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집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하는 일이 있다. 이유를 묻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은 주어진 시간 안에 마주 앉은 사람의 성향을 알아내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먹구름이 비를 한바탕 쏟아낼 것 같은 12월의 어느 토요일, 다음 날 오전 푸껫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인 김수영·이경한 부부의 삼청동 한옥에 갔을 때 처음 건넨 질문도 바로 ‘왜’였다. “신혼집을 한옥으로 택한 이유가 무엇이죠?” 답은 명료했다. “궁금했어요.”
때론 마음의 방향추가 강하게 향하는 일에는 호기심이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보니 추이가 <머슬>에서 말한 것처럼 기분 좋을 때 자신도 모르게 점프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본성처럼 말이다. 서울 삼청동에서 나고 자란 수영 씨에게 한옥은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거나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신혼집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순간, 문득 한옥 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본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골목 속에 숨은 한옥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그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누마루는 본래 서재로 활용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식물의 방으로 쓰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살던 곳이라 웬만한 한옥은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 집은 전혀 몰랐어요. 안쪽 골목까지 가볼 일은 별로 없었거든요.” 골목에 들어서 문을 열었을 때 수영 씨는 어딘지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저 몇 걸음 더 들어갔을 뿐인데 정적이 흐르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옥마을이 소란한 동네가 아닌데도 말이죠. 주변 건물이 이 집을 지켜주는 것만 같았어요.” 도심에 있지만 일상에서 살짝 비켜난 듯한 고요함은 ‘이 집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했다.
“사실상 ‘이 집으로 해야만 한다’에 가까웠어요. 그만큼 아내의 의지가 강했죠.”(웃음) 당시 금융회사 주재원으로 영국 런던에 있던 남편 경한 씨는 아내가 보낸 사진과 메시지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곰곰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영국 동료들을 보면 대개 결혼 전에는 도시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는데, 결혼을 하면 외곽에 집을 마련해 살더라고요.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 작더라도 마당 있는 집에서 생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있었죠. ‘한옥도 주택이고 마당도 있으니 한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아내 덕에 해보게 됐죠.”

거실의 모습. 벽에는 수직 활동을 하는 반려묘 디디를 위한 캣타워 겸 책장을 설치했다. 천장을 자세히 살피면 숨어있는 디디의 모습이 보인다.
경계를 허물어 들인 빛과 중정
도시 한옥에는 거주자의 필요에 맞춰 증축한 삶의 흔적이 곳곳에 있다. 1920년대 후반 도시 개발기에 조성한 17평 규모의 이 집에는 마당에 화장실이 있었다. 그 옆에 계단도 있어 건물 위는 장독대나 화분이 놓인 간이 옥상처럼 쓰였다. 올라서면 주변 한옥이 눈에 들어와 구조적으로 재밌었지만, 안 그래도 주변 건물 사이에 있어 답답한데 ㅁ자 구조를 만드는 건물은 그 갑갑함을 더하는 게 사실이었다.
이에 어번디테일 건축사사무소는 ㅁ자에 가깝던 구조를 ㄷ자 형태로 복원하고 내부 공간의 수평적 확장을 주요 설계 전략으로 삼았다. 증축 건물을 허물어 그 자리를 조경으로 대체하고, 환경적 특성에 따른 채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청 영역을 안마당으로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축소되는 마당의 공간감을 보완하기 위해 증축부에는 유리 천장과 전면 창호를 삽입하는 복안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실내에서도 마당을 향한 넓은 개방감은 물론, 골목 안에 있는 한옥 특성상 빛을 오롯이 마당을 통해서만 유입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했다.

부부의 집은 삼청동 한옥마을 골목 안쪽에 자리한 집.
기존 목구조를 연장해 각서까래를 얹고 유리 천장으로 빛의 유입량을 확보한 식당부는 거실이 가족의 중심부가 되길 바란 수영 씨의 소원을 이루어줬다. “거실, 특히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마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었어요. 여기 앉으면 유리 천장 위로 길고양이들이 지나가는 모습도 보이고, 사계절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돼요. 그런 걸 남편과 함께 보면서 대화의 주제도 더 넓어졌어요.”
거실에 앉아 중정을 하염없이 보는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함께 사는 여덟 살 반려묘 디디의 시선도 틈만 나면 마당으로 향한다. “처음 디디가 이 집에 왔을 때 2주 정도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낯을 엄청 가려서 걱정이 많았는데요, 지금은 집 안을 놀이터처럼 활보해요.” 집 거실 벽면에는 디디의 수직 동선을 위한 맞춤형 캣타워를 설치했다. 또 주방 상부장과 연등천장 사이의 틈을 내고 각 실의 출입문에는 캣도어를 설치해 디디에게 이동의 독립성을 부여했다. 어번디테일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어번디테일 건축사사무소는 ㄷ자 구조의 한옥에서 주방 겸 거실 공간의 개방감을 확보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또한 공간의 효율을 위해 수납장을 최대한 마련했다.
마당을 중심으로 자라나는 신혼의 시간
호기심에서 시작한 한옥 생활. 막상 현실이 되면 그에 따른 고충이 있기 마련인데 수영 씨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생활하는 데 좁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괜찮더라고요. 한옥 특성상 수시로 수리하고 관리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도 좋아요. 본가에 살 때는 반려동물과 제 일상만 신경 쓰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곳에 오면서 집을 가꾸고 돌본다는 개념을 새롭게 배우게 됐어요.”

증축부 정면은 시스템 창호로 구성한 전면 유리 파사드로 설계하고, 처마는 짧은 현대식 금속으로 연출했다.
한편 한옥 생활이라곤 상상해본 적 없던 경한 씨는 전혀 해본 적 없던 ‘식집사’ 생활에 여념이 없다. 마당이 생기니 식물을 집 안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 피어난 것. 하나둘 놓기 시작하던 식물은 이제 수십 종으로 늘어나 본래 서재로 쓰던 방도 식물 방으로 변했다. “식물마다 물을 주는 주기가 조금씩 달라요. 보통 손으로 흙을 만져보거나 나뭇가지를 찔러보고 건조하다 싶으면 그때 물을 주죠.” 경한 씨는 촬영 내내 찬 바람에 식물이 상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틈틈이 화분을 옮기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그 모습에 수영 씨도 거들었다. “생전 안 하던 일을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해요. 연애할 때는 모르던 새로운 면이기도 하고요. 식물을 기르면 새로 잎이 나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해서 기분이 괜스레 좋아지곤 하는데요, 이 집이 우리에게 거대한 햇빛과 물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새로운 도전과 삶의 양식을 돋아나게 해주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