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작은 선택이 한 끼를 ‘대접’으로 바꾸고, 삶의 리듬과 관계의 온도를 만든다. 누호&파이웍스의 박은우 대표는 그 힘을 테이블웨어와 공간에서 발견한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silverrain52’는 그의 취향을 상징한다. ‘실버’는 이름 ‘은우’에서 출발한 선택이었지만, 지금 그가 몰두하는 관심사와도 정확히 맞물린다.

이 공간의 하이라이트는 직접 레노베이션한 키친과 8년 가까이 정성껏 수집해온 기물을 한데 모아둔 그릇 쇼케이스다.
럭셔리 브랜드에서 체득한 테이블 위 예술
박은우 대표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기물로 수놓인 테이블 세팅에 매료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에게 테이블 미학은 기물을 보기 좋게 배열하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식사를 대하는 태도이자, 일상의 한 끼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 감각의 시작은 유년 시절의 식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대 출신인 어머니는 매일 밥상을 하나의 작품처럼 정성스럽게 차려내셨습니다. 저는 그 곁에서 ‘음식은 예쁘게 먹어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을 교육이 아니라 생활의 감각으로 익혔죠. 되도록 냄비째 먹는 일을 피하고, 혼자 간단히 먹는 음식도 적절한 그릇에 덜어 식사 형태를 갖추게 하시던 어머니의 습관은 훗날 제 심미안의 단단한 바탕이 되었어요.”
이후 커리어는 개인의 감각이 전문 영역으로 확장된 과정이었다. 에르메스와 디올 메종에서 테이블웨어를 큐레이션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이 식탁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어떻게 시각화되는지 현장에서 체득했다. 결정적 전환점은 F&B 기업 GFFG에서의 경험이다. 노티드, 다운타우너 등 14개 브랜드의 VMD로서 도넛부터 한식·양식·중식까지 메뉴 전반의 식기와 커틀러리를 직접 선별했고, “기물 하나가 공간의 공기를 바꾼다”는 확신을 얻었다. “브랜드가 론칭하거나 신메뉴가 나올 때, 팝업과 협업을 진행할 때마다 공간에 들어갈 식기를 고르고 플레이팅까지 하며 브랜드를 구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릇의 본질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테이블 스타일링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었죠.”
그중 ‘호족반’의 뉴욕 진출 프로젝트는 전문가로서 한 단계 도약한 계기이자 큰 자부심으로 남았다. 한식의 정체성을 담아낼 방대한 분량의 그릇을 한국에서 직접 선별해 미국으로 보내는 과정은 ‘한국의 미를 알리는 테이블’을 만든다는 책임감을 묵직하게 체감하게 했다. 이 경험은 기물에 대한 이해를 직감의 영역에서 전문적 식견으로 끌어올린 변곡점이 되었다.

넉넉한 평수 덕분에 이곳은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행사가 열리는 공간으로 변모한다. 플루트 유리로 만든 창문 또한 이 곳의 특별한 요소다.
성수동 폐공장의 변신 ‘그릇 쇼케이스’
성수동의 폐공장을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친언니와 함께 직접 개조한 약 50평 규모의 집무실은 박은우 대표의 축적된 경험과 취향이 가장 밀도 있게 투영된 장소다. 이곳에서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은 스테인리스 아일랜드 식탁이 돋보이는 오픈형 키친, 그리고 그 바로 옆에서 기물 컬렉션을 펼쳐둔 그릇 쇼케이스다. “수납장 안 깊숙이 쌓여 있어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가 늘 아쉬웠어요. 그래서 아예 미니 쇼룸처럼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죠. 이곳은 일명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르는데(웃음) 말 그대로 선택받은 예쁘고 특별한 테이블웨어만 입성할 수 있는 곳이에요.” 8년 가까이 이어온 수집 여정은 어느 한 곳에 고정되지 않는다.
일본과 유럽 등 여행지에서 직접 발품을 팔기도 하고, 유럽 빈티지 마켓을 정기적으로 순회하는 셀러의 큐레이션이나 온라인 편집숍을 통해 컬렉션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왔다. 그렇게 모인 기물들 사이에는 4백만 원대의 라리크Lalique 빈티지 디캔터 아프로디테부터 사르게민Sarreguemines의 스테인리스&우드 퐁뒤 세트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이 공존한다. “제 취향이 이동해온 궤적을 기록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화려한 프렌치 빈티지에 매료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실버와 아르데코 감성의 은그릇이 중심이 됐어요. 에르메스 재직 시절 경험한 하이엔드 실버웨어 브랜드 푸이포르카Puiforcat를 통해 실버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그 감각이 지금 제 취향과 완전히 맞물려 있죠. 지금은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이것들은 트렌드로 자리 잡기 훨씬 이전부터 제가 직접 공들여 하나씩 수집해온 것들이에요.”
기물을 관리하는 방식은 ‘보물 관리’에 가깝다. 사용 후에는 변색을 대비해 즉각적인 원상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 먼지는 타조 깃털 먼지떨이로 가볍게 떨어내고, 유리와 거울은 스카트 세정 티슈로 빠르게 마무리한다. 관리하기 까다로운 실버의 경우 큰 오브제는 와이만 실버 폴리시로 정리하고, 커틀러리 같은 작은 기물은 타운톡 폴리시로 닦아 본연의 광택을 살린다.

거실의 또 다른 장면은 감각적인 바bar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환대로 확장되는 그릇 예술
이 기물들의 진정한 가치는 결국 ‘사람을 맞이하는 테이블’ 위에서 빛을 발한다. 박은우 대표는 자신의 집무실을 지인을 초대해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하는 열린 장소로 적극 활용한다. “지인들과 ‘밥 한 끼 하자’는 약속을 잡으면 주로 저희 집무실로 모입니다.
제가 정성을 다해 일군 공간인 만큼 혼자 향유하기보다 다양한 사람이 찾아와 함께 누리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요리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간단한 음식이나 배달 음식까지 제 그릇에 정성껏 담아내면 그 자체로 충분히 즐겁고, 품격 있는 한 끼가 완성됩니다.” 박은우 대표의 스타일링 팁은 ‘의외성’에 있다. 예컨대 퐁뒤 세트에 똠얌꿍을 담는 식으로 용도를 확장하면 오히려 창의적 감각이 뚜렷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가 홈 파티 때 자주 사용하는 물고기 형태의 대형 은 플래터다. 본래 GFFG 재직 시절 담당하던 일식 레스토랑에서 ‘현판’처럼 쓰던 오브제였으나, 지금은 사시미를 올리는 플래터로 변주되어 테이블의 분위기를 단번에 압도한다.
“제 스타일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믹스 매치’예요. 한식이나 양식처럼 장르로 구분하기보다 동서양의 기물을 섞어 새로운 균형을 만들죠. 정해진 용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변주할 때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비로소 유니크한 분위기가 완성됩니다.” 그는 포인트 아이템의 역할도 강조한다. 작은 소금·후추 캐비닛은 식사 중 손님이 취향껏 간을 조절할 수 있게 돕는 섬세한 배려이자, ‘대접하는 자리’의 격을 높이는 장치다. 이러한 작은 디테일이 쌓여 식탁은 특별한 생동감을 얻는다. 이같은 그의 감각은 이제 개인 브랜드 ‘파이웍스’를 통해 보다 넓은 세상과 조우하고 있다. 직접 디자인한 아일랜드 테이블을 필두로 커스텀 키친 제안, 공간 디렉팅, 가구 셀렉션까지 아우르는 통합 프로젝트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테이블 위 작은 기물 하나에서 시작된 그의 미학적 기준은 이제 한 끼의 풍경을 넘어 공간과 삶을 운영하는 하나의 단단한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박은우의 테이블 위를 빛내는 빈티지 실버웨어

아이스 쿠페(Ice Coupes by Septembre Studios) 아이스크림은 물론, 작은 스낵을 담아내기에도 좋은 쿠페 세트. 클래식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테이블을 한층 정돈한다.

청동 절구(Good 18th Century Bronze Mortar&Pestle) 향신료나 허브, 약재를 직접 빻을 때 사용하는 아이템.

국자(Boulenger Orfevre Belle Cuillère à Sauce Pans) 여럿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호스트의 테이블에서 국자는 빼놓을 수 없는 도구다. 희소성 있는 디자인의 빈티지 국자 하나를 제대로 갖추는 것만으로도 서빙 과정이 한층 매끄럽고 우아해진다.

주전자(Christoph Widmann, a Silver Plate Coffee pot)은 특유의 유려한 반사감은 테이블 위에서 빛을 머금으며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필요할 때는 차를 따르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어 심미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영리한 포인트가 된다.

와인 버킷(Silver Plated&Crackle Glass ice Bucket C1950s) 개더링gathering을 즐기는 이들에게 와인 버킷은 모임의 무드를 완성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와인을 최적의 온도로 차갑게 유지해주는 기능적 역할은 물론, 테이블 옆이나 사이드보드에 놓인 모습만으로도 자리에 격조를 더한다.

소금·후추 캐비닛(Salt Pot & Salt Spoon Sterling English Silver 925) 식탁 위의 작은 조연 같지만, 사실은 대접하는 이의 세심한 감각을 보여주는 결정적 아이템이다. 소금과 후추를 정갈한 캐비닛에 따로 담아두면, 손님이 식사 중 취향껏 사용할 수 있는 배려의 수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