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작품처럼 소유하고 누리기를 택한 30대 사업가는 단 29세대만 거주하는 하이엔드 레지던스 에테르노를 거대한 놀이터로 변모시켰다.

집인지 쇼룸인지 갤러리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에테르노의 플레이하우스. 도자 오브제를 중첩한 아트월을 곳곳에 배치하고, 아이보리 색감의 소재로 바탕을 만들어 동양적 무드를 냈다.
오직 ‘나’라는 취향으로
현관문을 열면 도자를 층층이 쌓아 올린 아트월이 시선을 사로잡고, 대리석 바닥을 살짝 들어 올려 런웨이처럼 연출한 복도를 걸어가면 한강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거실이 등장한다. 거실 한가운데 솟아 있는 대리석 소파는 흑경 바닥 위에 묵직한 구름처럼 부유하고 있다. 갤러리 같기도, 쇼룸 같기도, 리조트 같기도 한 모습으로 집의 전형적 이미지를 가볍게 비껴가는 이곳은 어느 30대 사업가가 거주하는 세컨드 하우스다.

한강과 서울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실. 시야를 거스르지 않도록 가구는 모두 낮은 높이로 계획했다.
모직 브랜드를 운영하며 일본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집주인은 친구들과 모여 놀고 편히 쉬었다 가는 별서 같은 집을 꿈꾸며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했다. 매일을 보내는 곳이 아니기에 거실이 거실다울 필요도, 주방이 넓을 이유도 없었다. 대신 그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취향이 공간에 녹아들어 이곳만의 서사를 만들어내길 바랐다. 과감한 시도를 함께 한 이는 시옷스페이스 신민재 대표. 그는 한옥 스테이와 상공간을 주로 작업하며, 절제된 동양의 미감을 구현하는 데 강점이 있는 디자이너였다. 집주인은 시옷스페이스의 동양적 무드에서 취향의 접점을 확인하고, 이들과 함께라면 뻔하지 않은 집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프로젝트를 의뢰했다. 신민재 대표는 주거 포트폴리오가 많지 않은 자신들에게 의뢰한 것에 처음에는 놀랐다고. “클라이언트는 처음부터 집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즐길 장소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대신 자신의 스타일을 반영해 디테일을 만들거나, 여느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를 담아달라고 했죠.”

복도는 대리석 바닥을 들어 올려 런웨이를 걸어가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도자를 층층이 쌓아 올린 아트월은 세라믹의 글로시한 질감을 살려 은은하게 빛난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명상을 하러 오는 다다미방. 대부분의 실은 한 곳에 한 가지 용도만 부여해 절제된 분위기다.
정적 공간과 동적 기능이 만날 때
신민재 대표는 두 사람의 겹치는 취향을 풀어놓는 것에서 디자인을 시작했다. 무채색을 중심으로 세라믹 도자 오브제를 중첩·반복해 동양적 무드를 형성하고, 주황색을 포인트 컬러로 더해 아이보리 톤의 공간에 리듬감을 불어넣었다.

수납하는 재미가 있는 신발장. 격자 패턴의 반투명한 벽을 밀면 숨어 있는 반원형 바닥 공간이 튀어나온다.

세라믹 오브제 사이로 옷걸이를 거는 독특한 방식의 워드로브도 재미 요소다.
집을 이루는 또 하나의 축은 ‘놀이’다. 플레이하우스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이 집에는 골프 연습장도, 홀덤 게임을 즐기는 홀덤룸도, 친구들과 함께 컴퓨터게임을 하는 (4인 각각을 위한) 게임룸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다다미방도 있다. 거실에서 문을 열면 나타나는 홀덤룸은 이 놀이터 존의 입구이자 허브 공간. 이곳에서 게임룸과 골프 연습장, 침실, 다다미방으로 공간이 개미굴처럼 이어진다. “여기는 집보다는 스테이에 더 가까운 장소예요. 친구들과 하루 놀러 와서 신나게 즐기다 가는 거죠. 홀덤은 복작복작 붙어서 할 때 더 재미있고, 컴퓨터게임을 할 때도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방 한 칸에서 오락하듯 노는 것이 더 흥이 나잖아요. 그래서 한 공간에 하나의 용도만 부여하고, 여러 개의 방을 모아 지금의 놀이터를 만들었습니다. 골프 치고, 홀덤 하고, 게임하다 지쳐 잠드는 패턴을 그대로 공간으로 구현한 셈이에요.(웃음) 오히려 거실은 대기 공간이나 마당처럼 느껴지고, 놀이터 존이 진정한 집인 거죠.”

침실 또한 TV를 놓거나 다른 기능을 더하는 대신 침대 하나만 두고 수면 기능에만 집중했다.
나에게 100%인 집
공간 곳곳에도 재미 요소가 녹아 있다. 현관 옆 격자 패턴이 은은하게 빛나는 벽은 신발장이다. 반투명한 격자 벽 한 칸을 밀면 벽이 회전하면서 신발을 보관하는 반원형 수납공간이 나타난다. 일본의 어느 캐리어 매장에서 본 디스플레이에 착안했다고. 연적을 모티프로 한 도자를 켜켜이 쌓아 만든 아트월은 복도 벽을 비롯해 주방 후드, 테이블에도 반복해서 적용해 동양적 결을 더했다. 워드로브는 하얀 세라믹 오브제를 겹겹이 매달아 만들었다. 오브제 사이에 옷걸이를 걸어 옷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보는 재미와 쓰는 재미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하나하나 디자인할 때마다 ‘옷을 더 재미있게 걸 수는 없을까? 신발장도 서랍장이나 여닫이문 말고 다르게 해볼 수는 없을까?’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어요. 클라이언트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면서도 일상의 행위를 좀 더 액티브한 놀이처럼 느껴지도록 하고, 디자인도 놓치지 않으려 고심한 끝에 탄생한 아이템들입니다.”

놀이터 존의 입구인 홀덤룸. 침실과 게임룸, 골프 연습장은 모두 이곳을 통해 연결된다. 가운데 아트월은 공간에도 게이밍 요소를 녹였으면 해 사람들이 직접 움직여 바꾸는 형태로 디자인했다.
조명을 비롯해 향과 음악도 철저히 취향에 맞춰 설계했다. 거대한 석상처럼 제작한 석고 디퓨저를 곳곳에 배치해 항상 동일한 향이 흐르고, 모든 공간의 천장에 스피커를 매입해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어디서든 끊김 없이 음악이 이어진다. 플레이하우스는 반전 매력의 집이다. 무채색의 정적인 공간이지만 벌어지는 행위는 게임이나 골프처럼 동적이다. 상반되는 요소들은 한 사람의 취향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여 하나의 집으로 완성되었다. 하이엔드는 비싼 소재, 고급스러운 디테일, 공들인 마감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럭셔리는 개인의 루틴과 취향을 철저히 반영한 공간, 음악과 향, 시선과 조도 하나까지 세심하게 조율한 끝에 비로소 달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정답일 수는 없어도 집주인에게는 100%일 이 집처럼 말이다.
시옷스페이스는 공간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고유한 이야깃거리에 집중하는 인테리어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만의 디자인 언어로 해석하고, 좋은 디자인 경험을 통해 머무는 이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간다. @siot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