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모리함 전시관에서 열린 전시 <콜린 진의 역사적인 레고>에서 우리는 ‘K-레고’라는 낯선 용어와 그 낯설고도 친숙한 세계를 엿보았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부터 학춤, 제자각시탈, 보상무까지 콜린 진이 레고 블록으로 만든 한국의 숱한 보물을 만났다. 설계도도 없이, 기성 레고 블록만 활용해 18개월에 걸쳐 완성한 그토록 역사적인 레고 앞에 우린 당당히 ‘K-레고’란 명명을 더했다. 그리고 청룡의 해를 맞아 급기야 <행복> 표지로 날아오른 청룡 스테이플러!
콜린 진(본명 소진호)은 태어난 해에 장난감 회사 한립토이스를 설립한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신기한 장난감을 가장 먼저 갖고 노는 행운을 누렸다. 스물다섯 살부터 자신만의 레고 디자인 작업을 해오다 결혼 후 시작한 장난감 박물관(한립토이뮤지엄)에서 꾸준히 작업을 확장했다. 2023년 10월 첫 개인전 〈콜린 진의 역사적인 레고〉(모리함)를 열었고, 2023년 12월 첫 아트 북 <아빠가 만들어준 레고>를 펴냈다.
한립토이스의 ‘자석 낚시놀이’는 어릴 적 우리의 필수 장난감이었죠.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린 날로 회귀한 듯한 감정이 몰려옵니다. 그 한립토이스 설립자의 아들이 레고로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K-레고를 만든다는 것은 더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요. 나중에 작가님이 한립토이뮤지엄도 운영했는데, 그 장소에서 어떤 꿈을 펼치려 했나요?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을 이루다 보니 부모와 자식 세대의 간극이 벌어지고 이해와 소통이 결핍되어 있어요. 그래서 한립토이뮤지엄을 세대를 잊고 함께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신나게 놀고, 어른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공간이요. 잠깐 머물다 가더라도 영감을 든든히 충전해 모두의 인생이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 곳으로요. 그게 제 꿈이었고 한립토이스의 철학이기도 했을 거예요. 그 결과는 지금도 뮤지엄을 기억해주는 누군가의 미소로 증명되는 것 같아요.
‘종묘제례악’, 2022.
우리는 콜린 진의 레고 아트를 통해 ‘포구락’(포구문을 가운데 놓고 동과 서로 갈라서서 노래하고 춤추며 공을 던지는 유희무)과 ‘보상무’(보상반 위 항아리 속에 공을 넣는 유희무)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창공 김금화’(영화 <만신>의 실제 모델. 서해안 배연신굿, 대동굿 기능 보유자)라는 인물을 발견했고요. 전통문화에서 주제를 찾아내고, 그걸 작품화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역사적 주제를 처음 시작한 계기는 아내입니다. 고대사를 긴 시간 공부해온 아내가 승무를 추는 무희를 레고로 만들어달라고 했죠. 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 답했고요. 그렇게 말해놓고는 고민했어요. 그러다 불현듯 머릿속에 설계도를 그리고 손으로는 조립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그렇게 탄생한 승무 작품의 이름 ‘창공 김금화’ 또한 무가 문화를 공부하는 아내가 애정을 담아 붙인 것입니다. 그 뒤로 우리 전통문화 유산이란 주제에 관심이 깊어졌어요.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의 국왕과 왕후를 기리는 음악과 노래, 무용이 어우러진 종합예술 행사입니다. 종묘라는 공간에 제례악과 의례가 없다면 의식 없이 멈춰 선 느낌일 겁니다. 그래서 제례악 책이란 책은 다 구해 공부했어요. 아직도 깊은 의미는 아내에게 물어보고, 디자인은 딸과 상의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설계도가 착착 그려집니다. 대화와 책 그리고 가족이 작업의 초석인 셈입니다.
“레고의 매력은 한정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나무나 금속처럼 깎고 다듬는 게 아니라 정해진 모양 안에서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라고요? 게다가 필요한 레고 브릭을 별도 주문 제작해 작업하는 게 아니라, 기성 브릭만으로 작품을 만든다고요?
장난감 블록으로 창작할 때 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기존 블록의 형태를 변형하거나 도색하는 일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블록 아트를 하는 이들의 철칙이죠. 우리 전통 복식이나 가구 문양의 도드라진 특징이 곡선이에요. “신은 곡선을 창조했고, 인간은 직선을 만든다”고 하는데, 레고는 거의 직선 부품이거든요. 그걸 가지고 한국의 곡선을 표현하기 위해 오래 고민했는데, 그러다 ‘숨’이 떠올랐어요. ‘한국적 미의 특징은 여백, 바로 그것이 숨이다. 보이지 않는 공기에 감싸인 채 호흡하는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해서 도포 자락에 숨이 들어가고 무희나 무동의 춤선에 너울거림을 형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콜린 진의 레고는 블록의 고정적인 결합 방식에서 벗어나 느슨한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블록과 블록 사이에 숨구멍을 주어 전통적 곡선을 표현해내는 것. 그는 특히 기성 브릭을 다른 용도로 쓰는 활용력이 뛰어난데, ‘종묘제례악’ 중 문무백관의 사모관대는 오리발 브릭으로, 손은 집게 브릭으로, 가부좌 튼 발은 이빨 브릭으로 만들었다.)
‘각시탈’, 2023.
전공이 토목공학이어서 레고-아키텍쳐 시리즈처럼 건축적 작업에 집중할 거라 예상했어요. 그런데 종묘제례악이나 신라 시대 유물인 사천왕사 출토품 ‘녹유 용얼굴무늬 기와’, 탈, 선비의 책상 같은 전통 유산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것, 살아 있는 생명이 사는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아요. 토목공학도 사람을 주인공 삼아 사람이 이용하는 구조물을 공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니까요. 그 사람의 사는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결국은 사랑이라 더욱 그렇답니다. 물론 토목공학은 구조적 안정성이나, 작은 블록으로 큰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공학적 혹은 수학적 생각에 도움이 됩니다. 교량을 만들 때 적용하는 아치형 구조가 한복의 곡선을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인 것처럼 말이죠.
앞으로 콜린 진의 ‘K-레고’는 어떻게 진화할까요?
첫 개인전을 통해 느낀 것은 외로움이었어요. 오전 11시에 전시 시작인데 60~70대 어르신들이 10시 반부터 줄을 서세요. 당신들이 아는 주제가 자신의 아이가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졌다는 기쁨이 꽤 컸나 봐요. ‘역사에 대한 익숙함, 그 소재가 주는 다 커버린 자식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이 두 조합이 이번 전시의 결과물이자 주제였어요. 그것은 또한 사랑이죠. 다음 전시도 그 사랑을 주제로 우리 역사를 그려내려 합니다.
‘선비 땅을 알다’ 중 책상반ㆍ연적ㆍ호롱등ㆍ문진, 2022.
1월호 표지 작품은 ‘청룡’이라는 상징적 아이콘과 ‘스테이플러’라는 일상품을 접목했는데요. 무엇을 ‘꽉 문’ 청룡인가요?
작품명은 ‘청룡지치’, 말 그대로 ‘청룡이 종이를 물다’라는 뜻이랍니다. 예로부터 용은 물을 상징하고 화재를 막는 부적과 같은 존재였죠. 그래서 궁에는 용 문양이나 조각품, 라피스라줄리(청금석-하늘을 상징, 천신계) 같은 보석으로 만든 청룡 등이 귀하게 모셔져 있었죠. 청색은 방향으로는 동쪽이고 시작, 나무 등을 상징하고요. 청색 용을 스테이플러와 접목한 건 침묵이 주는 고요한 힘, 정리된 깨끗함, 모여서 하나 됨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행복> 독자들도 청룡의 기운으로 새해 평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