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술계의 흐름을 이끄는 건 전 세계 주요 도시에 거점을 둔 대형 갤러리다.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화랑과 이들이 주목하는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소공공 기관 역할을 하는
페이스
Photography by Thomas Loof © Courtesy Pace Gallery
프레드 윌슨
미국 뉴욕 출신의 작가 프레드 윌슨Fred Wilson은 역사와 문화, 인종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6일부터 5월 9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 지점에서 그의 대표적인 유리 작품으로 구성한 전시 <프레드 윌슨: Glass Works 2009–2018>을 진행했다. 베네치아 스타일의 샹들리에와 거울을 검은색으로 만들어 설치했다.
Photography by Damian Griffiths © James Turrell, Courtesy Pace Gallery
제임스 터렐
한평생 빛을 연구한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캔버스 위에 빛을 구성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공간에 빛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최근 애리조나 북부 사막 지역의 화산에서 대규모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로덴 크레이터 프로젝트Roden Crater Poject’를 진행해 주목받았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척 클로스 Chuck Close, 장샤오강张晓刚 등 세계적 아티스트가 소속된 갤러리 ‘페이스Pace’. 1960년 안 글림처Arne Glimcher가 미국 보스턴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한 갤러리는 60년이 지난 지금 뉴욕, 런던, 제네바, 홍콩, 서울 등에 거점을 둔 대형 갤러리가 되었다. 지난해 9월에는 뉴욕의 3개 갤러리를 통합한 새로운 헤드쿼터를 첼시에 오픈하며 새로운 도약을 펼치고 있다. 약 6967m2의 부지에 8층 높이의 건물로 대형 미술관 못지않은 전시 규모와 시설을 자랑한다. 평면 회화와 조각 같은 전통적인 분야는 물론 미디어 아트와 퍼포먼스까지 다룰 수 있는 공간을 뉴욕 한복판에 확보한 셈이다. 전시실외에도 갤러리 로비와 이어지는 1층에 도서관과 서점을 만들어 누구나 찾아와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차세대 수장으로서 내가 할 일은 대표의 취향만 고집하는 갤러리가 아니라 하나의 기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창립자의 아들이자 2008년부터 갤러리를 이끄는 마크 글림처Marc Glimcher의 말처럼 페이스 갤러리는 공간 안팎에서 미술 시장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그중 하나로 지난해엔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첨단 아트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페이스X’를 론칭했다. 80여 명의 아티스트가 소속된 자회사로 예술가가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일구고 있다. 현재 코로나19로 각 지점을 휴관 했지만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뷰잉 룸 운영하고 소속 작가가 직접 쓴 에세이를 업로드하는 등 관람객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www.pacegallery.com
미술계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가고시안
가고시안 뉴욕 555 웨스트 24번가 지점에서 열린 제니퍼 귀디 전시 전경.
© Jennifer Guidi. Photo: Rob McKeever. Courtesy Gagosian
제니퍼 귀디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제니퍼 귀디Jennifer Guidi는 캔버스에 만다라 패턴을 닮은 화려한 색채를 표현한다. 물감에 모래를 섞어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신비로운 자연현상을 표현하는 효과를 낸다.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가고시안 뉴욕 555 웨스트 24번가 지점에서 개인전을 진행했다.
Nathaniel Mary Quinn, Junebug, 2015 © Nathaniel Mary Quinn. Courtesy the artist and Gagosian
너새니얼 메리 퀸
콜라주처럼 여러 사람의 얼굴을 이어 붙여 한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는 너새니얼 메리 퀸Nathaniel Mary Quinn.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낸 작가는 잡지와 온라인에 떠도는 인물 이미지를 조각조각 그린 뒤 하나로 모아 불완전한 자아를 표현한다. 지난해 가고시안 갤러리 런던과 베벌리힐스 지점에서 개인전을 열어 주목받았다.
2000년 뉴욕의 한 갤러리에선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담근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담긴 기괴한 작품이 모두 팔리며 기록적인 작품 판매 수익을 세웠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진행했던 갤러리 ‘가고시안 Gagosian’의 일화다. 올해 코로나19로 오프라인 행사 대신 온라인 판매를 진행했던 ‘아트바젤 홍콩’에서도 웹사이트 오픈 30분 만에 메리 웨더퍼드Mary Weatherford의 대작 회화를 약 9억4000만 원에 판매한 갤러리다. 1980년 LA에서 시작한 가고시안 갤러리는 현재 세계 9개 도시에 17개 갤러리를 두고 ‘최고가’, ‘최대 판매율’로 이슈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성장에는 수장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의 뛰어난 안목과 신진 아티스트를 스타 작가로 만드는 저돌적인 마케팅이 한몫을 했다. 갤러리가 시작한지 40년이 흐른 지금도 직접 신진 작가를 찾아 발굴하는 그는 선택한 작가의 작품을 고가에 구입해 작품 거래 가격을 높인다. 데이미언 허스트뿐만 아니라 제프 쿤스Jeff Koons, 무라카미 다카하시村上隆,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등이 갤러리 대표 작가들이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전시를 진행하는 공간은 건축적인 면에서도 높이 평가받는다. 장 누벨Jean Nouvel이 건축한 파리 지점, ‘백색의 건축가’로 유명한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가 설계한 LA 베벌리힐스 지점, 디자인 스튜디오 wHY 건축이 설계한 프라이빗 갤러리인 샌프란시스코 지점 등은 각 건축가의 특징이 담겨 그 자체가 작품으로 불린다. 컬렉터를 위한 작품 판매뿐만 아니라 소속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 책 출판과 아트 굿즈 제작도 하는데, 뉴욕에 별도의 숍을 마련해 이를 판매 중이다. gagosian.com
아시아 활동이 활발한
페로탕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페로탕 서울의 외관. Photo: Chin Hyosook / Courtesy of Perrotin
My Brother, 2020 © Marten Elder, Courtesy of the artist and Perrotin
클레어 타부레
파리 출신의 작가 클레어 타부레Claire Tabouret는 2019년 페로탕 홍콩에서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열며 아시아에도 이름을 알렸다. 따뜻한 ‘어스earth 컬러’를 사용해 과감한 붓놀림으로 인물 회화를 그려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7월까지 페로탕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다.
View of Barry McGee’s Solo Exhibition “The Other Side” at Perrotin Hong Kong, 2019 Photo: Ringo Cheung © Barry McGee; Courtesy of the artist, Perrotin, and Ratio 3, San Francisco
배리 맥기
2019년 페로탕 홍콩에서 첫 전시를 진행하고, 올해 페로탕 도쿄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성황리에 마친 배리 맥기Barry McGee. 샌프란시스코에서 회화와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솔직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소외된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해외 갤러리의 아시아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무르익었다. 이런 폭발적 관심의 중심에는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갤러리 ‘페로탕Perrotin’이 있다. 파리에만 4개 지점을 보유한 페로탕은 2012년 국제적인 갤러리 중 처음으로 홍콩 센트럴에 입성했다. 이후 2016년에는 서울 팔판동, 2017년에는 도쿄 롯폰기, 2018년에는 상하이 번드 지구 등 아시아 미술계를 대표하는 지역에 차례로 새 갤러리를 오픈했다. 아시아 미술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들을 섭외하기 위한 거점이다. 덕분에 단색화로 유명한 박서보나 숯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이배 등의 국내 작가들이 뉴욕과 파리 등에서 전시를 했다. 페로탕이 이렇게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보인 건 갤러리를 처음 시작한 1990년대부터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표현한 듯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개인전을 파리에서 연 것이 1995년인데 작은 갤러리가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였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창립자 에마뉴엘 페로탕은 오로지 ‘동물적 감각’에 의존해 작가를 선택한다고 밝혔는데, 작품에 따라오는 설명보다 그 자체가 지닌 힘을 믿는다는 뜻이다. 올해 페로탕은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꾼다. 홍콩 지점을 센트럴 홍콩에서 침사추이 부둣가인 빅토리아 독사이드 Victoria Dockside의 ‘K11 아틀리에’로 확장 이전하는 것이다. 다양한 예술 기관이 자리한 서주룽 문화지구 인근에 위치한 동네에 재개관하는 갤러리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www.perrot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