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고 대담한 디자인으로 돌아온 2023 S/S 시즌의 화이트 셔츠.
(왼쪽부터) PRADA, JUNYA WATANABE, PETER DO, VALENTINO
클래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유행이나 트렌드와 상관없이 제 몫을 해내는 아이템, 많은 사람의 옷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옷, 바로 화이트 셔츠다. 칼 라거펠트도 생전에 말하지 않았나, “화이트 셔츠는 모든 것의 기본이자 시작”이라고. 그래서인지 수많은 디자이너가 이 기본이 되는 화이트 셔츠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해석해왔다. 2023 S/S 컬렉션 역시 디자이너들은 실루엣을 뒤틀거나 장식을 더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린 다양한 화이트 셔츠를 런웨이에 올렸다. 매 시즌 여러 디자이너들이 화이트 셔츠의 변주를 선보이지만 이번 컬렉션이 더욱 특별한 건 그간 보지 못했던 색다른 실루엣과 디자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BURBERRY, ALAIA, ANN DEMEULEMEESTER, SACAI, JACQUEMUS
각 디자이너의 정체성과 동시대적 시선을 고스란히 담은 화이트 셔츠의 새로운 면면은 이렇다. 먼저 라프 시몬스가 합류한 프라다에서는 포멀하면서도 반전이 있는 화이트 셔츠를 내놓았다. 군더더기 같은 디테일은 모두 생략하고 슬림한 라인의 점프슈트를 만들어 극적인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앤드뮐미스터는 화이트 셔츠를 몸에 달라붙는 롱 드레스로 변신시켜 프라다와 언뜻 비슷한 룩을 만들었고, 셔츠를 풀어헤친 듯한 디자인의 시스루 롱 드레스도 선보여 브랜드 고유의 아방가르드한 면모를 과시했다. 피터 도와 버버리는 속살을 살짝 내비치는 레이어드 스타일을, 사카이와 발렌티노는 남자친구의 셔츠를 빌려 입은 것 같은 클리셰가 떠오르는 미니 셔츠 원피스를 각자의 문법대로 만들었다. 준야 와타나베는 신성한 느낌마저 드는 성직자 같은 셔츠를, 자크 뮈스는 아슬아슬한 끈으로 여미는 크롭트 셔츠를, 알라이아는 후드 셔츠 보디슈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클래식한 아이템의 변형은 전통적 개념을 파괴하면서 아름다움의 일반적 기준을 뒤엎는 데 어쩌면 꽤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어딘가 익숙한 듯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고, 디자이너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역설적으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을 벗어날 때, 반전이 있을 때 매력은 배가되지 않나. 덕분에 컬렉션을 감상하는 재미도 두 배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