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이하 <연결하는 집>)은 2000년 이후 한국 현대건축과 주거 문화를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조망하며 주거 공간의 여러 유형을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펼쳐진 집’ 섹션에서 만날 수 있는 삶것건축사사무소의 소솔집. ©신경섭
“집에 대한 전시를 구상한 건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전시 개최 승인을 받고 구체적인 실무 작업에 착수해 완성하기까지 1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를 책임진 정다영 학예연구사에게 구태여 준비 기간을 물어본 이유는 전시를 보고 나서 ‘준비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총 58채의 프로젝트를 소개하는데 프로젝트별로 건축 모형과 도면, 스케치, 영상은 물론이고 건축주와 건축가가 주고받은 편지, 건축주가 쓴 집 생활 사전 등 소소한 기록까지 다채롭게 모았다. 심지어 프로젝트 소개 글엔 위치, 완공 연도, 대지 면적, 건축면적, 연면적, 층수, 구조와 같은 기본 정보는 물론 해당 집의 가족 구성원, 거주 기간, 이전 거주지, 가장 좋아하는 공간 등 자세한 정보도 담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의 중앙홀과 1·2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전시의 공간 구성은 국내 주거 문화와 연관 있는 데이터를 벽화로 표현한 중앙홀을 사이에 두고 두 섹션으로 나뉜다.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되는 2전시실에서는 6개의 주제에 따라 건축가 30명(팀)의 58채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1전시실은 워크숍, 영화 상영, 강연 등 풍부한 참여형 전시 연계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이다. “여섯 개의 주제는 가족의 형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공동체로서의 삶 등 사회·문화적인 부분과 소규모 주택 짓기 및 레노베이션 등 건축의 물리적 형식 등을 함께 고려해 도출한 주제입니다.” 첫 번째 주제인 ‘선언하는 집’은 공간의 개념과 형식, 심미성이 강조된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건축에서 공간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비움’과 같은 관념적인 공간의 형식적 특질이 잘 드러난 ‘수백당’(승효상, 1999~2000)과 ‘땅집’(조병수, 2004), 건축가의 실험 무대가 되는 ‘축대가 있는 집’(최욱, 2006~2022), 도시 속 대안적 삶을 가벼운 건축 형식으로 풀어낸 ‘베이스캠프 마운틴’(김광수, 2004) 등을 만날 수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건축주를 위해 비유에스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가 지은 묘각형주택은 <행복>을 통해 소개된 바 있다. ©노경
전형적인 4인 가족에서 벗어나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사는 집, 3대가 사는 집, 1인 가구를 위한 집 등을 소개하는 두 번째 주제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과 다세대·다가구주택, 단독주택이지만 그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 집 등 더불어 살아가는 집 짓기 실천에 주목하는 세 번째 주제 ‘관계 맺는 집’은 개인과 사회라는 키워드를 공유한다. <행복> 2024년 5월호 더 디자이너 칼럼을 통해 소개한 ‘묘각형주택’(박지현+조성학, 2020), <행복> 2023년 3월호 스몰 특집에 게재한 ‘맹그로브 숭인’(조성익, 2020) 등도 이 두 파트에서 만날 수 있다(맹그로브 숭인은 자료 중 하나로 <행복> 지면에 게재한 페이지를 전시하기도 했다!).
이어지는 농가의 집 짓기 사례를 모은 네 번째 주제 ‘펼쳐진 집’과 도시의 한정된 자원의 한계를 너머 대규모로 조성한 신도시 필지 대신 도심 속 독특한 땅을 찾아 건물을 짓고, 오래된 집을 고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섯 번째 주제 ‘작은 집과 고친 집’은 도시와 시골이라는 장소성을 공유한다. ‘아홉칸집’(나은중+유소래, 2017), ‘작은 집’(이소정+곽상준, 2015), ‘얇디얇은 집’(안기현+신민재, 2018) 등 다양한 사례는 귀촌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렇게 땅값 비싼 서울에서 나만의 집을 지을 수 있을까?’란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마지막으로 스테이와 주말 주택 프로젝트를 감상할 수 있는 ‘잠시 머무는 집’은 집과 건축의 시간성을 탐구한다. 특히 스테이, 호텔 등이 집의 새로운 레퍼런스로 떠오른 만큼 이 주제의 공간은 미래의 집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해볼 단초가 되어주기도 한다.
집을 모티프로 개방된 공간으로 꾸민 <연결하는 집> 전시 전경. ©손미현
<연결하는 집>은 프로젝트 전시 공간과 비슷한 면적의 공간을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활용할 만큼 작품 외에도 워크숍, 단편영화 상영, 교육 등의 콘텐츠를 풍부하게 준비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상설 워크숍으로(워크숍은 상설과 어린이 건축학교 두 가지가 준비됐다) 전시 출품작인 ‘아홉칸집’ ‘베이스캠프 마운틴’ ‘얇디얇은 집’의 건축적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관객은 축소 재현한 집 안을 살피고, 수직 동선을 단면도에 표시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몸으로 작품을 감각한다. 엄선한 집과 거주의 의미를 확장하는 단편영화와 애니메이션 다섯 편도 주말 극장을 통해 상영하니 관심이 있다면 상영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하길 추천한다.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기간 2025년 2월 2일까지
장소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국립현대미술관
문의 02-2188-6000
Interview 국립현대미술관 정다영 학예연구사와의 3문 3답
각 섹션 중 관람객이 특히 주목하길 바라는 주제를 꼽아달라.
‘관계 맺는 집’이다. 실제 전시작도 가장 많은 섹션이다. 집은 개인의 내밀한 공간인 동시에 사회적 공간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이고 각 집은 도시라는 공동체에 놓이지 않는가. ‘관계 맺는 집’ 섹션은 개인의 삶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집을 소개하며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거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킨다.
참여형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특히 신경 쓴 요소는?
앞으로의 집을 구상하고 지을 주체는 어린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들도 쉽게 참여 가능하며 다양한 집의 형식과 태도를 알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다. 어린이 건축학교도 이러한 바람 때문에 추진했다.
관람객이 전시를 어떻게 즐기길 바라나?
세상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형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타인의 삶의 공간을 살펴보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점을 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다양성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기본 바탕이며,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인 만큼 이런 부분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