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냉소적 시선과 블랙 유머로 동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가 된 이탈리아의 개념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여전히 거리낌없이 모순과 부조리, 불편한 진실의 ‘선’을 넘는다. ‘위트’와 ‘유머’만이 아이러니한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믿으며.
‘코미디언’, 2019 ⓒ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 현장. 페로탕 갤러리의 부스 벽에 은색 테이프로 붙인 생바나나가 등장했다. 내로라하는 작품 사이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낸 잘 익은 바나나의 정체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신작 ‘코미디언’. 이 작품은 페어 개막과 동시에 12만 달러(약 1억5000만 원)에 판매되며 아트 신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며칠 뒤에는 미국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가 이 비싼 바나나를 떼어 먹어 치워버리는 바람에 또 한 차례 화제가 됐다. 갤러리에서는 “바나나는 사라졌지만 언젠가 썩어 없어질 것이었고, 작품 보증서가 남아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트에서 5000원이면 한 송이를 살 수 있는 바나나를 아트페어에 등판시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을 이끈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아 출신의 조각가이자 행위 예술가다. 화장실 변기에 ‘샘’이라는 작품명을 붙여 전시해 미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마르셀 뒤샹의 뒤를 잇는 개념 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술계는 물론 종교, 정치,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기존 권위에 도전장을 내밀고, 냉소적인 유머가 담긴 직설적인 작품을 통해 세상에 일침을 날리는 그의 작업은 매번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신선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1996년 암스테르담에서 연 전시에서는 인근 갤러리의 작품과 기물 등 전시품을 통째로 훔쳐 <또 다른 빌어먹을 레디메이드Another Fucking Readymade>라는 이름의 전시를 열었다가 절도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2016년 뉴욕 구겐하임 전시에서는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America’를 미술관 내 남녀 공용 화장실에 설치해 실제 변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개념 미술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특유의 해학적이고 도발적인 작업으로 논란을 일으키며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구겐하임 미술관, 바이엘러 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수많은 전시를 열었으며 세계적인 비엔날레에 여러 차례 참가했다. 2010년 피에르파올로 페라리Pierpaolo Ferrari와 매거진 <토일렛 페이퍼Toilet Paper>를 공동 창간해 발행 중이다.
<뉴요커The New Yorker>의 전속 미술 평론가로 활약한 캘빈 톰킨스Calvin Tomkins가 저서 <아주 사적인 현대미술>에서 언급한 “판의 규칙을 깨뜨려버리는 말썽꾼”이라는 표현처럼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모두가 함구하던 일에 논쟁을 불러일으켜 또 다른 사유의 지평을 연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아홉 번째 시간’(1999), 슈트를 차려입고 참회하듯 공손히 무릎을 꿇고 있지만 눈빛은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한히틀러를 묘사한 ‘그’(2001) 등은 언급조차 금기시되어온 인물에 스토리와 생생한 표정을 더해 밀랍 인형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한편 미술관의 바닥을 뚫고 엉뚱한 곳으로 나온 자신의 얼굴을 재현한 ‘무제’(2001), 시신을 연상시키는 9개의 대리석 조각 작품 ‘모두’(2007), 침상에 죽은 듯 나란히 누워 있는 두 명의 카텔란이 등장하는 ‘우리’(2010)’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개인적 서사에 강력한 감정을 담아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의 발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카텔란의 주요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는 전시가 리움미술관에서 시작됐다. 국내 첫 개인전이자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그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 38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 심각한 소재들을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과 토론, 연대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리움미술관 김성원 부관장의 설명이다. 전시 개막 사흘 전, 미술관에서 카텔란을 만났다. 단 한순간도 멈칫하거나 지루해하는 기색 없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바꾸고, 노래하고, 춤추고, 제안하고, 의견을 물으며 촬영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은 천진난만한 소년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작업과 예술에 대한 질문 앞에서만큼은 냉소적인 예술가의 표정을 한 채 예리하고 진중한 답을 꺼내놓았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를 축하한다. 2011년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전시인데, 준비 과정은 어땠나?
지난 몇 년간 이전 작품들로 전시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는데, 그 시작은 항상 현장을 고려하는 것이었다. 이번 전시 역시 장 누벨이 디자인한 아름다운 건물에서 전시 구성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전시실을 상점의 쇼윈도처럼 만들어보고 싶었고, 작품을 포도주처럼 진열하면 좋겠다고 생각해 일부를 공간에 맞춰 약간 수정했다. 전시를 준비하며 유일한 문제는 작품의 사이즈였다. 몇 작품은 너무 커서 미술관 안에 들일 수 없어 아쉬웠다.
전시 제목을 <우리We>로 정한 이유는?
나는 일명 ‘아이디어의 생태학’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좋은 타이틀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가능한 한 많이 사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는 내 작품의 제목이라 한 번 더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고, 2011년 구겐하임 회고전 제목인 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택했다.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라 규정하고 고정관념에 도전해왔다. 벽에 붙인 바나나를 12만 달러에 팔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된 지금도 이런 생각은 유효한가?
그렇다. 내가 받은 선물 중 가장 괴로웠던 것은 화가의 도구였다. 그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도대체 어떻게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도구들은 내가 화가로서 얼마나 재능이 없는지를 상기시켜주었다. 정말 좌절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로 인해 지금의 나는 전통적인 미술과 거리가 먼 작업을 하고 있다.
‘무제’, 2001, ⓒ Maurizio Cattelan, Photo: 김경태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관점을 유도하는 작업이 흥미롭다. 사유의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나?
어린 시절, 나는 부모의 권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혼자 살기 위해 집을 떠나 일을 시작하면서 고용주들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때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던 것 같다. 2011년 은퇴를 선언했던 것은,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그저 하나의 직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술가를 매력적이게 만드는 무정부적이고 금지된 요소들을 향한 호기심이 사라지고 마치 갤러리 오너처럼 모든 것을 아름답고 보기 좋게 포장하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불편하고 부정적인 것을 날것 그대로 표현하려는 욕망이야말로 내가 가진 유일한 동력이자, 새로운 관점과 통찰을 얻게 하는 창구다.
운석을 맞고 쓰러진 교황을 묘사한 ‘아홉 번째 시간’, 참회하는 듯한 히틀러의 모습을 표현한 ‘그’ 같은 작품은 상당히 도발적이다.
나는 권위에 대항하길 즐기고,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형태의 권력에 반감이 있으며, 가능하면 그것에 저항하려 한다. 그리고 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술 작품이 불편하지 않다면 디자인 제품과 다름없지 않나.
개념 미술의 대가들을 오마주하거나 유명 작품을 패러디하는 작업도 이어왔다. 작업 세계나 인생에 영향을 미친, 가장 유의미한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셀 수 없이 많다. 상대성이론을 예술에 도입한 ‘입체파’, 모든 사람이 어떤 대상으로든 예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다다이즘Dadaism’,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초현실주의’, 아이디어를 대중화하고 전파할 수 있게 한 ‘팝아트’까지. 이 모든 예술에 경의를 표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 시대의 ‘아티스트’란?
우리는 기후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목격하고 있는데, 이것은 세상에 큰 혼란을 초래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아티스트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다른 이들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존재다. 나는 예술이 사회를 성장시키는 근본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특정한 한계와 관습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하고, 토론을 불러일으키며, 이를 통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업 외에 요즘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 작품이 아닌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뉴스, 대중문화, 전쟁, 비극 등 매일 일어나는 일이나,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불공평함과 특권. 이 모든 정보가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된다.
좌우명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할 거라면 웃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당신을 죽일 거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란?
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가장 소중하며,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COOPERATION 리움미술관(2014-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