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잡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의 AD100, 〈엘르 데코〉의 A-List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허영Young Huh. 색과 빛, 패턴을 다루는 그의 독창적 미감은 1820년대 지은 뉴욕 허드슨 밸리의 팜하우스를 가족의 보금자리로 고치는 과정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허영의 집. 핑크빛 소파와 러그, 한국 전통을 모티프로 한 벽지가 어우러진 모습에서 색과 패턴을 다루는 그의 남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허영은 주거 공간에 호스피탤리티 감각을 들이는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그는 클래식한 몰딩과 앤티크 가구, 장식적 디테일을 다루는 데 능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대신 현대 언어로 재해석해 오늘의 삶에 맞는 우아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구현해낸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그의 프로젝트에는 실로 다채로운 컬러와 패턴이 공존하지만, 어느 하나가 공간을 압도하는 대신 조화롭게 관계 맺는다. 최근 작업한 배우 조이 데이셔넬 부부의 뉴욕 아파트에서는 프랑스와 영국의 고전 양식, 화려한 몰딩, 스트라이프와 플로럴을 오가는 패턴이 한자리에 모여도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타고난 패턴 감각은 비스포크 월 커버링 브랜드 프로멘털Fromental을 위한 컬렉션, 타일 브랜드 악도Akdo와의 협업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6월, 영국에서 열린 인테리어디자인 전시 〈WOW!house〉에서는 한국 민화에서 영감을 받은 살롱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족이 키우는 식물이 모인 선룸. 제빵용 앤티크 테이블은 식물 컬렉션을 올려두는 무대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독창적 스타일이 한국이라는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지금의 한국은 현대성의 상징 같은 나라이지만, 저는 언제나 한국의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미술과 의복에서요. 아이들이 입는 색동 저고리의 컬러 배치는 전통적이면서도 굉장히 모던해요. 또한 단청이나 한복이 강렬한 색과 패턴을 보여준다면 수묵화는 여백의 미를 드러내죠. 정반대의 미감이 공존한다는 사실이 무척 독특하고 놀라웠습니다.”

56만m2의 대지 위, 1820년대 지은 600m2 규모의 팜하우스가 다섯 식구를 위한 집으로 탈바꿈했다.

피에르 프레이의 자수 실크 패브릭으로 제작한 셰이드와 진 먼로Jean Monro의 플로럴 패브릭을 입힌 암체어, 이탈리아 네오클래식 콘솔, 풍성한 식물과 화병이 거실 분위기를 우아하게 연출한다.
2백 년 역사 위에 더한 스타일
한국의 전통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허영의 디자인 철학은 가족과 함께 사는 뉴욕 허드슨 밸리의 집에도 깊이 스며 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뉴욕 스카스데일에 거주하던 그는 언젠가 허드슨 밸리에서 살겠다는 꿈을 오래 간직해왔다. 허드슨강을 따라 펼쳐지는 풍광, 뉴욕 상류층의 유서 깊은 대저택, 고요하고 서정적 자연을 품은 허드슨 밸리는 19세기 ‘허드슨 리버 화파’를 탄생시켰을 만큼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푸르고 울창하며 야생적이고 다채로운 곳’. 부부는 막내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오래된 꿈을 실현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고, 눈 내리던 2022년 겨울 이 집을 보자마자 구입하기로 결심했다.

나무와 몰딩 드로잉이 그려진 벽지로 포인트를 준 다이닝룸. 주방에도 식사 공간이 있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저녁에는 늘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랜돌프&하인Randolph&Hein의 테이블과 핑크빛 무라노 유리 샹들리에, 테이블 위 핑크 라눙쿨루스와 아네모네가 조화를 이룬다.
1820년대 초에 지은 집은 드넓은 들판과 숲, 폭포와 연못을 품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처럼 꿈에서 보았을 법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다만 목장의 농가 주택으로 지은 집은 정원이 있는 저택으로 한 차례 고쳤고, 이후 20여 년 동안 방치된 채 잊혀가던 중이었다. 그는 이곳을 가족이 살아갈 집으로 되돌리는 데에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직감했다. “처음에는 빅토리아풍 팜하우스로 지었는데, 주인이 바뀌면서 콜로니얼 스타일로 레노베이션한 상태였어요. 본래 모습에 대한 고려 없이 무작위로 바뀌어 있었죠. 게다가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른 터라 대부분은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2백 년 된 마루와 몰딩, 창문 한 짝만큼은 보존했습니다.”

라이브러리는 패턴을 절제하고 소재의 결과 질감에 집중해 나머지 공간과 대비되는 분위기다. 미드센추리 가구와 앤티크 가구를 배치하고, 당구대로 공간의 영역을 자연스레 구분했다.

현관 홀에서 바라본 거실. 한국적 터치가 담긴 현관의 벽지는 프로멘털과 협업해 탄생한 컬렉션. 한국의 민화, 책가도, 병풍을 모티프로 제작했다.
건축물이 지닌 고유한 양식을 존중하고, 그 위에 자신의 언어를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온 그는 이 집 또한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맥락 없이 덧붙여진 요소를 덜어내 집의 첫인상을 되살렸고, 낮은 천장 때문에 답답하던 주방은 지붕 일부를 들어 올려 아트리움처럼 만들었다. 반대로 너무 넓어 오히려 제 쓰임을 찾지 못하던 라이브러리는 가구로 구역을 나누고, 당구를 치거나 TV를 보는 가족의 플레이룸으로 바꾸었다. 집은 본래 모습을 회복하고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주방은 층고를 높이고 유리 아트리움처럼 만들어 부족한 채광을 보완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펜던트 조명, 스카볼리니의 주방 가구, 브라스와 블랙 두 가지 버전의 싱크, 블랙&화이트 타일이 어우러져 풍성하면서도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냉장고가 숨어 있는 서재의 바 가구에는 모던 매터Modern Matter의 릴리 손잡이와 빅토리아 놉knob을 적용했다.
다채로운 미감의 레이어링
그의 집은 2백 년 역사 위로 유럽의 장식 예술, 허드슨 밸리의 장소성, 미국의 주거 양식 그리고 한국적 요소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상반되는 세계가 가장 환상적으로 조우하는 공간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현관과 계단실이다. 현관문 양옆에 선 소나무를 시작으로 책가도와 산수화, 호랑이와 토끼가 담배를 피우는 민화, 구름 사이로 두루미가 나는 장면까지 한국적 모티프가 연분홍빛 벽 위로 펼쳐진다. 이 벽지는 허영이 프로멘털과 함께 선보인 컬렉션 중 하나로, 한국 병풍과 민화에서 출발했다. “저는 이곳 벽이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랐어요. 본질적으로는 제 이야기이지요.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아시아 미술 위원회 이사로 활동하시던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전 세계 한국 미술 딜러와 학자들을 만나러 다니곤 하셨어요. 한국 미술에 대한 애정은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어머니를 위한 헌사이자 한국의 유산을 세상과 나누는 저만의 방식입니다.”

그리너리 무드로 가득한 부부의 침실. 아칸서스 패턴의 벽지와 벤자민무어의 아보카도 그린 컬러 페인트로 마감했다.
뒤이어 등장하는 방에도 각기 다른 패턴과 컬러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건축적으로 특별한 요소가 없던 다이닝룸은 짙은 초록색 배경 위에 나무와 몰딩 드로잉이 그려진 벽지로 포인트를 줬고, 자연광이 충분히 들지 않던 아들 방은 원숭이 패턴이 있는 네이비 색 벽지로 마감해 위트를 더하면서도 차분하게 정리했다. 경사 지붕 아래 자리한 부부의 침실은 아보카도 그린 컬러를 중심으로 아칸서스잎 패턴의 벽지, 나뭇잎 모티프의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자연의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반면 목재와 카펫으로 이뤄진 라이브러리는 색과 패턴을 최소화해 소재 본연의 질감이 잘 살아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쿠아 패턴 벽지와 벤자민무어의 블루 레이크 컬러로 채운 큰딸의 방.
집 곳곳에는 가족의 생애를 따라 모인 물건들이 놓여 지나온 시간을 들려준다. 그가 수집해온 유럽의 오래된 장식 예술품을 비롯해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도자기, 남편 허준영 씨의 고대 그리스 유물과 책, 아이들이 어릴 때 만든 소소한 작품과 장난감까지, 다섯 식구의 역사가 더해지며 2백 년의 시간을 품은 집은 가족의 진정한 보금자리로 거듭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가족이 생기면서 이곳에 또 다른 공간이 탄생할 수도 있겠죠. 그날을 더 잘 맞이하기 위해 지금도 저희 부부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이 부지를 가꾸는 데 쓰고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사라지고 들판이던 곳에 숲이 생겨나며 이곳은 본래 모습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어요.”

한국적 모티프로 가득한 현관에서 환대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최근 리졸리에서 출간한 허영의 첫 작품집은 〈무드와 생각, 감정: 인테리어(A Mood, A Thought, A Feeling: Interiors)〉이다. “인테리어디자인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고르는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 무드를 하나의 환경으로 구축하는 일입니다. 작품집의 제목처럼요.” 그가 집의 고유한 모습과 양식에 집중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 이면에 있는 역사와 사람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집의 기억을 되살린 바탕 위에 색과 패턴을 겹겹이 더해 아름답게 보여주는 일. 그 위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시간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집은 ‘우리가 공유한 역사로 다시 돌아와 회복하고, 위로받고, 새로운 일을 시작할 힘을 얻는 장소’가 된다.
허영 대표는 2007년 영허 인테리어디자인을 설립하고,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거와 상공간 인테리어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클래식과 모던디자인의 원칙을 바탕으로 독창적 패턴과 색채, 정교한 디테일을 더해 따뜻한 환대의 공간을 완성한다. 뉴욕의 아파트, 라치몬트의 역사적 주택,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의 호텔 ‘더 포인트’ 등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공개를 앞두고 있다. younghu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