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로 치면 한옥을 개조한 셈이다. 1723년에 지은 영국 버퍼드셔Berfordshire 지역 시골집의 일부를 남기고 현대적 세련미를 더해 조화롭게 연출한 전원주택.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이 고색창연한 집에서는 예전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이 흐른다.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 버퍼드셔에 위치한 3000m2(900평) 크기의 전원주택은 2백50년이 넘는 시골집을 개조한 곳으로, 과거와 현재 시제가 교묘히 섞여 있다.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복도와 거실은 물론 2층 개인 공간까지 시골집에서 사용하던 실제 서까래를 이용한 무늬 천장이 이어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주앙 보텔류는 비례와 조화를 강조한 대칭 기법으로 내부를 꾸몄다.
파란 하늘을 한 줌 퍼다 담아놓은 듯한 야외 수영장에 어린 아들 조이런Joylan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보다 더 오랜 시간 동거한 반려견 실바와 시드, 아마리는 집 주변을 활기차게 뛰어다닌다. 점심 식탁 위에 장식한 장미 다발을 채집하는 길에 마주친 아티스트 남편 저스틴 튜Justin Tew는 미완성 그림을 손보는 데 열중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운 요즘, 영국 버퍼드셔에 위치한 새디 튜 가족의 전원주택에서는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진다. 런던에 살 때는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23년 전, 그는 빛에 따라 변화하는 색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현대 인상파 아티스트 남편과 함께 일찌감치 런던을 떠났다. 빛처럼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패션 업무로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고, 시골집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다. 결정적 계기는 런던에서 한 시간 떨어진 버퍼드셔에 위치한 워번 애비Woburn Abbey에서 열린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푸른 초원 위에 양 떼가 뒹굴고 연기를 뿜어내는 집 풍경을 보며 마음속에 수없이 그리고 지운 시골집을 떠올렸고, 1997년 지은 지 2백50년 된 집을 구입하면서 자신만의 풍경화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침실은 부부가 좋아하는 컬러로 꾸몄다. 헤드보드를 올려 웅장한 느낌을 살린 침대, 사이드 테이블, 옷장, 소파는 모두 주앙 보텔류가 디자인한 커스텀 가구로 까사 보텔류 제품. 침대 양쪽에 놓은 대리석 협탁은 옛날식 라디에이터를 교묘하게 감추기 위해 디자인했다.
다이닝룸과 부엌을 연결한 오픈 키친. 문을 활짝 열면 남편의 아틀리에로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화이트 컬러로 꾸민 부엌 공간은 햇살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조명 디자이너 린지 아델만의 그린 펜던트 조명이 포인트 역할을 한다.
현대 인상파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남편 저스틴 튜와 사랑하는 반려견 실바, 시드, 아마리. 부부는 여러모로 취향이 비슷해 수년간 큰 다툼 없이 집을 함께 부풀려왔다.
수십 년간 천천히 부피를 더한 집
“이 집은 저에게 완벽한 안식처이자 피난처예요. 런던까지 차로 출퇴근하는데, 코너를 돌아 시골집 지붕이 보일 때부터 혈압이 안정되는 것이 느껴지죠.(웃음) 집에 오면 누구에게나 와인 한 병 오픈해줄 수 있는 넉살 좋은 사람으로 변해요.” 지금은 완전체가 되었지만, 이 집을 구입할 때는 손볼 곳이 많았다. 부부는 1997년부터 직접 집을 개조하기 시작했다. 시골집 부엌은 아이의 공부방이 되고, 농기구가 쌓여 있던 창고는 거실이 되었다. 남편 아틀리에는 새롭게 지었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 지중해의 별장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야외 수영장과 정원을 만들기까지, 2년전에야 비로소 이 모든 작업이 끝났다.
집 풍경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원래 시골집 지붕을 그대로 머리에 얹은 2층짜리 현대식 건물을 중심으로 앞에 직사각 형태의 수영장이 있고 뒤편에 남편 아틀리에가 있다. 정원이 전체를 둘러쌌는데, 중심에는 4월부터 9월까지 부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야외 테이블이 놓여 있다. 테이블 뒤로 난 오솔길은 헛간으로 이어진다. 헛간은 무너져가는 벽을 보수했을 뿐 아궁이에 불 지피던 시골집 모습 그대로다. “일부러 옛 모습을 남겼죠. 첫사랑 편지를 서랍장에 보관해두고 가끔 꺼내 보는 것처럼 지난 추억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예요.” 헛간은 특별히 사용하지 않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비밀 놀이터가 되었다. 오래되고 투박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는 동굴처럼 아늑하다.
랄프 로렌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사장을 맡고 있는 새디 튜와 아티스트 남편 저스틴 튜. 올해로 아홉 살이 된 귀여운 아들 조이런. 모두 편안하고 클래식한 랄프 로렌 의상을 입고 있다.
벽난로를 가운데 두고 부부가 책을 읽거나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부부 전용 거실을 만들었다.
침실과 이어지는 새디 튜만의 전용 서재. 아메리칸 호두나무가 예술적으로 휘어진 유리 테이블은 가족 대대로 물려받은 것.
와인을 좋아하는 이 부부를 위해 주앙 보텔류가 제작한 와인 잔 보관함.
시골집에 첨가한 모던클래식
내부 인테리어는 그와 친분이 있는 주앙 보텔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새디 튜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브랜드 랄프 로렌처럼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한 모던클래식 스타일을 공간에 입혔고, 가구도 그가 직접 디자인했다. “계단 복도 옆에 배치한 와인 잔 보관함은 저희 부부가 제일 좋아하는 가구입니다. 아르데코 스타일이 물씬 풍기죠. 아늑한 벽난로와 주위를 둘러싼 브라질 대리석, 컬러를 맞춘 큐피트 벨벳 의자와 소파는 멋스럽게 잘 차려입은 젠틀맨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주앙 보텔류는 은은한 베이지 컬러 톤으로 내부를 마감하고, 포인트가 되는 블루 컬러를 공간마다 숨겨놓은 인테리어 고수. 어느 공간마다 정원이 보이는 구조지만 공간마다 식물을 배치했다. 아티스트가 살고 있지만 그림은 반전이 필요한 곳에만 걸었다. 실제 시골집에 있던 천장 서까래를 모든 방 천장에 드러내지 않았다면 런던 도심에 위치한 아파트 내부라고 여길 정도. 부엌과 거실이 나란히 놓인 건물 1층은 개폐할 수 있는 기능성 문을 장착해 계절에 따라 바람이나 온기가 집 안으로 넘나든다.
그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 공간은 정원이다. 마른 흙과 풀잎이 뒤섞인 냄새를 맡으며 정원을 돌보는 일은 예민한 감각을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정원 식물은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주변과 어우러진다. 시골 산길처럼 기교 없이 가꾼 모습이다. 아이가 성장했을 때엔 넓은 그늘이 될 수 있도록 테이블 주위를 빙 둘러 나무 서너 그루를 심었다. 온통 그린 컬러뿐이지만 클로드 모네의 작품 속 연못처럼 빛에 따라 모두 다른 컬러로 보인다. “날씨가 맑을 땐 다이닝 테이블을 두고 야외에서 식사를 하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정원이에요. 휴식도 취하고 일도 하죠. 일이 잘 안 풀릴 때엔 다시 꽃가위를 들고요.”
집은 각도에 따라 유럽 지중해 별장을 보는 것 같기도, 영국 시골집 같기도, 때론 최신식 아파트처럼 보이기도 한다. 1997년 집을 구입해 매년 조금씩 수리한 끝에 2년 전 수영장과 정원을 마지막으로 꿈속의 시골집을 완성했다. 기교 없이 꾸민 깔끔한 정원의 한가운데에는 차도 마시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가족 명당을 만들었다.
코로나19가 남긴 것
코로나19 사태로 패션 브랜드가 큰 손실을 입었지만 그는 디지털 커머스, 개인화 서비스, 위탁, 운송까지 관리하는 화이트 글로브 서비스 등 미래를 준비하는 터닝 포인트로 생각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모두 가족이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거예요. 답은 사람이 아닐까요? 사람이 곧 환경이고 사회죠. 개인의 건강과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돌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난국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집 안 인테리어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아들과 반려견이 뛰어노는 정원이나 부엌에 작은 책상을 두는 식이다. 일을 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은 집을 더욱 편안하게 가꾸며,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택 근무를 하게 되면 쉼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삶과 일 사이에 명백한 선을 긋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집을 원했다기보다 ‘멍하 게’ 시간을 보내더라도 용서되는 일상을 원한 것 같아요. 이렇게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꿈꾼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