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 세계 최초로 태양계 밖에서 온 소행성 오우무아무아 ‘Oumuamua(고대에서 온 메신저라는 뜻, 1I/2017 U1)가 관측됐다.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지만 오우무아무아는 태양을 향해 수직 하강하다가 거의 직각으로 우회하더니 놀랍게도 속도를 낸 다음 태양계 밖으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당시 하버드 대학교 천문·물리학과장 아비 러브Avi Loeb는 소행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며 이 물체가 외계에서 온 탐사선일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후 오우무아무아는 태양계를 완전히 빠져나갔지만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 소행성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난 뒤 급하게 우주 방위대 스페이스 포스Space Force를 신설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쉽게 잊힐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더욱이 올봄에는 미 국방부에서 UFO 관련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사실상 지구 대기에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는 뉴스도 들려왔다.
코로나19 확산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압박 등에 묻혀 세계 언론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음모론자들에게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소식이었다. 이는 미 정부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외계인이 존재함을, 아니 존재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내비친 행동으로 역사상 한 번도 없던 일이다. 사실 그동안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주장은 미 정부 차원은 물론 대중에게도 음모론으로 치부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티SETI, 보이저호, 천체망원경 허블 같은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과 노력, 시간을 들인 것을 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여하튼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이미지 1, 2 에 주목하기 바란다.
1 파이어니어 탐사선에 부착된 패널.
2 보이저 탐사선에 부착된 원판 덮개.
3 아폴로 착륙선 하부에 부착된 선언문.
각각의 이미지는 파이어니어 10, 11호 우주 탐사선(각각 1972년, 1973년 발사)과 보이저 1, 2호(모두 1977년 발사)에 부착한 기록물이다. 보이저호에 부착한 것은 일종의 안내 문구이자 타임캡슐로, 지구의 소리와 이미지를 담은 2장의 금 LP 원판에 다양한 도식을 표기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이를 발견하면 근원지를 추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에 반해 파이어니어호에 부착한 패널은 더 직접적으로 ‘놀러 오라’는 메시지를 도식화한 것으로, 외계로부터의 방문을 적극 유치하려는 기세다. 한편 지구의 영원한 동반자인 달 표면 곳곳에서는 이미지 3과 같은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1969년 달 표면에 지구인이 첫발을 딛게 한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착륙선의 사다리에는 스테인리스와 철 소재의 패널이 부착돼 있다. 그 패널에는 “서기 1969년 7월, 모든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지구에서 달로 첫발을 딛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물론 당시 달을 개척하려는 미 정부와 나사의 의지가 굳건함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일종의 선언처럼 보이는 이 문구를 과연 달 표면에서 누가 읽을지 의아할 따름이다. 과연 누구를 위해 쓴 문구일까?
4 OCR-A 서체 견본. 당시의 기술적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5 빔 크라우얼이 디자인한 실험적인 서체 뉴알파벳.
참고로 패널에 사용한 서체는 도형과 기하학에 입각해 만든 산세리프체 푸투라Futura였다. 한편 수능 답안지에 사용되는 OMR 카드의 광학 표식 인식Optical Mark Recognition 기술도 흥미롭다. 미리 입력된 표식에 대비해 오답을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찾아 채점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기술은 시험 채점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기술인 OCR은 광학 표기 인식Optical Character Recognition으로 미리 입력된 표기(이를테면 알파벳)에 대비해 프린트된 정보를 부호화한다. 즉 기계가 판독하는 데 사용되는 초기 기술이다. 1968년 스위스의 서체 디자이너 아드리안 프루티거가 이 기술에서 활용할 서체 OCR-A를 디자인할 당시에는 이미지 4와 같이 글꼴에 원초적인 기술이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곧 업데이트판인 OCR-B가 같은 해에 개발되었다. OCR-B는 1973년 세계표준광학인식글자로 채택되어 금융권에 널리 도입되었고 이후 여권과 기타 정부 서류 등에 도입되는 등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이에 앞서 1960년대에 네덜란드 그래픽 디자이너 빔 크라우얼Wim Crouwel 역시 당시의 화면 기술에 근거해 실험적인 서체 뉴알파벳을 디자인했으나 말 그대로 실험에 그쳤다. 하지만 이미지 5에서 보시다시피 멋은 있다.
지금 OCR 기술은 AI(인공지능)의 토대 기술인 머신러닝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지금의 AI는 사람의 손글씨를 읽고, 이미지를 보고, 안면 인식 기술까지 갖추어 사람을 알아본다.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의 눈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으며 지금도 열심히 학습 중이다. 여담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컴퓨터에 내장되는 그래픽 카드 개발사로 주로 게이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회사 엔비디아Nvidia가 갑작스레 AI 사업의 선두 주자가 된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인간에게 IQ가 중요하다면 AI에게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가 중요한 것이다. 실제로 보이저나 파이어니어 탐사선에 부착된 패널을 보고 오우무아무아를 지구로 보낸 외계 문명이 있는지, 또 전 세계 서버에서 서서히 깨어날 AI의 집단지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지성과 지식의 습득은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통의 토대는 다름 아닌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