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 빨아들일 때 입술을 툭 치는 탄력, 혀와 치아를 지나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 원초적 자극. 말하자면 냉면은 씹는 음식이 아닌 삼키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건 즐겁고, 만드는 일은 말 그대로 고역이다. 요리하는 걸 즐기는 사람은 그걸 업으로 하는 순간 대개 기쁨이 사라진다. 내가 그런 격인데, 일하는 순간순간 잠깐씩 번뜩이는 쾌락이 있다. 찌개가 짙어져서 막 끓어넘칠 때, 팬 위의 파스타 소스가 걸쭉하게 유화乳化되어 면에 찰싹 달라붙을 때, 스테이크가 익어서 눌러보면 탄력 있게 손가락을 튕겨낼 때…. 국수나 냉면에도 이런 절대 순간이 있다. 막 삶아서 부글거리며 전분을 토해낼 때도 좋지만, 서로 붙지 말라고 젓가락으로 휘저으면 면발의 물리적 경도가 툭툭 손으로 전해져올 때가 있다. 무엇보다 다 삶은 면을 헹구는 순간 손가락 사이로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면발의 탄력이랄까.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며 휘감는 기운이 전해져서 잠시 서늘해질 때가 있다. 그렇다, 이제 여름이 오는 것이구나 하는.
냉면은 먹는 이의 처지에서 수많은 말이 있었다. 그 말에 몇 가지를 더 보탠다. 나는 냉면이야말로 입술의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면을 훅 빨아들일 때 입술을 치는 힘, 그것은 면발을 얼음물에 헹굴 때의 활력과 유사하다. 입술은 한 다발의 냉면이 지나가면서 제각각의 면발과 만난다. 냉면은 씹는 음식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다. 입술을 지나 잠시 혀와 치아에 인사하고 이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목구멍에 미각을 느끼는 세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물리적 통각으로 생각되는 어떤 형이하학적 자극을 주고 식도 안으로 떨어진다. 흔히 행주 빤 물 같다느니, 밍밍(닝닝)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냉면의 맛은 실은 이런 물리적 맛이 앞에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물론, 평양냉면이라고 하는 저 무심한 맛의 음식에 한해서 그렇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휘감을 때 저항하듯 밑으로 늘어지는 면을 힘차게 입술로 끌어 올리는 작업도 냉면 먹기의 즐거움이다. 짜장면처럼 휘감아 돌려지지도 않으며, 파스타처럼 돌돌 말릴 리도 없으며, 짬뽕처럼 육수를 듬뿍 머금어 올라오지도 않는 저 빌어먹을 냉면 발의 도도함이란! 그래서 미처 냉면 발이 육수에 풀려서 제각기 외면하듯 떨어지기 전에 젓가락으로 우악스럽게 다발을 지어 입에 밀어 넣는 것이 진정한 냉면 취식법이라고 선배들이 얘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식당에서 이제는 주지 않는 소독저(나무젓가락)를 일부러 가지고 다니며 냉면을 먹는 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식당은 냉면 먹는 법을 이렇게 적어놓기도 한다. 이른바 평양식이라는 거다.
첫째, 아무것도 치지 말고 먼저 육수를 맛본다.(속에게 차가운 육수가 들어가신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다-필자 주)
둘째, 한 젓가락 들어서 식초를 면 위에(절대 육수에 뿌리지 말란다-필자 주) 뿌린 후 먹는다.
셋째, 겨자를 국물에 쳐도 좋다.
이런 취식법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냉면인冷麪人(이런 말이 합당한지는 모른다)인우래옥 김지억 전무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는 평양 도심, 즉 무슨 탑과 인민대회당 같은 것이 있는 동네 출신이다. 두어 해가 지나면 구순이 된다. 다시 말해 월남하기 전에 평양에서 적어도 스무 살 무렵까지는 살았다는 뜻이고, 냉면집도 다녀본 기억이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달걀을 언제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다른 음식과 달리, 냉면은 금기와 지도와 간섭, 심지어 면스플레인(면+explain)이라는 말이 생겨난 음식 아닌가. 수육은 마지막에 먹어서 여운을 남긴다는 말은 있는데, 달걀은 중구난방이다.
“먼저 먹어서 속을 보하는 것이다.”
“아니다. 무슨 평양냉면에 홍어회 얹는 소리냐? 당연히 뒤에 먹어야 냉면의 순수한 미각을 해치지 않는다.”
“허허, 달걀은 먹는 것이 아니라 노른자를 곱게 풀어서 심심한 육수에 질감과 밀도를 제공해야 옳다.”
이런 식인 것이다. 언젠가 한 신흥 평양면옥에서 냉면을 주문하고선 달걀을 먼저 먹을 것인가 나중에 먹을 것인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정작 나온 냉면에는 삶은 달걀이 아니라 지단이 얹혀 있었다. 그렇다면 평양냉면에는 지단이 옳은가 삶은 달걀이 맞는가 논쟁을 붙여보고도 싶다. 골동반이나 국수도 아니고 웬 지단이란 말인가 하고.
냉면의 기쁨에서 내가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면기를 손에 들고 육수를 마시는 일이다. 갓 나왔을 때도 좋고, 마지막에 한 방울까지 마시는 것도 좋다. 그때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양 손바닥에 전해지는 냉기다. 얼음처럼 차가우면 그건 그것대로 통쾌한 들뜸이 있고, 점잖게 차가우면 마치 신사라도 된 양 내 마음도 느긋해진다. 아, 그 그릇이 오래된 스테인리스라면 더 좋다. 기품 없는 스테인리스라는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글 쓰는 요리사’로 잘 알려진 박찬일 씨는 ‘로칸다 몽로’와 ‘광화문 국밥’의 주방장이자 해박한 지식과 단정한 문장으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하는 음식 칼럼니스트입니다. 그 치열한 기록이 <노포의 장사법> <백년식당>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 등의 책으로 나왔습니다. 최근엔 계절 식재료 이야기를 다룬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