60점이 넘는 가구와 오브제는 헥센하우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르코르뷔지에의 LC3 소파,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하고 장 프루베가 제작한 벤치 겸 책장이 놓여 있다.
1991년 리모델링한 창. 강이 내다보이는 위치에 악셀을 위한 의자를 놓았다.
헥센하우스 욕실. 바닥 일부를 제거하고 유리로 마감했다.
텍타의 바우하우스 가구를 비롯해 장 프루베, 마르셀 브로이어,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데어로에 등 수많은 디자이너가 작업한 가구와 오브제도 이 집의 또 다른 주인공. “무려 2백60점이 넘는 작품은 피터가 비유한 것처럼 ‘악셀의 개인 극장’에 초대되곤 합니다. 제가 정한 역할과 방식으로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죠.” 헥센하우스는 스미스슨 부부의 작품 세계를 드러내는 기념비적 작업이자 악셀과 고양이 카를헨이 만든 한 편의 동화다. 악셀은 46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카를헨과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네 마리의 카를헨이 살았고, 최근 2년 동안은 카를헨 5세와 지내고 있는 중이다. “헥센하우스라는 지상낙원에 카를헨과 그의 집사가 감사하고 겸손하게 살고 있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헥센하우스는 스미스슨 부부의 작품 세계를 드러내는 기념비적 작업이자 악셀과 고양이 카를헨이 만든 한 편의 동화다. “헥센하우스라는 지상 낙원에 카를헨과 그의 집사가 살고 있다는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입니다.”
취재 협조 에이치픽스(02-3461-0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