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정원의 대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최근 한화 서울 퐁피두센터에 ‘63 아우돌프 정원’을 완공하며 한국에 또 하나의 풍경을 더했다.
그의 한국 프로젝트는 친구이자 동료인 바트 후스Bart Hoes와 협업해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 자연주의 정원을 펼쳐가고 있는 두 사람에게 그들이 정의하는 정원은 어떤 풍경인지 물었다.

57년을 함께해온 친구이자 이웃, 협업자인 피트 아우돌프와 바트 후스. 어릴 때 만난 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고, 바트 후스가 조경 디자이너가 된 후에는 때때로 함께 일하기도 했다. 한국 프로젝트는 모두 두 사람이 협업했다.
정원은 끊임없는 기대와 변화의 과정
1980년대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등장한 자연주의 정원 운동 ‘더치 웨이브’는 어느 한순간의 완성된 풍경이 아니라, 식물의 온 생애에 걸친 아름다움이 조화롭게 이어지는 정원을 추구한다. 시들고 남은 꽃대, 메마른 가지도 활짝 핀 꽃만큼이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자연주의 정원의 철학이다. 이러한 철학을 자신만의 언어로 가장 성공적으로 구현한 이가 피트 아우돌프다.
피트 아우돌프는 비교적 늦은 30대에 정원의 세계로 들어섰다. 1982년 네덜란드 휘멜로에 묘목장을 연 뒤 수많은 다년생식물을 육종하며 식물 실험에 뛰어들었다. 휘멜로에 가면 아름답고 새로운 식물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은 세계 각지의 정원사와 디자이너를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아우돌프는 자신의 정원을 찾은 이들과 교류하고, 식물을 연구하며, 다년생식물을 중심으로 한 자연주의 식재의 언어를 발전시켜나갔다.
오랜 시간 축적한 식물 지식은 그의 정원을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그의 식재 구성은 대담하고 강렬하다. 서식처 기반 식재 디자인의 대가 카시안 슈미트는 이를 두고 “피트는 무엇이 식물을 개성 있게 만드는지, 미래에는 어떤 식물이 유망할지를 포착하는 예리한 감각을 지녔다”고 평하기도 했다. 뉴욕 하이라인, 시카고 루리 가든, 영국 RHS 가든 위슬리 등 상징적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경관에서 식재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언어가 한 번의 설계로 끝나는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인 돌봄 속에서 끊임없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돌프의 작업은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정원은 단순히 디자이너의 의도에 따라 배치된 식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식물이 불러들인 벌과 나비, 새들이 생태계를 만들고, 바트 후스를 비롯해 그와 뜻을 함께하는 가드너와 디자이너, 묘목장, 여러 협업자가 변화의 시간을 이어간다. 자연의 공동체가 인간의 공동체로 확장되는 과정 역시 피트 아우돌프가 만드는 정원의 일부다. 오늘보다 내일, 다음 주, 내년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은 사람과 식물, 동물이 그 기대를 함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Emerging in the 1980s, the Dutch Wave sees gardens as ever-changing landscapes. Faded flowers and bare stems matter as much as plants in bloom—a philosophy embodied by Piet Oudolf. Oudolf came to gardening in his thirties and opened a nursery in Hummelo,
the Netherlands, in 1982. There, he cultivated and studied perennials while exchanging ideas with gardeners and designers from around the world. This knowledge shaped his bold planting style and his instinct for identifying plants with lasting character. Through projects including New York’s High Line, Chicago’s Lurie Garden and RHS Garden Wisley, he transformed the role of planting in contemporary landscape design.
For Oudolf, however, a garden is never completed by design alone. It continues to evolve through care, attracting birds, bees and butterflies, while gardeners, nurseries and collaborators sustain its changing form.
His gardens are living communities in which plants, animals and people shape a richer landscape over time.
피트 아우돌프
장식적이고 통제된 정원의 대안으로 자연주의 정원 운동을 펼쳐온 선구자. 그의 정원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으며, 전통적으로 정원 식물로 여기지 않던 다양한 다년생식물과 그라스류, 관목에 주목한다. 독창적 식물 조합과 유려하게 흐르는 형태,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시선과 풍경이 특징이다. @pietoudolf
바트 후스
네덜란드의 정원 디자이너이자 조경가. 정제된 건축적 설계와 식재 디자인, 탄탄한 원예 전문성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자연주의 정원 디자인에 기여해왔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피트 아우돌프와는 2019년 울산의 후스·아우돌프 정원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하나의 팀으로 협업하고 있다. @bart_hoes
이진
디자인 스튜디오 리빌드RBLD와 데이터 기반 가드닝 그룹 세컨드 네이처Second Nature의 공동 설립자이자 정원 디자이너. 한화 무와 제이드 정원,
성북동 라인뮤지엄 등 피트 아우돌프의 한국 프로젝트 전반에 참여하며 유럽발 자연주의 정원의 한국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jin.lee854_

비트라 캠퍼스 정원
비트라하우스VitraHaus와 알바루 시자Álvaro Siza가 설계한 공장 사이에 조성한 3600m2 규모의 정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서로 연관된 식물을 각기 다른 비율로 반복 배치해 유기적 형태를 완성했다. 관람객은 정원을 잠깐 보고 지나치는 대신, 걷는 속도와 위치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AFAS 익스피리언스 센터 정원
네덜란드 소프트웨어 기업 AFAS의 혁신적 오피스, AFAS 익스피리언스 센터를 둘러싼 자연주의 정원. 방문객과 구성원 모두에게 자연 속에서 일하고 머무는 경험을 선사한다. 주로 옥상에 위치한 정원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성격이 다른 여덟 개 구역으로 구성했으며, 각 구역은 고유한 기능과 분위기를 지닌다.

반달로룸Vandalorum 박물관 정원
스웨덴의 아트·디자인 뮤지엄 반달로룸에 조성한 정원. 8.4헥타르에 이르는 전체 부지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했고, 그 첫 번째 단계로 진입부에 2500m2 규모의 정원을 조성했다. 다년생식물 2만 6천 주, 구근식물 4만 7천 구, 관목과 나무, 생울타리용 식물 7천 주가 함께 자란다.


63 아우돌프 가든(한화 서울 퐁피두센터)
국내에서 가장 최근에 완성된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 63빌딩과 한강 변을 잇는 정원이자 산책로다. 인상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식재를 통해 미술관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완성했다.

루리 가든Lurie Garden
시카고 도심의 밀레니엄 파크 중심에 조성한 1만m2 규모의 정원. 고층 빌딩 숲과 초원형 식재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자연주의 정원의 대표작. 일부 구역에서는 전체 식재의 약 50%를 자생종으로 구성해 도시 한가운데서도 생태적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

후스·아우돌프 울산 가든
피트 아우돌프가 아시아에 조성한 첫 정원이자, 국내에 조성한 그의 정원 가운데 가장 큰 1만 8000m2 규모의 프로젝트. 그는 태화강의 생태 복원 과정에 공감하며 이 작업에 참여했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숙근초 중심 자연주의 공공 정원을 선보이며, 사계절 변화하는 풍경을 정원에 담아냈다.
“각각의 식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기’하지만, 결국에는 그 모두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한 편의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_피트 아우돌프
휘멜로에서 시작된 당신의 여정이 전 세계 정원의 풍경을 바꾸어오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나요?
피트 아우돌프(이하 아우돌프) 미국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최근 필드 오퍼레이션(조경가 제임스 코너의 스튜디오)과 함께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있는 정원을 완성했어요. 시카고 루리 가든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이고,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플랜딩 필즈 식물원 식재에도 참여하고 있죠. 오늘도 새로운 의뢰를 하나 받았는데, 이미 진행 중인 일이 너무 많네요.(웃음)
바트 후스(이하 후스) 한국에서도 여러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요. 헤어초크&드 뫼롱이 설계하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정원은 이제 막 디자인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 식재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또 하나는 라인문화재단에서 준비 중인 성북동미술관입니다. 피트는 옥상정원을, 저는 프로젝트의 전체 조율과 언덕의 디자인을 담당하며, 한국 전통 정원 문화와 자연주의 정원을 결합하는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는 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자연주의 정원을 세계에 알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 개념에 깊이 몰두하게 되었나요?
아우돌프 어느 하나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국식 정원을 좋아하지만, 다소 장식적이고 지나치게 꽃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네덜란드에서 자생식물로 정원을 가꾸는 이들을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꽃이 지고 난 뒤의 식물 또한 감상할 존재가 되고, 야생식물도 정원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대화가 이어지며 제 스타일도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꽃보다 그라스를 많이 사용하고, 실제 야생식물은 아니지만 그러한 인상을 지닌 식물을 쓰는 방식으로 변해갔죠. 우리는 계절에 맞추어 달라지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가을과 겨울 정원에는 꽃이 지나치게 많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자연스럽지 않으니까요. 그러한 경험이 모여 지금의 철학을 형성했습니다.
자연주의 정원은 그렇지 않은 정원과 어떻게 다른가요?
아우돌프 제가 정원을 디자인할 때는 벌과 나비, 그리고 딱정벌레를 비롯한 다양한 야생 생물을 불러들이려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정원을 살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식물을 사용하려면 각각의 식물에 대해 알아야 하죠. 이를테면 곤충은 겹꽃보다 홑꽃에서 꽃가루와 꿀에 쉽게 접근하고, 지나치게 개량한 품종보다 야생종에 가까운 식물을 선호합니다. 자연주의 정원은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 탄생합니다.
당신의 작업은 자연의 모습을 닮은 동시에 인상주의 작품 같은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아우돌프 식물을 잘 아는 것과 이들을 조합하는 일은 다릅니다. 식물의 조합을 발견하고 한데 놓았을 때 특정한 아름다움이나 감정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죠.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르기에,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원이 놓이는 장소는 누군가의 집이기도 하고, 갤러리나 레스토랑, 공원까지 다양합니다. 장소의 어떤 점에 주목하나요?
아우돌프 공간의 용도와 소유 주체에 따라 요구가 다르고, 제가 접근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생깁니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는 식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식재를 더 튼튼하게 구성합니다. 개인 정원은 사소하지만 구체적 요구 사항이 디자인의 시작점이 됩니다. 오후의 햇살을 즐길 테라스, 피자 화덕을 둘 장소, 아이들을 위한 그네나 작은 연못 같은 것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디에 자리하는가입니다. 호숫가에 있다면 호수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숲속에 있다면 숲과 어울리는 모습이어야 하죠. 장소가 지닌 이야기와 맥락을 읽고, 식재 디자인을 통해 그곳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는 어떻게 나누어 일하나요?
후스 저는 커뮤니케이션 전반과 디자인에서 마스터플랜과 하드스케이프를 맡고, 피트는 그의 핵심 분야인 식재를 담당합니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이후 패션 회사 F.G.F를 위한 옥상 정원, 한화 무와 제이드 정원, 최근의 한화 서울 퐁피두센터까지 여러 프로젝트를 그러한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한국에서 정원을 작업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이 있나요?
후스 울산을 시작으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식물종을 만났어요. 덥고 습한 장마철이 일부 식물에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강건한 식물종을 찾아내기도 했죠. 그렇게 첫 모습을 완성한 후에도 꾸준히 시간을 들이며 장기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자연주의 식재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년생식물과 그라스를 재배하는 묘목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나무와 목본식물을 공급하는 묘목장도 더불어 발전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당신이 완성한 정원을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하길 바라나요?
아우돌프 정원을 경험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체의 아름다움 속에 깊이 잠기는 것과 세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정원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완전히 그 안에 잠겨 감정이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걸으면서 아름다운 식물을 발견하고, 곤충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살피죠. 그렇게 멀리서 전체를 보기도 하고,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기도 하며 상호작용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정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인 동시에 수많은 디테일한 세계로 이루어진 곳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