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공기, 물이 1000℃ 넘는 화탕지옥 속에서 한 몸으로 녹아 새 피가 도는 도자 작품으로 태어나듯 서로 다른, 매우 다른 두 작가가 갤러리 지우헌에서 처음 만난다. 이들은 한 몸으로 녹아들 것인가?
헬렌 코흐 작가는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건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덴마크에서 건축가로 활동했다. 영국 사치 갤러리 Satcchi Screen Project(2017), FOCUS photo LA 2위(2020)에 선정되었고, 뉴욕·런던·첼시 등에서 단체전을, 국내에서는 김포 CICA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 외에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비평가(2011~2019), 고려대학교 건축학부 객원평론가(2022),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덴마크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2014)로 활동한 바 있다.
박종진 작가는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를 나와 영국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도예 전공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공예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렉서스 크리에이티브마스터즈 어워드(2018),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금상(2011), 광주백자공모전 대상(2008)을 수상했고,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세라믹 아트 런던, 의외의 조합, KCDF갤러리, 영국 왕립미술학교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도자미술관에서 <한국현대도예순회전>(2022)과 ADER+CONVERSE 컬렉션 팝업 전시 커미션에 참여했다.
like dissolves like. ‘극성 물질은 극성 용매에, 무극성 물질은 무극성 용매에 녹는다’라는, 쉽게 말해 극성인 물과 소금이 서로 잘 녹는 것처럼 ‘끼리끼리 녹는다’라는 화학작용 이론이다. 이를 두 사람의 전시에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박종진 작가는 종이에 점토 슬립을 한 겹씩 발라 쌓은 후 불에 굽는 ‘아티스틱 스트라텀Artistic Stratum’ 시리즈를 선보여왔다. 형태를 만드는 재료인 종이는 도자를 굽는 과정에서 존재가 사라지지만, 그 결과물은 종이처럼 보이는 매우 철학적인 화두의 작품이다. 헬렌 코흐Helene Koch는 도심 속 공간에 남은 시간성을 사진, 설치, 드로잉, 페인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추적한다. 우리가 호흡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장소를 크게 드로잉’하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작가. 박종진은 지층처럼 겹겹이 쌓인 시간의 외형을, 헬렌 코흐는 사람들이 떠난 농구 코트 바닥이나 인쇄소 귀퉁이에 쌓인 종이 더미처럼 흔적으로만 남은 시간의 내형을 표현한다.
헬렌 코흐, ‘In the way, on the way’ 시리즈 중 ‘Blinds’, pigment print on archival paper, sheet, 91.44×60.96cm.
박종진, ‘Artistic Stratum_Patch_BOBWG’, 종이(키친타월)에 백자 슬립을 발라 적층, 1260℃ 산화 소성 후 조각, 33×23×34cm, 2022.
언뜻 보면 물과 기름처럼 무극성과 극성의 세계를 지닌 작가들이 갤러리 지우헌에서 만나 ‘끼리끼리 녹고 녹여낸’ 시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나의 작업 과정 자체가 의도와 우연 사이에서 나타난 결과물 자체를 받아들이고 관계 맺는 일로, 이번 전시의 준비 과정과 매우 닮아 있다. 지우헌의 제안으로 헬렌 코흐와 만난 후, 그녀의 삶과 작품에 연결된 수많은 고리가 나의 현재와 퍼즐처럼 맞춰져갔다.” 박종진 작가의 말처럼 두 작가가 서로의 고리를 맞춰가는 전시 . 화학 법칙을 깨고 물과 기름이 서로를 녹이는, 기술이 해결 못 하는 예술의 힘을 과연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기간 5월 3일(수)~6월 3일(토), 일·월요일·공휴일 휴관
장소 갤러리 지우헌(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작가와의 대화 5월 17일(수) 오후 2시~3시 30분
인스타그램 @jiwooheon_dh
문의 02-2262-7349
갤러리 지우헌
갤러리 지우헌은 ㈜디자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전시 공간으로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을 개조한 독특한 구조로 전통적 미감과 현대적 편의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2016 서울우수한옥으로 선정되었다. 갤러리 지우헌은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에서 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시공간적 특징을 가진 갤러리로, 국내·외 괄목할 만한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