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학교 서울, JOH, FLO, 맹그로브의 인하우스 마케터를 거쳐 이젠 자신의 브랜드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손꼽힌 씨. 어린 나이에도 남부러울 것 없는 커리어를 쌓은 그에게 은근한 거리감을 느낀 것도 잠시, 꿈도 야심도 크지만 그 과정에서 넓은 마음과 맑은 영혼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말에 곧장 마음이 녹아내렸다.
정치, 음악, 뷰티, F&B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 전략가로 일하는 손꼽힌 씨. LG, 로레알, 원소주 등 여러 브랜드 프로젝트의 전략 기획 및 마케팅 파트너로 일한 바 있다.
‘하티핸디의 핸들러 손꼽힌’. 수수께끼처럼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운 이 집의 주인공을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손꼽힌’은 무려 직접 개명한 이름이고, ‘하티핸드’는 그가 운영하는 브랜드 에이전시이며, ‘핸들러’는 스스로 명명한 자신의 직함이다. 주체성의 가치를 무수히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그야말로 주체적 삶을 사는 사람의 표본이 아닌가! 나는 그가 너무 많이 들어 지겨울 법한,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모범생처럼 살지 말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라”던 대학교 교수님의 말이 마음에 콕 박혀 이름을 바꿨다는 손꼽힌 씨는 일반적 삶의 틀을 깨는 첫 실천으로 개명을 선택한 이후, 나름의 방식으로 주체적 삶을 찬찬히 밟아가고 있다.
“원래 이름은 손경은이에요. 평범한 이름이라 그런지 애착이 없어서 스무 살 때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와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저는 삶의 주도권이 제게 없다고 느낄 때 우울해져요. 즐겁게 회사를 다니다가 어느 순간 혼자서도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 창업을 했고, 제 직함을 감히 핸들러로 지었어요. 프로젝트를 핸들링 한다는 뜻인데, 주도적으로 함께 일할 클라이언트를 선택하고 일을 컨트롤할 수 있음에 매일 짜릿함을 느껴요.”
스탠다드에이의 10주년 체어를 놓은 거실. 유리 통창으로 홍은동 뷰가 펼쳐진다.
모던한 인테리어에 컬러 포인트가 되는 푸에브코의 발 매트와 벨벳 슬리퍼.
마침내, 나 홀로 집에
손꼽힌 씨가 가족의 품을 떠나 표면적 독립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는데, 오롯이 혼자 살게 된 건 지금 집이 처음이다. 이 독립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는 지금까지 손꼽힌 씨가 거쳐온 집의 역사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과 빈방을 나눠 쓰는 ‘한지붕 세대공감’,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화성시 출신 학생을 위한 ‘화성시 장학관’, 사회 혁신에 관심이 많은 이가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셰어하우스 ‘디웰D-WELL’, 마케터로 일한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 1인 가구를 위한 공유형 사회 주택 ‘청운 광산’…. 함께 사는 삶의 장점을 원 없이 누려온 그는 30대 중반이 되어 온전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저는 내면을 깊이 돌아보는 것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코리빙 하우스에 지내면 같은 1년을 살아도 1인분이 아닌 10인분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죠. 그런데 제 직업이 마케터이다 보니 밖에서 많은 사람을 대면하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인간관계에 대한 자극이 끊이지 않으니까 점점 버겁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던 주기는 지난 것 같았죠. 늘 도파민이 최대치인 상태에서 살아왔는데, 이제 집에서는 고요하게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손꼽힌 씨가 이사한 호실엔 원목 가구 브랜드 아이네 클라이네의 수납장이 기본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전용면적 8.33평인 작은 원룸형 공간에 주방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완전히 독립하면서 충분히 휴식할 수 있는 개인 시간이 생기니 주변 사람도 더 잘 돌볼 수 있게 되었다고.
온전한 독립을 결정했지만 원하는 집을 찾지 못하던 그는 새 프로젝트의 오픈 하우스를 진행한다는 에이라운드건축 박창현 소장의 SNS를 보고 홀린 듯 구경에 나섰고, 그날 바로 계약을 했다. ‘써드플레이스’라 이름 지은 저층형 집합 주택으로, 오롯한 내 집이 있으면서 코리빙 성격도 지닌 곳이라 그에겐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것. 손꼽힌 씨는 이 집에서 그동안 꿈꿔온 모양의 집을 꾸며가고 있다.
“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잘 자고 충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침실을 다른 공간과 완벽히 분리했어요. 사실 침실은 드레스룸 용도로 설계한 공간이에요. 이곳에 옷을 보관하면 거실이 너저분해지지 않아서 미관상 좋긴 하거든요. 근데 남들 보기 좋으라고 사는 건 아니니까 여기에 과감하게 침대를 넣어버렸어요. 이렇게 나만을 위한 공간이 보장되는 반면, 이웃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공용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곳이 마음에 들어요. 집까지 올라오는 계단에 벤치가 있는데, 여기서 이웃들과 얘기도 나누고 같이 식물에 물도 주고 그래요. 밤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계단마다 불이 하나씩 켜지는데 그 계단을 오를 때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혼자 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환대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한답니다.”
손꼽힌 씨는 불만이라는 동력을 통해 대안을 찾아 제시하는데, 이것이 마케터에겐 좋은 덕목이라 생각한다. 1인 가구의 주거 대안에 대한 콘텐츠 부족에 불만을 품고 코리빙 하우스 맹그로브에서 일하게 된 것, SNS 과시용 식당에 염증을 느껴 건강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지속 가능한 마트 슈퍼 파인 프로젝트에 동참한 것 모두 같은 연유다.
벽을 사이에 두고 침실과 작업 공간을 나누었다. 늘 전형적인 원룸에 살다 보니 책상 위에 큰 아이맥을 둘 수가 없어 꼭 넓은 책상을 들이고 싶었다는 손꼽힌 씨. 리차드 램퍼트 테이블과 허먼밀러 의자, 올루체 플로어 조명을 두어 작업 공간을 꾸몄다.
공간이 작고 물건이 많지 않아 이번 촬영을 걱정했다던 손꼽힌 씨. 그의 말대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화려한 인테리어는 없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이 뿜어내는 당당하고 발랄한 에너지가 좁은 공간을 꽉 차 보이게 만들었다. 몰아치는 업무 속에서도 넓은 마음과 맑은 영혼을 잃고 싶지 않다는 신념, 과시하는 삶을 경계하기 위한 노력…. 이 짧은 칼럼 안에 모두 담을 수 없던 그의 올곧은 말이 무엇보다 멋진 인테리어 요소가 되어 집을 채우던 그날, 손꼽힌 씨의 첫 독립 집은 그야말로 ‘손꼽히도록’ 근사해 보였다.
사람 좋아하는 마케터의 수집 목록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고 재밌는 일을 도모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마케터가 아끼는 물건은 무엇일까? 그가 애정을 느끼는 아이템은 모두 ‘사람’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한주원 작가의 Tony Clock
손꼽힌 씨가 처음으로 산 작가의 작품. 한주원 일러스트레이터의 전시를 보러 갔다가 한눈에 반해 구매한 시계다. 몽실몽실한 털과 빼꼼 내민 혀 등 강아지의 귀여운 모양새가 콘크리트 벽으로 인해 차갑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집 안 분위기를 가볍게 중화해주는 것 같아서 좋아한다.
제이 팍Jay Park의 친필 사인 굿즈
가수 제이팍의 오랜 팬인 손꼽힌 씨는 제이팍의 주류 브랜드 원소주를 프로젝트 일원으로 함께하며 이른바 성덕이 되었다. 에잇볼타운의 기린과 제이팍의 합작 앨범 의 한정 굿즈인 사자 피겨를 소장하고 있다가 그 위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
제이 딜라J Dilla의 액자 포스터
힙합, R&B 음악을 좋아하는 손꼽힌 씨의 또 다른 ‘최애 아티스트’이자 그에게 늘 영감을 주는 제이 딜라. 액자 속 사진은 제이 딜라가 작업하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인데, 좋아하는 뮤지션의 포스터를 작업하는 책상 옆에 두어 한 공간에서 같이 일하는 느낌을 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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