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이미지를 공간으로 실체화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벵 씨. 작은 소품 하나 허투루 두지 않고 자신의 취향이 듬뿍 밴 것으로 골라 들인 그의 집은 ‘유벵’이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가시화한 장소다.
태생이 맥시멀리스트이지만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며 생활공간에 정말 아끼는 것만 남겼다. 테이블은 직접 디자인한 것.
SNS에 사진이 오르내리며 핫 플레이스로 등극한 호텔더일마, 더일마 스타필드 수원점, 키마스시에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공간 기획자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는 것. 젠틀몬스터와 누데이크의 아트 비주얼 디렉터로 활약하다 공간 기획 듀오 뉴모던서비스New Modern Service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현재는 브랜딩 스튜디오 도나DONA와 패션 브랜드 레노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 중인 유벵 씨가 그 주인공이다. 짐작했겠지만 본명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처음 소개하기 위해 건네는 명함에 적힌 이름조차 ‘유벵’이다. 브랜딩을 업으로 삼는 그가 타인이 지어준 게 아닌 스스로 선택한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유벵 씨의 집 역시 마찬가지다. ‘유벵’이 브랜드명이라면, 집은 그의 취향과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다름없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벽 선반. 마음에 들어 구입하고 확인해보면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제품이 많을 정도로 필립 스탁은 유벵 씨가 지향하는 디자인과 결이 맞닿아 있는 디자이너다.
대부분의 사람이 휴식 공간에 소파를 두는 것과 달리 유벵 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캠핑 체어를 두었다. 뒤편의 파티션은 얼핏 아프리카 수공예품처럼 보이지만 미드센추리 모던 시기 미국에서 제작한 것.
“군더더기를 갈아내 뾰족한 하나의 포인트를 도출해내는 것이 좋은 브랜딩이듯 제가 살고 있는 집에도 유벵이란 사람의 에센셜만 담고 싶었어요.” 약 4개월 전, 지금의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길 때 그가 직면한 가장 큰 과업은 ‘덜어내기’였다. ‘과업’이란 거창한 단어를 구태여 사용한 건 태생이 맥시멀리스트인 유벵 씨에게 덜어내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 탐미주의자인 그가 ‘건축적 요소가 집약된 오브제’라 여기며 모은 안경만 해도 약 80여 개에 달한다. 이는 일례일 뿐 아트 북, 모자, 캠핑용품, 강아지 모티프의 소품 등 좋아하는 것이 무궁무진한 유벵 씨가 하루아침에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눈길이 닿는 곳에는 최소한의 것만 두고 나머지는 모두 창고에 보관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커피 한 잔조차 늘 나가서 마실 정도로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물론 지금도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내지만 이사 온 뒤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전보다 길어졌어요.”
지금의 집은 특히 채광이 훌륭한데, 좋아하는 향과 음악이 가득한 집 안에서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실 때 가장 행복하다고.
유벵 씨가 엄선해 남겼다는 집 안 물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현관 쪽에 놓인,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발레리 이탈리아의 그레이 맥 지Grey Mac Gee 벽 선반. ‘구조적 디자인을 좋아하나 보다’ 생각할 때쯤 소파 대신 놓인 캠핑 의자와 발리 수공예 벤치가 보인다. ‘모던과 빈티지의 믹스 매치를 즐기는구나’라고 결론을 내리려니 집 안 곳곳에 숨어 있던 강아지 인형과 소품이 ‘의외로 나는 아기자기한 것도 좋아해’라고 외친다.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된 우리 집 가구와 물건의 연결점은 ‘내 눈에 예쁜 것’뿐이에요. 그러나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엔 나름의 공통점이 있어요.” 럭셔리 브랜드의 컬렉션 피스처럼 힘이 잔뜩 들어간 디자인보다는 청바지와 흰 티셔츠에 개성 있는 모자나 신발 혹은 액세서리 등을 더해 포인트를 준 룩처럼 형태는 편안하되 자신만의 분명한 개성을 지닌 것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동한다.
국내 빈티지 마켓에서 산 유리 보틀. 집에 강아지 모티프의 소품이 많은데 하나같이 닥스훈트를 본뜬 모양이다.
미드센추리 모던 시기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달팽이 모양 매거진 랙. 국내 빈티지 매장에서 구입했다.
스노우피크의 스태킹 셸프 컨테이너 50. 캠핑용 제품이지만 집에서 책을 보관하는 데 사용한다.
현재 머무는 보금자리는 고등학교 졸업 무렵 유학을 떠나며 혼자 살기 시작한 유벵 씨의 아홉 번째 싱글 하우스다.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는 삶에 잔뼈가 굵고 상업 공간도 숱하게 기획한 그에게 아름다운 공간의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결국 주인공은 사람이에요. 공간은 소유한 사람을 뒷받침할 뿐이죠. 사람과 이루는 균형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절한 공간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덧붙여 집을 마음에 들게 꾸미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타인의 취향이나 시선과 상관없이 오롯이 나의 마음이 이끄는 제품을 선택해 집 안에 들이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에도 거짓말을 쓴다는데, 자신한테 솔직해지는 건 타인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집을 나만의 취향대로 꾸린다는 건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1 커스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푸에브코의 메탈 툴 박스. 스티커와 손 글씨로 장식했다.
2 베지터블 레더로 만든 헨더스킴의 셰이커 오벌 박스. 나무 셰이커 박스를 본뜬 모양이 귀여워 구매했다.
3 미드센추리 모던 시기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서양배 모양의 알루미늄 아이스 버킷. 안에는 서양배 모형을 넣어 위트를 더했다.
4 나무, 유리, 메탈 소재의 믹스 매치가 돋보이는 카트는 미드센추리 모던 시기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것.
5 리스본 빈티지 마켓에서 구입한 손 모양 메탈 오브제. 투박한 마감이 주는 키치한 느낌에 이끌려 샀다.
6 플레이포에버의 리드 벨리 번사이드Lead Belly Burnside. 자동차의 셰이프에서 자주 영감을 얻는다.
7 패션 브랜드 더 리얼 맥코이의 강아지 인형. 재킷을 만들고 남은 가죽으로 만들었다.
8 프랑스에서 제작한 도자기 오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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