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예는 전통 공예의 정의와 범주에 도전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2024 서울리빙디자인페어 기간에 코엑스 더플라츠THE PLATZ에서 동시 개최된 ‘크래프트서울’이 그 대표적 예다.
킬드런의 페인팅.
킬드런과 올댓재즈가 협업해 제작한 와인.
한국의 공예 시장에서 가장 혁신적 행사 중 하나는 올해 제3회를 맞이하는 ‘크래프트서울’이다. 다양한 재료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새로운 접근과 과감한 도전으로 가능성을 확인하는 공예 작가를 소개하는 크래프트서울은 전통문화로만 인식해온 우리나라의 공예 산업을 ‘일상의 공예’로 보다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올해도 역시 색다른 취향과 개성을 입힌 공예품을 대거 선보이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올해는 45개 브랜드·작가와 네 개의 기획 전시를 통해 자신만의 감각으로 남다른 물건을 만드는 창작자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재즈 바인 올댓재즈와 전 세계 K-팝 팬들에게 주목받은 킬드런 작가가 함께 구성한 특별전 <아티스트를 기억하는 또 다른 방법, 수비니어샵>이 활기를 더했다.
이번 전시의 키 비주얼은 빠른손스튜디오의 김도현 디렉터가 맡았다. “‘무언가를 담아낸다’는 공예의 특성을 메인 콘셉트로 잡아서 소괄호·중괄호·대괄호의 문양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소괄호는 도자(즉 달항아리)를, 중괄호는 촛대를, 대괄호는 문에 있는 창살을 의미합니다.”
거창유기, 류종대, 밀실, 박나혜, 연호경, 왈왈스튜디오, 윤여동, 이은비가 함께 선보인 <공예를 지은 식탁>.
커먼플래닛 부스.
미래에서 온 공예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띈 건 개성 가득한 형태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예 작품이다. 평소 ‘모순된 것들’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장신구스튜디오의 지영지 작가는 ‘의도적으로 낯선’ 감성을 담은 실용 장신구를 선보였다. 단단한 것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뾰족한 것으로 만지고 싶은 질감을 지닌 다양한 용품을 전시했다. 뉴헤리티지 디파트먼트는 전통 공예 나전칠기 기법으로 장식한 오늘날의 물건이 6백 년 후 문화재로 전시되는 상상을 담아, 현대인의 삶을 상징할 수 있는 21세기의 나전칠기를 선보였다.
도아세는 백자 흙에 색안료를 섞어 만든 색소지로 아주 작고 다채로운 도자기 인형을 내놓았다. 한편 조민열 작가는 청바지 옷감에서 자연의 형상을 발견해 데님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무와 지층의 모습으로 상상한 것을 구현했다. 복제를 통해 요소와 색감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커먼플래닛은 캡슐 알약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컵과 유려한 라인의 크루저보드에서 모티프를 얻은 접시를 선보였다.
류종대 작가의 <디지털 크래프트> 기획전.
김두봉 작가의 부스.
전통이 깃든 공예
물론 전통이 묵직이 스며든 작품들도 만날 수 있었다. 크래프트서울은 이를 네 개의 기획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공예를 지은 식탁>은 공예 작가 여덟 명이 다양한 스타일의 공예가 섞인 테이블 풍경을 제시했다. 류종대 작가는 <디지털 크래프트>기획전을 통해 3D 프린트로 제작한 형형색색의 도자 컬렉션으로 인공지능이 공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옻칠의 물성과 본질을 탐구해 작품에 자신만의 색, 정신과 철학을 담는 문재필 작가는 <문재필 옻칠갤러리>를 통해 옻칠의 본질을 표현하는 동시에 전통의 ‘재창조’를 화두로 던져 칠화와 조형 작품뿐만 아니라 옻으로 그린 그림까지 선보였다. 흑색 흙과 유약을 사용하는 나카무라 조지 · 김인식과 백색 소지에 청색 염료를 사용하는 나카무라 나오코 · 김귀연 작가는 ‘백자’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흑청백합×옥인다실>이란 제목으로 4인전을 펼치며 다관(차를 우리는 주전자)을 중심으로 차 도구와 백자를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